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5.12.27 셀 사역2024-04-22 16:06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2015년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 나누기.  

 
경배와 찬양 (WORSHOP)

● 지금까지 지내온 것 (찬송가 301장)
● 주님 말씀하시면 (ccm)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본문: 여호수아 24:14-24
● 제목: 선택하라
1)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에 유언으로 남긴 선택 사항 ① 나누기
● 이유: (본문 14-15절 참고)  

2)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에 유언으로 남긴 선택 사항 ② 나누기
● 의미: (본문 23절 참고)  

3) 내가 신앙의 길에서 집중하고 있는 베스트 5 나누어 보기. (구체적으로) 동시에 베스트 1에 하나님 선택하기를 위하여 삶으로 실천할 내용 모색하기.
● 베스트 1~5위 나누어 보기
● 베스트 1에 하나님 올리기를 위한 삶의 내용 실천해 보기
  

 
사역하기 (WORK)
1) 중보기도
*교회의 기도 제목
  ① 담임목사님을 위하여
  ② 송구 영신 예배를 위하여
  ③ 명품신앙으로 한 해를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④ 2016년 1월 10일에 있을 제 8회 사무총회를      위하여
  ⑤ 환우들을 위하여

2) 치유기도
3) 헌금 기도
4) 광고

5) 폐회: 주기도  

 
설교요약 (SUMMARY)
12월 27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송년주일)

제목: 선택하라
본문: 여호수아 24:14-24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날 하나님께 후회 없는 인생을 보고할지 아니면 그저 그런 인생을 보고할지 또 아니면 수치스러운 인생을 보고할 것인지에 대하여 송년주일을 보내며 성찰해 봅시다.

  여호수아 24장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에 입성하여 부분적으로 12지파에게 땅을 기업으로 분배한 이후인 동시에 여호수아가 이제 나이가 많아 열조로 돌아가야 할 때가 가까이 되었음을 알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세겜으로 불러 놓은 뒤, 유언과도 같은 마지막 고별설교를 행합니다. 그래서 본문을 학자들은 세겜 총회라고도 부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설교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① 아브라함의 가계를 인도하신 일들. ② 모세와 아론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일들. ③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가나안으로 들어온 일 ④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지금까지 가나안의 땅을 분배한 일. 이상의 일들을 통하여 이제 여호수아는 자신이 행할 일을 다 마친 상태에서 세겜에 모인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를 향하여 앞으로 가나안에 살면서 해야 할,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하여 선포 겸 당부하는 메시지를 남기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여호수아의 선포의 말이 본문 14-15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여호수아는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아니면 애굽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그들이 좋으면 그들을 섬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애굽의 각 종 잡신들을 섬기든지 아니면 아브라함이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이었던 갈대아 우르 지역에서 섬겼던 달의 신이든지 상관이 없으니까 그 신들을 섬기라고 몰아칩니다. 이렇게 비장한 선포를 한 여호수아는 반대로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을 섬길 것’이라고 자신의 선택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이 선언을 들었던 이스라엘 신앙공동체가 여호수아에게 다짐한 것이 이어 기록되어 있는데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이 본문 16절, 18절, 21절에 무려 연거푸 세 번에 걸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겜에서 고백한 이스라엘의 다짐을 들은 여호수아는 다시 본문 22-27절까지에 걸쳐서 다시 한 번 재확인하면서 언약의 재다짐과 갱신을 선언하는 장면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여호수아의 선포에서 마치 전쟁에 나가는 장수의 결기(決氣)와 같은 것과 조금도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담대함, 그리고 그 어떤 타협이나 물 타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존감이 보입니다. 어떻게 여호수아는 이럴 수 있었을까요?

1) 하나님을 선택함에 있어서 중간지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음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15절에서 여호수아는 직설적으로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하여 선포하였습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만에 하나 너희들의 눈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 하나님을 버리고 이전에 조상들이 섬겼던 이방의 신들을 섬기든지 아니면 지금 너희들이 섬기고 있는 지금의 우상을 섬기든지 얼마든지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제가 있음을 또한 분명히 선포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려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본문 14절과 23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14절), “여호수아가 이르되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 버리고 너희의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하니”(23절)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이방 신들을 치워버리는 것입니다.

