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6.02.07 셀 사역2024-04-22 16:08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그리스도인으로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행동하는 꼴불견들을 고발해 보자.  

 
경배와 찬양 (WORSHOP)

●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찬송가 455장)
●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복음성가)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본문: 사도행전 21:7-14
● 제목: 천박해지지 않으려면
1) 사도행전에 기록된 빌립 집사의 인생 동선을 살피고 말해보자.
● 사도행전 6장(예루살렘 교회의 7집사 중의 한명으로 피선됨):
● 사도행전 8장(사마리아 지역, 가사 지역의 사역 설명):
● 사도행전 21장(천박해진 빌립의 추락 설명):  

2) 빌립 집사가 영적으로 천박해진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설교를 중심으로)
● 가이사랴에서의 안주함:
● 가이사랴에서의 풍족함:
● 가이사랴에서의 잉여적 삶에 대한 태도:  

3) 천박해지지 않기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태도는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 (설교를 참고해 보자.)
*부족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설교의 메시지로 말해보자.
(부족한 지식, 부족한 물질, 부족한 건강, 부족한 가족 등등을 적용해 보자.)
  

 
사역하기 (WORK)
1) 중보기도
① 담임목사님을 위하여
② 새신자들의 정착을 위하여
③ 사순절 기간을 경건하게 보내기 위하여
④ 셀 원들의 중보기도를 위하여
2) 치유기도
3) 헌금
4) 광고
5) 폐회: 주기도
  

 
설교요약 (SUMMARY)
2016년 2월 7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본문: 사도행전 21:7-14
제목: 천박해지지 않으려면

