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지은이 | 옥한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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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출판사 | 도서출판 은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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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 2014-01-22 12:18: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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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한흠 목사가 목사에게’ 를 읽고 달라스 윌라드 박사는 ‘마음의 혁신’에서 이렇게 주님의 삶을 요약했다. “목숨을 잃어 목숨을 얻는 자로 살다.” 정말로 가슴에 새겨야 하는 말씀이다. 감기 몸살로 너무 아팠지만 주간, 약을 먹고 중간 중간 나름 묵상할 수 있어 또 다른 쉼을 가질 수 있어서 감사하다. 금년 초, 부교역자들과 함께 사랑의 교회 수양관에서 교역자 수련회를 가졌다. 수양관에 갈 때마다 고 옥한흠 목사님의 묘소에서 옷깃을 여민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한다. 옥 목사님은 지금의 사랑의 교회가 이렇게 내홍에 휩싸일 줄을 알았을까? 그 답이 ‘옥한흠 목사가 목사에게’(도서출판 은보) 라는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에둘러서 표현했지만 후임 목사에 대한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변한 내적인 갈등이 담겨 있다. 동시에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절망감까지 나는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담임목사로 재직하던 시절 매 주 화요일마다 교역자 회의에서 선포한 설교 녹취록, 그리고 은퇴한 뒤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선포한 옥 목사님의 녹취된 미공개 메시지들을 읽으며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국교회를 위해 조금만 사시지. 조금 만 더...” 옥 목사님이 전한 메시지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달라스 윌라드의 갈파가 아닐까 싶다. 교회를 섬기는 주의 종들이 목숨을 잃지 않기 때문에 도리어 잃는 비극을 맛보아 한국교회가 이 지경이 되었다는 비수 같은 메시지로 나는 들었다. 그를 가리켜 제자훈련에 미친 사람이라고 한다. 이 명제를 부인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왜 그가 제자훈련이 미쳤을까? 죽어야 사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엄청난 도전의 메시지는 이 책에 지천에 깔려 있다. 책의 프롤로그의 외침이 이렇다. ‘천 번을 들어도 다시 듣고 싶습니다.’ 책의 에필로그에서 당시 학생회를 담당하던 분당 우리 교회의 이찬수 목사가 이런 글을 첨부했다. “옥 목사님은 단 한 번도 ‘기능’을 가지고 야단치신 적이 없다. 늘 ‘본질’을 갖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야단 속에서 어떤 사적인 것이 조금도 들어 있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만 생각하시는 애틋함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본다. 뿐만 아니라 그 경고의 메시지 속에는 늘 ‘당신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계셨기에 아직도 애틋한 마음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책 안에 담겨 있는 글 들 중에 가슴을 떨리게 했던 몇 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속된 말로 주의 종은 까불면 안 됩니다. 많이 배웠다고 인기가 있다고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됩니다.” “목회에 있어서 전향적인 자세와 태도는 중요합니다. 이것은 목회자의 영적인 기본자세입니다. 달려가는 태도를 멈춰 버리면 영적으로 메말라 버리기 쉽습니다.” “5년 이상 된 교역자들은 특별히 관료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저는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자율성과 창의성을 가지고 사역하십시오.” “하나님을 속이지 마십시오. 생각이나 행동에 거리낌이 없도록 하십시오. 결국은 심은 대로 거두기 마련입니다.” “남들이 칭찬한다고 우쭐거리지 마십시오. 영적으로 깊은 차원을 가지십시오. 깊이 보고 멀리 보고 환상을 품으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사역이요 우리가 가야할 길입니다.” “나는 한 사람 철학을 가지고 한 사람을 위해서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한 사람이 1,000명을 상징하는 겨자씨 같은 꿈이 저에게는 있었습니다.” “소명자의 순수한 지리는 ‘무조건’입니다. 우리는 항상 평신도보다 한 걸음 앞서야 합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성도들에게 ‘나를 본 받으라’고 말 할 수 있는 수준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복음의 감격이 있습니까? 우리 교회처럼 은과 금이 풍부하고 순풍에 돛단 듯 계속해서 부흥하는 교회에서는 시늉만 하다가 패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잠자기 좋은 편한 교회에서 사역한다고 좋아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영적으로 벼랑 끝에 서 있다는 사실 앞에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는 사역자가 되십시오.” “특별히 친한 성도들을 조심하십시오. 무엇이든지 허물이 없는 사람을 조심하십시오. 허물이 없는 관계는 부부 관계로 충분합니다. 그 외에는 어느 정도의 수준을 요구해야 합니다. “목회는 목회자 자신만큼 발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평신도 수준도 전적으로 목회자의 수준에 달려 있습니다. “목회자는 속도전에 휘말리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변하지 않은 상태로 집사, 장로가 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무서운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감독을 철저히 하면서 목회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것이, 비판하는 것보다 격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도들을 향하여 넘치는 사랑과 눈물이 필요합니다.” “차가운 신앙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과 형제들을 위해 뜨거운 열정이 끓어올라야 정상입니다.” “식으면 변명이 많아집니다. 