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5일 화요일 성서일과 묵상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75편, 스바냐 3:1-13, 갈라디아서 4:21-5:1 꽃물 (말씀 새기기) 스바냐 3:1-4, 8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화 있을진저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 그 가운데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요 그의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요 그의 선지자들은 경솔하고 간사한 사람들이요 그의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내가 뜻을 정하고 나의 분노와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여러 나라를 소집하며 왕국들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 마중물 (말씀 묵상) 스바냐 시대는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있었던 주전 622년 이전이었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요시야 이전의 군왕이었던 므낫세와 아몬의 치세를 거쳤던 남 유다였기에 영적 상태는 말 그대로 최악의 시기였음을 전제한다. 오늘 성서일과에 네 부류의 화이트컬러가 소개된다. 어떻게? 최악으로 인용된다. 방백, 재판장, 선지자, 제사장들이 그들이다. ‘싸르’(방백)는 정치지도자를 의미한다. 그들은 물리력으로 겁박하는 자들이었다. 재판장들은 유전무죄무전유죄의 전형적 패악질을 저지르던 자들이다. 선지자와 제사장은 도리어 율법을 범하므로 성소를 더럽히는 질 나쁜 종교지도자들이다. 주전 7세기를 고발하는 스바냐의 예언 내용들을 보면서 나는 왜 21세기 대한민국이 연상되는 것일까? 작금에 권력을 쥔 자들에게 정치인들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단 1%도 기대할 것이 없다. 참극이다. 사법부는 어떤가? 도진개진이다. 종교계는 어떤가? 오십보백보다. 주전 7세기에 스바냐가 경고한 신탁이 두려운 이유는 오늘 우리 사회에 주는 경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내가 뜻을 정하고 나의 분노와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여러 나라를 소집하며 왕국들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 (습 3:8) 이 와중에 목사로 사는 나는 괴롭고 또 괴롭다. 무섭고 또 무서운 경종은 ‘나를 기다리라’는 메시지다. 모든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시는 그 날이기에 기다리라는 말이 아니라, 벌할 테니 기다리라는 신탁은 몸서리치게 두렵다. 오늘은 목사로 살아가고 있는 내가 너무 불쌍하다. 이러면 안 되는 줄 알지만 그렇다. 키리에 엘레이손! 두레박 (질문) 주님, 어떻게 하면 되지요?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종에게 힘을 주십시오. 제발!
나비물 (말씀의 실천) 로마서 8:26절을 약속하신 하나님께 엎드려 보자. 이게 희망이다.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주님,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목사들을 위로해 주십시오. 격려해 주십시오. 주님 말고는 붙들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목사들이 흘리는 눈물을 닦아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