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목사다운 목사가 되고 싶다.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2015년, p,201) 오래 전에 읽었던 체코 출신의 작가인 밀란 쿤데라의 역작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나오는 4명의 주인공 중에 한 명인 사비나가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읊조렸던 자조감(自嘲感)의 노래를 저자가 기막힌 필채로 묘사한 명 글감이다. 전통적인 윤리, 도덕, 삶의 방향성 심지어는 종교적인 가르침과는 전혀 상관없이 막 살았던 삶의 언저리에서 심각한 우울증을 앓던 한 여인의 소회를 책을 통해 만났을 때, 밑줄을 그어놓았다. 목사로서 심비에 새겨야 할 내용이었기에. 이 글을 다시 추억 속에서 끄집어 낸 이유가 있다. 참을 수 없었던 사비나의 고통의 극점이 다름 아닌 존재의 가벼움이 어찌 그녀만의 일일까 하는 파도가 근래 나에게도 밀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목사로 사는 자는 물질에 혈안이 되어 사는 자가 아니다. 명예도 아니며 교권으로 채색되는 권력은 더 더욱 아니다. 적어도 내 경우는 그렇다. 목사로 사는 자가 추구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은혜다. 역설적인 것은 이 은혜가 나를 존재하게 한다. 이 은혜에서 멀어지면 목사로 사는 정체성이 희미해진다. 그래서 그랬던가 보다. 은혜를 사모했던 것에 목숨을 걸 정도로 민감했던 것이. 이왕 책 이야기를 했으니 쿤데라의 사상 하나를 더 다루어 보자. “진리 속에 살기란 사적인 것(the private)과 공개적인 것(the public) 사이에 있는 장벽을 제거하는 것을 뜻한다.”(위의 책,p,187) 또 한 명의 주인공인 프란츠에 대한 저자의 사상 주입이다. 목회를 하면서 아주 예민하게 다루지만 절대로 녹록하지 않은 일 중에 하나는 프란츠의 생각이 옳은가 혹은 그른가? 에 대한 분별이다. 누군가는 목사가 사적인 것도 개방하기를 기대한다. 반면 어떤 이는 공적인 것을 극도로 감추어야 한다고 종용하는 부류도 있다. 사정이 이런 데도 밀란 쿤데라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사이의 담을 제거하는 것이 진리라고 역설했다. 글을 읽은 자들은 알겠지만 프란츠의 입장에서는 사비나에게 바쳤던 사랑의 내용이 거의 종교적 수준이었기에 그의 술회가 말이 된다. 하지만 오늘 신 사사 시대를 방불 하는 랜덤의 시기를 살고 있는 목사에게는 공사(公私)의 제거가 존재를 더욱 가볍게 만드는 참을 수 없는 치욕으로 다가올 때가 많아 혼란스럽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 무엇’에 대한 기막힌 분별이 목회 현장에서 필요한 이유다. 이제는 은퇴하신 선배께서 오래 전에 사석에서 해 주셨던 말이 되새김질 해 보면 의미가 있다. “이 목사, 아주 가끔은 목사가 베일에 가려져 있어야 돼. 그래서 난 주일 예배를 마치며 교회에서 사라져.” 권위적인 목사는 사양하지만 그렇다고 존재가 가벼워지는 목사가 되기는 더 싫다. 그냥 목사였으면 좋겠다. 힘들 때, 성도 그 누군가가 떠올리는 그런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