변명이 많은 사역자는 하나님과 함께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역의 제로순위가 누군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병든 사람, 가난한 사람과 함께 있다면 제대로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 반대에 있다면 변질된 목회자입니다.” “목회를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사람처럼 비참한 사람은 없습니다. 기독교는 사기 치는 종교가 아닙니다. 당장의 열매가 없어도 결과에 대하여 낙심하지 마십시오. 사역의 열매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십시오.” “우리는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목사가 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목사는 ‘성공’과는 관계없는 사람이고 주님의 일에 있어서도 성공이란 없습니다.” “실망을 주는 사람이 있어도 너무 실망하지 말고 너무 좋은 사람도 과대 포장하지 마십시오. 평신도는 항상 평신도입니다.” “영감은 신학적인 용어가 아닙니다. 개인적인 것입니다.” “지금은 천사가 와서 말을 해도 듣지 않는 시대입니다. 따라서 목회자 스스로 늘 깨어서 겸비하여 경책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자신의 사역 스타일을 정착시키십시오. 내 몸을 쳐서 복종하는 노력을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나질 않습니다. 텔레비전 시청이나 인터넷 접속 시간도 줄이십시오. 거기에 빠져 한 두 시간 보내는 습관이 있다면 목회자로 불행합니다.” “자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억지로 강권하여 그 지라에 앉혀 놓은 사람이 목사 될 사람이다.” “은혜 없이, 감격 없이 목회를 한다는 것은 1급사기나 다름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미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이 전파하는 주체입니다.” “육신의 자녀는 독립할 때가 오지만 영적인 자녀는 영원히 독립하지 않습니다.” “은혜가 약화되면 율법이 강화됩니다.” “특별히 사역자에게 있어서 실패란 그 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에 성공하는 것이다.” “나 같은 것을 찾아와 주셨다는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은혜의 시작입니다.” “부는 은혜의 적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갖다가 붙여도 거역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너무 바쁘면 한 사람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악마가 우리를 악하지 않게 만들면 그 대신 우리를 바쁘게 만들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는 수준을 벗어나야 합니다.” “고난이 하나님의 백성을 약하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교회는 결코 고난과 고통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사실 목회자만큼 위선자가 되기 쉬운 직업도 없습니다. 목회자만큼 위선자가 될 확률이 높은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위선이 악습으로 몸에 배면 양심도 없어집니다. 따라서 목회자는 얼마나 무서운 벼랑 끝에 서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내가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이 말에 저도 긍정합니다. 그러나 ‘죽어도 주님을 위해서’ 이 말에는 아직 긍정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후자를 위해 씨름해야 합니다.” “결국 말씀이 사람을 바꿉니다. 말씀이 성령 충만하게 합니다. 말씀이 찬양하게 합니다. 말씀이 무너지면 다 무너집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엉엉 우는 평신도만큼은 따라가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말씀 앞에서 벌벌 떠는 모습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옥한흠 목사님의 로마서 강해를 요즈음 세 번째로 읽는다. 그리고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라 때때로 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읽으면서 내가 하나님께 합당한 목회자로 아름답게 서지 못한 불충을 뼈저리게 느끼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책을 읽을 때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영을 만지는 그리고 비수를 꽂는 옥 목사님의 유고 설교와 같은 메시지를 접하면서 더욱 아쉽고 슬프다. 작금의 들리는 영혼 없는 사랑의 교회의 소리들 때문에. 옥한흠 목사의 목회 아고리즘에 이런 글이 눈에 띈다. “어떤 사역을 하든지 자기 사역을 만들지 말고 교회 사역으로 만들어라” 이 말씀대로만 사역했어도 지금 들리는 추락하는 사랑의 교회는 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을 읽고 책 뒤편에 이렇게 썼다. “아들아, 아버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떤 목사인가?’의 물음을 던져 보았단다. 물음 뒤에 좌절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썩 괜찮은 목사로 살지 못한 자괴감을 느꼈다. 그리고 남은 사역 후회하지 않는 목회자로 서야 하겠다는 내적인 다잡이를 했단다. 이제 신학교에서 천방지축으로 하나님의 학문을 접하고 있는 아들도 아버지가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은혜의 걸음을 디딘 옥한흠 목사님의 목회의 본질을 접하고 뜨거워지는 아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구나. 오늘도 승리하자. 2014년 1월 22일 오전 11시 4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