찬양단

제목[목사님컬럼] 82년생 김지영과 90년생 이요한2024-04-17 17:53
작성자 Level 10

82년생 김지영과 90년생 이요한 


어르신정말 궁금해서 질문 하나 여쭙고자 합니다. '꼰대기질때문에 90년대 생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이른바 자칭 페미이자 성별 간 분란을 일으키는 '내로남불식 페미니스트'의 사상이 담긴 '82년생 김지영'은 어찌 공감하고 응원하셨는지요.”

한 네티즌이 제가 올린 ‘90년생이 온다의 서평을 글을 보고 발끈해서 질문한 댓글입니다이 글의 이해를 돕고자 간단히 부연하자면 몇 년 전,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쓴 서평에 제 글의 요지가 김지영을 응원하고 이해한다는 글이었는데 비교해 보니 차별을 당한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글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 사람의 전적인 개인적 주관이기에 이 네티즌의 도발적인 글에 대하여 반응하지 않았습니다생각이 다른 자와 또 다른 논쟁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주 오래 전그 유명한 E.H Carr가 말했던 한 촌철살인에 침잠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흐름 속에 있는 것은 단지 사건만이 아니다역사가 자신도 그 속에 있다.”

이 글을 발견한 때가 학부 시절이었으니 어언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심비(心碑)에 깊숙이 아로새겨 놓은 이유는 그만큼 나에게 준 큰 영향을 준 메시지였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더 의도적으로 저는 개인적으로 목회라는 사역을 감당해온 지난 31년 동안 항상 긴장하며 염두 해 둔 팩트가 역사성이었습니다시대의 역사성을 간파하지 못한 자가 어떻게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바른 메시지를 전한단 말인가에 집요하게 천착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저에게 도발한 네티즌의 말대로 극단적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역설적 폭력이 존재합니다적어도 그 정도는 아무리 일천한 지식을 소유한 저이지만 직시하며 살고 있습니다허나 제가 82년생 김지영을 지지한 이유는 당연히 그래도 되었던 지나온 역사 속의 김지영들에 대하여 무관심해 온 저의 공범(共犯)적인 죄책 때문이었습니다그녀들의 아픔이 암묵적으로 무시되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아무렇지 않은 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제가 그랬습니다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제 목회 철학 중에 하나는 신념은 신앙이 아니라는 관점입니다신념은 어느 한 부분에서 품지 못함을 천명하는 것이지만신앙은 주군께서 행하셨던 대로 품지 못함이 없으셨던 그 길을 고독하지만 가는 것입니다주군은 수없이 많은 82년생 김지영과 함께 하셨습니다이왕 속내를 밝혔으니 몰매를 맞더라도 ‘90년생이 온다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

기성세대로 90년생들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하여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개인적으로 저는 글을 쓸 때나아니면 무언가를 표현할 때 대 전제를 갖고 전개하는 것이 있습니다지금 목회의 현장에서 사역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후배들에 대한 예의입니다적어도 그들에게 넘겨주어야 할 유산을 선배로서 갖추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입니다립 서비스가 아니라 1961년생 목사는 그래도 이 땅 대한민국이 너무나 힘들고 가난한 시절을 지날 때굶기를 밥 먹 듯하며 한국교회를 여기까지 이루어낸 목회자 선배들의 눈물이라는 씨앗 뿌림의 열매를 주워 먹은 행운아(?)였습니다그래서 자식 세대인 90년생 후배들에게 정말로 너무 미안한 게 사실입니다뿌려 놓은 게 없음에 대한 죄책감뭐 그런 감정들에 휩싸여 말 한 마디라도 조심하는 게 정직한 고백입니다오늘의 이 기막힌 세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이 지성적 삶에 대한 마땅한 태도라고 믿기에 그렇게 기본적인 마음 자세를 견지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90년생들만이 희생자라는 주장은 또 다른 집단적 님비로 비쳐져 유감스럽습니다이 땅에 사는 모든 세대는 굴곡을 거쳤습니다너무 어리광 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90년생들도 그대들의 삶을 헤쳐 나가야 할 주체에서 예외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제 아들 이요한은 1990년생입니다아마도 이 글을 소개되면 제 아들에게서 제일의 반발이 있을 것이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1961년생과 1990년생은 같을 수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