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일 토요일 성서일과 묵상 쉐마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145:8-9, 14-21, 이사야 44:1-5, 마태복음 7:7-11 꽃물 (말씀 새기기) 이사야 44:1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마중물 (말씀 묵상) 곳곳에서 ‘묻지 마’ 살인이 일어나고 있다. 불특정다수를 향하여 자행되는 폭력의 희생자는 누구도 예외일 수 없기에 불안함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그러다가 이런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지?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수없이 되묻고 또 되물어보지만 답은 언제나 하나로 도출된다. “신 사사시대인 랜덤의 시대이기에 그렇다.” 사사시대의 그 유명한 말,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21:25)가 답이다. 방법이 없을까? 이 무지막지한 세상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어제도 고민했고, 오늘도 고민하고 있고, 분명히 내일도 고민할 것이 분명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없을까?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듣게 하면 된다. 야훼께서 위기의식을 느낄 때마다, 그리고 대단히 중요한 것을 선포하실 때 마다 관용구처럼 사용하셨던 외침 그대로 듣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야훼의 말 듣기를 거부하는 시대, 그냥 거부가 아니라 신경질적으로 거부하는 패역의 시대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다시 ‘쉐마 이스라엘’을 외치는 수밖에. 지난하고 고독하고 미치도록 외로워도 또 외치고 외치는 수밖에. 엘리위젤의 말이 다시 복기되는데 전율하게 한다. “예언자(저스트맨)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성문 앞에 서서 목이 터지라고 외쳤다. 음란함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그러나 아무도 듣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날마다 외쳤다. 그 모습이 딱해 보였던지 순진한 꼬마가 다가와 아무도 듣지 않는데 왜 헛수고를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예언자가 대답했다. ‘저들이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게 하려고’라고”(엘리위젤의 “팔티엘의 비망록”, 주우 간, 9쪽) 두레박 (질문) 나는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쉐마 하고 있는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존귀하신 주님, 내일 주일 사역을 통해 종도 쉐마 하고 교우들도 쉐마 하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들을 수 있는 귀가 되도록 영혼의 귀와 마음을 열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묻지 마’ 폭력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 이 황당무계함을 어찌해야 할까요? 피해를 당한 자를 위로하시고 이 사회에 그런 흉악한 자를 존재하도록 만든 공범자가 바로 나임을 시인합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 대한민국과 지역사회가 안정화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