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기도의 동지 소개하기 혹은 기도의 동지로 삼고 싶은 교우 말해보기 | 경배와 찬양 (WORSHOP)●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찬송가 455장) ●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 (찬송가 365장)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본문 : 데살로니가후서 3:1-5 ● 제목 : 기도의 역동 1)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지체들에게 중보를 요청한 두 가지의 내용은 무엇인가? 2)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지체들을 위해 기도했던 5가지의 내용은 무엇인가? ● 1-5번까지 내용 말해봅시다. (설교 참고) |
3) 1번과 2번을 통해 나누어야 할 설교의 테마는 무엇인가? 동시에 기도의 역동이라는 말의 뜻을 해석해 보고 기도의 동역자를 만들기 위해 합심하여 기도하자. • 1번과 2번의 설교적 교훈은? • 기도의 역동이라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 • 기도의 동역을 위해 합심하여 기도하자. | 사역하기 (WORK)1) 중보기도 ① 담임목사님을 위하여 ② 가을 열린 모임 4차 사역을 위하여 ③ 추계 셀 대 심방을 위하여(김문숙 셀_30일) ④ 대입 준비를 위한 수능생들을 위하여(11/12) (곽보람, 서혜린, 섭현우, 이주원, 정승민, 차수빈) ⑤ 중보가 필요한 지체들을 위하여
2) 치유기도
3) 헌금 기도
4) 광고
5) 폐회: 주기도
*가을열린 모임 사역 4주차 사역 심도 있게 논의하고 기도하기. | 설교요약 (SUMMARY)2015년 10월 25일 주일 오후 예배 설교 제목: 데살로니가후서 3:1-5 본문: 기도의 역동(力動)
오늘 본문은 바울이 믿음의 씨앗으로 뿌린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이 믿을만한 재목으로 성장하여 이제는 도리어 그들에게 자신의 사역을 위해 중보해 줄 것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본문 1-2절에서 의미 있는 부탁을 남겨 놓습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이 구절을 통해 바울의 일행은 두 가지의 제목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1) 제 2의 데살로니가 교회가 탄생하기를 중보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지체들에게 “데살로니가 교회의 형제, 자매 여러분! 내가 당신들에게 복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여러분과 같이 그 복음을 잘 받아들여 이렇게 많은 인근 주변 지역에 믿음의 좋은 소문이 퍼질 정도로 승리하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제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고린도에 거하고 있는 우리 세 사람을 위해 이제는 여러분이 기도해 주십시오. 여기에서도 여러분처럼 복음을 잘 받아들이는 제 2의 데살로니가 교회가 탄생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라고 기도 부탁을 한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초기 사역을 할 때 고린도는 세속적인 타락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에 영적 상태가 최악이었습니다. 이 점은 바울에게 심신의 피곤함과 영적인 소진을 가져왔고 그로 인해 바울의 일행들을 위해 이모저모 동역을 해 줄 사역자가 절실했습니다. 이 사역의 동역자로 가장 적임자는 복음의 흡수력이 가장 빠른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이었음을 너무나 잘 알았던 바울은 진정성 있게 형제, 자매들에게 중보의 요청을 타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이 해석을 통해 우리는 영혼 구원 사역의 타당성이 제 2, 제 3의 여러분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완성된 인격적 그리스도인은 분명 아니지만 주님은 당신이 원하시는 사역자로 우리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제 2의 나, 제 3의 나를 만들어가자는 말은 그들도, 나도 함께 하나님이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걸작이 되어간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은 완성된 인격체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모델이시고, 표본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주님을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그 분의 삶처럼, 또 그 분이 알려주신 말씀을 익혀가면서 살다보면 나 역시 또 다른 제 2의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 제 3의 지체가 될 것입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아주 담대하게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 여겨 보라”(빌립보서 3:17절)고 했습니다. 여기에 ‘본받다.’ 라는 단어로 번역된 헬라어 ‘쉼미메테스’ 는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처럼 ‘모방하다. 복사하다.’ 등등의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입니다. 바울이 파격적일 정도로 이렇게 담대하게 외친 이유는 그 외침 속에는 “나는 주님을 본받는 삶을 살고 있다. 내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너희들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나를 본받으라.”는 분명한 전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말한 지침을 적용하면 너희들 모두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라는 권고인 것입니다. 만에 하나 우리 세인공동체의 지체들이 바울이 말한 주님 따름 이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신앙의 삶을 살 수만 있다면 우리들 스스로는 또 다른 신앙의 동지들로 하여금 본받고 싶어 하는 공동체의 지체들이 될 것임을 확신하며 더불어 그런 위력적인 그리스도인들로서 중보 기도의 동역자들이 될 것입니다.