주님께서 부활하신 뒤, 40일 동안 당신의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다가 감람원이라는 동산에서 많은 제자들 앞에서 승천하시면서 내가 너희들에게 보낼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고 그 뒤 50일 만에 성령을 기다리던 제자들과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이후 예루살렘 초대 교회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엄청난 부흥을 경험하며 기하급수적으로 믿는 자의 수가 많아져 그로 인해 적지 않은 내부적이고 조직적인 문제점 등이 발생되었고, 이에 사도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선한 사역을 위해 성령이 충만한 7명의 집사를 선출하여 그들로 하여금 동역의 일을 감당하게 했습니다. 이후, 다시금 예루살렘 교회는 성령의 권위와 하나님의 사람들의 열정적인 사역으로 인해 부흥의 부흥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정작 예루살렘 교회의 치명적인 약점은 조직이 아닌 선교적인 마인드가 없었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 선교에 대한 부담감이나 책임감 없이 선교적 지평 확장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선교적 마인드가 빈약한 교회를 흩으시기로 결심하셨고 예루살렘 교회에 스데반이 순교를 당한 사건을 위시로 대박해가 일어났습니다(행 8:1).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만이 남았고 이외는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가 양적으로 기하급수적인 부흥을 경험했던 것을 전제할 때, 이 박해 시에 흩어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숫자였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실례로 사도행전 8장의 보고는 곧바로 사마리아 지역에서 승승장구를 하는 빌립 집사의 사역으로 전개됩니다. 빌립 집사는 사마리아 지역으로 가서 그곳에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사도행전 8:4-8절). 빌립의 승리가 얼마나 역동적이었는지는 사도행전 8장 14절 이하의 기록을 참고해 보면 사마리아에서의 승리가 예루살렘 모 교회까지 들려 이 상황의 진의를 알아보기 위해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수뇌부들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전권을 주어 사태를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질 정도였습니다. 사마리아에 도착한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그들의 눈으로 벌어지고 있는 사마리아의 부흥을 현장감 있게 보고 듣고 느끼게 됩니다. 사마리아에서 회심한 형제들이 말씀을 받고 은혜의 사람들로 변화되고 있는 모습을 보았지만 그들에게는 아직 한 번도 성령이 임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성령을 사모하는 사마리아 공동체의 지체들에게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를 하니 성령의 세례가 임하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까지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빌립 집사의 승리는 여기에서 머물지 않고 성령께서 사마리아 지역에서 남쪽으로 70㎞ 정도나 떨어진 가사 광야로 이끌어 갔습니다. 그곳에 성령께서 친히 빌립을 이끌고 가신 이유는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를 만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곳에서 빌립은 내시에게 이사야 53장의 뜻을 풀어 해석해 줌으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받지 못하고 무의미하게 돌아가던 내시에게 영적인 불을 던져줍니다. 이로 인해 내시는 그 자리에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감격적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8:40절 이후로 빌립 집사의 사역을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빌립이 내시를 만난 장소는 이스라엘 남서쪽에 위치해 있는 오늘날의 가자 지역인 가사였습니다. 당시 20대의 젊은 집사였던 빌립은 이런 승리를 기초로 그의 복음 증거 사역은 지속되었습니다. 빌립은 이동 경로를 북으로 돌려 아스돗을 지나 그 지역에서 가까웠던 에그론, 가드, 벧세메스 등의 옛 블레셋 지역의 주요 도시들을 공략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빌립은 유대인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던 지역들을 찾아가 사역을 감당했기에 사도행전 8:40절에서 언급한 ‘아소도와 여러 성’이라고 언급한 곳이 바로 이 지역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남서쪽에서 사역을 감당한 빌립은 그의 최종 목적지인 가이사랴에 도착을 합니다.
이 가이사랴는 당시 이스라엘의 총독 관저가 있었던 곳이고 로마의 군단이 머무르고 있는 전략 요충지로서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종교의 수도라면 가이사랴는 정치적인 수도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의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빌립이 이곳을 복음 증거의 최종 목적지로 삼은 것은 대도시에 머물러 있으면서 예수의 도를 증거 하려는 충분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8장에 기록된 빌립의 나이는 20대였으나 사도행전 21장의 시대적 배경은 사도행전 8장에 비교해 볼 때 약 3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입니다. 다시 말하면 빌립의 나이가 50대에 접어들었다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젊은 시절, 그의 청춘을 빌립 집사처럼 초개와 같이 주님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세 번의 전도여행을 통해 이론으로 형용할 수 없는 이방 선교의 위대한 승리를 이룬 바울은 이제 자신의 마지막 선교지인 로마로 들어가 가이샤 앞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순교의 제물이 될 요량으로 경유지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위해 밀레도 항구에서 배를 타고 고스로 가서 로도를 거쳐 두로에 도착한 뒤 다시 이제 그곳에서 배를 타고 돌레마이를 거쳐 가이사랴 항구에 도착을 했습니다(행 21장).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도착하기 바로 직전 가이사랴에 있는 동역자 빌립 집사의 집에 여러 날 머물게 되었는데 바로 이 때, 아가보라는 유대 출신의 선지자가 가이사랴의 빌립의 집에 방문을 하였고, 아가보 선지자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유대인들에 의해 체포를 당해 결박당하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이방인들에게 넘겨지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예루살렘 행을 만류합니다.
본문 12절에서 바울의 예루살렘 행을 만류한 이들의 공통점은 영적으로 한몫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결박을 당할 것이니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바울의 신변을 염려하는 것이지만 빌립 집사만이라도 그가 이전 사마리아 지역에서 갖고 있었던 영성이든, 아니면 가사에서 가지고 있었던 영성이었다면 마땅히 바울의 예루살렘 행 만류의 대열이 아니라 도리어 바울의 행선에 대하여 뜨겁게 박수를 쳐주어야 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려는 것은 로마에 가서 로마의 황제 앞에 서기 위함이었습니다(사도행전 20:22-24절). 바울은 자신의 생명의 안위를 조금도 생각하거나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에게 주었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바울이 예루살렘을 올라가는 목적이었습니다.
이 영적 프로젝트를 알아야 할 빌립이 가이사랴에서 정착하며 지내는 동안 30년 전 본인이 가사에서, 사마리아에서 나타냈던 성령의 능력, 하나님의 은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강력, 이 모든 것들에서 빗겨나 있었습니다. 빌립이 이렇게 추락한 까닭은 ※ 영적 천박성 때문입니다.