  ‘치워버리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쑤르’는 문자적으로 ‘머리를 베어버리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선포한 이방의 신들을 치워버리라는 말의 의미는 단순히 모셔놓은 산당의 우상의 형상들을 치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자르는 것과 같은 척결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크 부캐넌 목사의 ‘열렬함’이라는 책에서 그는 우리나라의 전남 구레와 경남 하동의 경계선에 위치해 있는 화개장터와 같은 지역인 아프리카 케냐와 우간다 국경의 경계선에 있는 ‘부시아’ 라는 작은 마을을 소개하면서 이 마을에 생기는 이상한 현상을 지적하였습니다. 이 마을의 어떤 한 영역은 케냐도 아니고 우간다도 아니다 보니 폭력과 같은 일이 발생하면 양쪽 나라에서 외교적인 문제로 분쟁이 생기는 것을 꺼려하여 모른 척 넘겨버리는 일이 자행되다보니 치외법권 지역이 되어 도리어 사람들이 이것을 더 안전한 지역으로 생각하여 몰리게 된 현상을 가리켜 영적으로 정의하기를 “길들여진 무법지대”라고 말하였습니다. ‘명목적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자들의 모습이 마치 이와 너무나도 흡사한 이유는 경계지역에 머물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름은 가졌지만 예수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은 ‘길들여진 신앙생활’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유대인들입니다. 이들 중 나이가 든 사람들 가운데는 모세의 인도함에 따라 애굽에서 탈출한 아버지, 어머니의 승전 간증을 들었던 자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승리하신 일을 눈으로 직접 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본문의 유대인들은 여호수아와 더불어 요단강을 건넜던 사람들이고,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것을 본 사람들이고, 아이성 전투가 아간의 패역함 때문임을 본 사람들이고, 가나안의 족속들과의 전투를 직접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이기게 하심을 본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이스라엘 역사의 질고와 파란만장한 삶을 직접 경험한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방의 신을 섬기고, 애굽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기막힌 영적 망가짐을 계속해서 보이고 있는 존재들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이방의 음란한 신들 사이의 경계선에 머물러 있던 자들이 수두룩했다는 고발입니다. 본문의 이 성서적 조명은 본문에 등장인물들이 바로 나임을 고발하고 있는 메시지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유진 피터슨은 “그리스도인의 삶(the Christian life)이란 어구에서 주제는 ‘그리스도인의(Christian)’가 아니라 ‘삶(life)’이다. 삶은 명사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형용사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지녔다면 그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지닌 진짜 사람은 반드시 삶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형용사의 의미가 나타나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사람은 중간지대가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더불어 줄타기를 하든지 아니면 그 줄타기의 줄을 머리를 베는 것처럼 과감하게 베든지를 선택하라고 강력하게 선포합니다.

2) 하나님께로 마음을 향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선포에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재 다짐하는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를 향하여 이방 신들의 목을 베는 것과 같은 과감한 결단과 더불어 또 하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본문 23절). 마음을 여호와 하나님께로 향하라는 권고였습니다. 한글 성경에 ‘향하라’고 번역된 동사는 영어성경에서는 ‘incline’ 이라는 동사의 번역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통상적으로 경사가 기울었다고 할 때 말하는 한쪽으로 완전히 치우침을 의미하는 동사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여호와 하나님께로 향하라고 선포한 여호수아의 권고는 결국 하나님께로 완전히 우리들의 마음을 기울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메시지에서의 여호수아 24:23절의 번역이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온 마음을 드리십시오.”
  주님이 산상수훈에서 분명하게 선포한 수훈은 명쾌한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태복음 6:24절). 주님은 하나님의 백성들 곧 크리스천들을 향하여 끊임없이 촉구하시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께 너희들의 마음을 incline 하든 세속의 가치에 incline 하든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장로교회와 교단을 찾는 허수들과 엉터리 명목적 그리스도인들이 산재해 있는 한국교회 현실이 오늘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여호수아의 선포를 가슴으로 들으며 이 말씀을 기억합시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