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 목요일 성서일과 묵상
스승인가? 애비인가?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119:129-136, 열왕기상 1:28-37, 고린도전서 4:14-20, 시편 105:1-11, 45b
창세기 29:1-8
꽃물 (말씀 새기기)
고린도전서 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마중물 (말씀 묵상)
작고한 소설가 송기숙이 쓴 『마을, 그 아름다운 공화국』을 보면 내가 어린 시절, 다섯 종류의 인간군이 있다고 적시했다.
동네 사람의 존경을 받은 어른, 늘 말썽만 부리는 후레자식, 이집 저집으로 말을 물어 나르는 입 잰 여자, 익살꾼, 조금은 모자란 반편이나 몸이 부실한 장애인이 그들이다.
생각해 보면 그럴 듯하다. 지금 농촌은 붕괴되어 이런 상상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고, 도시도 극단적 이기주의로 인해 공동체 구성 자체가 불가능한 단절의 집단이 되었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 꿈같은 옛 고담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런 비극의 시대가 도래 했지만, 분명한 것은 그래도 옛날에는 이런 저런 인간군으로 사람 냄새가 났다는 점이다. 나는 이 중에 왜 이렇게 첫 번째 인물이 그리운지 모르겠다.
지금 내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것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게 야단을 쳐주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공포다. 이제는 어딜 가나 내가 그 어른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어른이 진짜 어른일까?
바울은 고린도교회 공동체의 지체들이 버젓이 음행을 자행하고도 전혀 죄의식을 갖지 않음에 분노하여 첫 번째 편지인 ‘서신 A’를 보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바울을 공격하고 반목하는 분위기가 역력함은 물론 분파까지 생겼다는 참담한 보고를 글로에 편에 듣고 고린도공동체에 두 번째 편지인 고린도전서를 써서 디도 편에 전달한다. 뿐만 아니라, 디모데에게는 또 다른 미션을 주며 디도를 지원사격하게 했다. 하지만 바울을 반대하는 무리들이 여전히 고린도교회 안에 득실대고 있음은 물론, 이제는 바울의 사도권 마저도 부인하는 심상치 않은 영적 분위기가 팽배하다는 보고를 디모데에게 듣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직접 고린도를 방문한다. 결과는 수모였다. 문전박대를 받고 바울은 에베소로 돌아온다. 슬픔과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던 바울은 소위 말하는 ‘눈물의 편지’, 분노의 편지‘라고 하는 ‘서신 B’를 써서 보낸다. 분실되었지만 이 편지를 받은 고린도공동체 지체들 중에 1/2정도가 바울의 진정성을 이해하고 마음을 돌린다. 하지만 여전히 1/2은 바울에 대하여 대단히 적대적이었다. 괘씸했지만 바울은 포기할 수 없는 고린도교회의 지체들을 위해 네 번째 편지를 쓰는데 바로 지금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성경 고린도후서 1-9장이다. 더불어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바울을 반대하는 무리들이 남아 있음을 알고 마지막 편지라고 할 수 있는 10-13장을 기록하여 보낸다. 다섯 개의 편지를 열거한 이유는 바울이 얼마나 집요하게 고린도교회 지체들과 공동체를 사랑하고 아꼈고 포기하지 않았는지를 복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에 들어와 다른 복음과 여타 거짓 가르침을 전하며 고린도교회에 평지풍파를 일으킨 잘못된 스승과는 전혀 다른 결의 사림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마음을 갖고 있었던 영적 부모였기 때문이다. 즉 존경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던 어른이었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오늘 성서일과의 한 구절을 묵상하며 고린도교회를 향한 바울의 노심초사, 간절함, 그리고 애타함을 동시에 느껴본다. 맞다.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 낳은 자식으로 표현한 말은 정확하다. 그러니 애비의 심정을 어찌 갖지 않겠는가! 지금 교회에 필요한 리더는 스승이 아니라 애비의 마음을 품는 이다. 그래야 교회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바울의 토로가 절절하게 다가온다.
두레박 (질문)
나는 형식적인 스승인가? 애비의 마음을 갖고 있는 스승인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교회는 많은데 갈 교회가 없다고 아우성치는 오늘입니다. 애비의 마음을 갖고 있는 목사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당하는 수모입니다. 바울을 도구로 사용하신 하나님, 세인교회와 부족한 사람을 철저한 주님의 도구로 사용해 주십시오. 우리 교회가 애비의 마음을 품은 교회가 되게 해 주십시오.
나비물 (말씀의 실천)
교회 사랑과 성도 사랑에 더 치열해지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 이 땅에 세워진 교회들이 애비의 마음을 품게 해주십시오. 바울처럼 교회와 성도와 이웃들을 사랑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