신앙적인 차원에서 ‘천박함’이라는 단어는 ‘영적으로 가난한 상태’입니다. 빌립이 영적으로 가난한 상태로 추락했다면 그 이유는 가이사랴 라고 하는 지역적 배경을 전제할 때 ‘안락함이 그를 영적으로 둔감하게 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는 가이사랴에서 정착을 하고 결혼을 해서 슬하에 결혼하지 않은 4명의 딸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13절에서 이렇게 만류하는 빌립의 가족들에게 선포합니다.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본문에서 고백한 바울의 영적 혜안과 예언적 영성을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빌립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9장-20장까지 사라진 빌립의 이면에 그는 가이사랴 라고 하는 당대 최고의 도시에 거주하며 안착하면서 도시의 안락함에 길들여졌고 그곳에서의 편리함이 빌립의 영성을 좀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정을 이루며 자식을 낳고 보니 이제는 먹고 살기에 바쁜 상황이 닥치자 그는 급격히 세속의 사람으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던 능력의 도구이자 사역자이던 빌립이 세상과 동일해졌습니다. 이전에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보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고 노력했던 빌립이 이제는 세상의 관점으로 하나님의 뜻을 제한하였고, 세상의 가치가 먼저인 자로 변질되었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빌립은 영적으로 가난한 자가 되어 마땅히 영적으로 천박해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발생하는 천박함은 잉여라는 욕심을 갖게 되면서 시작된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잉여란, 남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겨야 풍요로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잉여를 축복의 결과로 여기지 않습니다. 도리어 잉여는 욕심의 산물이며, 천박함으로 안내하는 길잡이임을 경고합니다.
주님께서 벳세다 율리아스에서 이루신 오병이어의 기적은 이만명이 먹고도 남은 12광주리의 잉여의 감동이 아니라 남은 조각이 없도록 거두라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주님은 잉여를 용납하지 않으신 것입니다(요한복음 6:12절). 그 남은 것이 누구를 위한 것으로 배당되는 순간 그것을 차지하는 사람은 반드시 영적으로 망할 것을 미리 보신 주님의 혜안입니다. 이스라엘 신앙공동체가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먹었던 만나와 메추라기는 하나님의 은혜의 성찬이었습니다. 그러나 내일 것까지 채우려는 잉여의 욕심이 생기면서부터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성찬은 와해되었고 그로부터 하나님의 은혜는 제거되고 천박해졌습니다. 그러므로 ※ 천박해지지 않으려면 부족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신실한 사람들이라면 나에게 주어진 환경, 물질, 가족, 학력, 건강 등등이 족하지 않고 부족한 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합시다. 경제적으로 완벽해지면 주님을 찾는 것에서 천박해 집니다. 하는 일이 승승장구하면 주님 앞에서 교만해 집니다. 지금 나의 삶이 안락해지면 하나님이 절실해지지 않는 영적 추락이 시작됩니다. 부족한 것을 감사합시다. 차고 넘치는 것 때문에 만족하지 말고 영적으로 천박해질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 두려워합시다.
핍박이 사라진 교회는 헛헛하고 무기력한 교회로 변질되었습니다. “돈이 주인인 세상에서 우리가 기독교인으로 부름 받은 까닭은 어쩌면 강고한 자본주의의 세상에 균열을 내라는 것은 아닐까?”라는 김기석 목사님의 글처럼 사도행전 21장에서 처절하게 변질되어 천박해진 빌립처럼 인생을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의 강력한 엔진으로 쓰임 받던 사도행전 8장의 빌립으로 남은 삶을 살아내는 셀 원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