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과 90년생 이요한
“어르신. 정말 궁금해서 질문 하나 여쭙고자 합니다. '꼰대기질' 때문에 90년대 생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이른바 자칭 페미이자 성별 간 분란을 일으키는 '내로남불식 페미니스트'의 사상이 담긴 '82년생 김지영'은 어찌 공감하고 응원하셨는지요.” 한 네티즌이 제가 올린 ‘90년생이 온다’의 서평을 글을 보고 발끈해서 질문한 댓글입니다. 이 글의 이해를 돕고자 간단히 부연하자면 몇 년 전,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쓴 서평에 제 글의 요지가 김지영을 응원하고 이해한다는 글이었는데 비교해 보니 차별을 당한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글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 사람의 전적인 개인적 주관이기에 이 네티즌의 도발적인 글에 대하여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생각이 다른 자와 또 다른 논쟁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주 오래 전, 그 유명한 E.H Carr가 말했던 한 촌철살인에 침잠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흐름 속에 있는 것은 단지 사건만이 아니다. 역사가 자신도 그 속에 있다.” 이 글을 발견한 때가 학부 시절이었으니 어언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심비(心碑)에 깊숙이 아로새겨 놓은 이유는 그만큼 나에게 준 큰 영향을 준 메시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의도적으로 저는 개인적으로 목회라는 사역을 감당해온 지난 31년 동안 항상 긴장하며 염두 해 둔 팩트가 역사성이었습니다. 시대의 역사성을 간파하지 못한 자가 어떻게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바른 메시지를 전한단 말인가에 집요하게 천착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저에게 도발한 네티즌의 말대로 극단적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역설적 폭력이 존재합니다. 적어도 그 정도는 아무리 일천한 지식을 소유한 저이지만 직시하며 살고 있습니다. 허나 제가 82년생 김지영을 지지한 이유는 당연히 그래도 되었던 지나온 역사 속의 김지영들에 대하여 무관심해 온 저의 공범(共犯)적인 죄책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들의 아픔이 암묵적으로 무시되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렇지 않은 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제 목회 철학 중에 하나는 신념은 신앙이 아니라는 관점입니다. 신념은 어느 한 부분에서 품지 못함을 천명하는 것이지만, 신앙은 주군께서 행하셨던 대로 품지 못함이 없으셨던 그 길을 고독하지만 가는 것입니다. 주군은 수없이 많은 82년생 김지영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왕 속내를 밝혔으니 몰매를 맞더라도 ‘90년생이 온다’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
기성세대로 90년생들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하여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글을 쓸 때나, 아니면 무언가를 표현할 때 대 전제를 갖고 전개하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목회의 현장에서 사역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후배들에 대한 예의입니다. 적어도 그들에게 넘겨주어야 할 유산을 선배로서 갖추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입니다. 립 서비스가 아니라 1961년생 목사는 그래도 이 땅 대한민국이 너무나 힘들고 가난한 시절을 지날 때, 굶기를 밥 먹 듯하며 한국교회를 여기까지 이루어낸 목회자 선배들의 눈물이라는 씨앗 뿌림의 열매를 주워 먹은 행운아(?)였습니다. 그래서 자식 세대인 90년생 후배들에게 정말로 너무 미안한 게 사실입니다. 뿌려 놓은 게 없음에 대한 죄책감, 뭐 그런 감정들에 휩싸여 말 한 마디라도 조심하는 게 정직한 고백입니다. 오늘의 이 기막힌 세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이 지성적 삶에 대한 마땅한 태도라고 믿기에 그렇게 기본적인 마음 자세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90년생들만이 희생자라는 주장은 또 다른 집단적 님비로 비쳐져 유감스럽습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세대는 굴곡을 거쳤습니다. 너무 어리광 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90년생들도 그대들의 삶을 헤쳐 나가야 할 주체에서 예외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 아들 이요한은 1990년생입니다. 아마도 이 글을 소개되면 제 아들에게서 제일의 반발이 있을 것이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1961년생과 1990년생은 같을 수 없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