2) 사역의 현장에서 주의 말씀으로만 승부수를 걸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울은 중보 요청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이 짧은 교회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승리하고 있는 기적적인 일들의 대전제로 인정하는 것이 바로 ‘말씀’이었습니다. 주의 말씀이 데살로니가 공동체에서 퍼져나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처럼 그렇게 되기를 중보 해 달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사역하는 동안 본인 스스로가 말씀으로만 달음질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7:2-3절이 말하는 바울의 데살로니가 사역을 반추하면 바울은 주님의 고난과 주님의 죽음과 주님의 부활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위대한 일을 행하신 분이 예수님이시고 그 분은 우리 모두의 그리스도이심을 담대히 전했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가장 강력한 무기로 무장시키는 조건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우들은 바울의 이 말씀만으로 무장했던 것입니다. 마가복음 5:21-43절에 나오는 야이로는 아마도 디베랴 지역에 상당수 존재하던 회당 중에서 한 곳을 맡아 운영하는 장이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당시 디베랴는 로마의 황제 디베리우스를 기념하여 만들어 헤롯이 그에게 헌정한 도시였기에 최고의 시설과 인프라를 구비한 도시였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의 회당 책임자는 결코 아무나 할 수 있거나 될 수 없는 무게 있는 직책이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회당장이 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뼛속까지 유대 종교주의자라는 전제인 것도 부인하지 못하는 임명 요소였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죽어가는 딸을 고치기 위해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그가 예수를 찾아옴부터 파격이었을 터인데 불행히도 중간에 12년을 앓던 여인의 방해로 인해 주님께서 지체함으로 인해 사경을 헤매는 딸을 잃게 되는 비극을 맛보게 됩니다. 그가 마침내 딸이 죽어 있는 자기 집에 왔을 때, 그는 이미 죽어버린 딸의 형극을 보며 자탄했습니다. 더불어 주변에서 예수를 원망하고 비꼬는 여론몰이가 팽배하였기에 거기에 편승할 수 있는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합니다. 그랬던 그가 결국은 죽은 딸아이가 소생하게 되고 개인적으로는 주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관건이 마가복음 5:36절입니다.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여러 신앙적인 혼란과 위기 앞에서 주님이 야이로에게 요구하신 것은 세상 사람들의 말을 옆에서 들으신 주님께서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 것과 주군인 내가 앞으로 행하실 일에 대한 전적인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과 세상의 소리를 병립할 수 없습니다. 둘 중의 하나는 포기해야 합니다. 세인 공동체의 지체들은 주님의 일하심과 말씀하심만을 바라보고 승부수를 던지는 주인공들이 되십시다. 선택의 기로에서 세상의 소리에 귀를 닫고 주님을 향한 믿음과 말씀에 승부수를 던진 야이로에게 주어진 은혜는 궁극적 승리였습니다. (마가복음 5:41-43절). 주님의 말씀과 믿음에 승부수를 던져 바로 그 담대함으로 인하여 중보의 요청을 받는 세인 지체들이 되십시다. 믿음은 결코 누구나의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승부수를 던지는 자들만의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알았기에 말씀의 승부수를 걸 것을 종용함과 동시에 이런 승부수를 던지는 자가 전부가 되지 않음을 2절 하반절에서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바울은 이렇게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에게 중보 기도부탁을 한 뒤에 3-5절에서는 본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을 위해 행하는 중보 기도의 내용을 4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너희에 대하여는 우리가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① 데살로니가 교회와 지체들을 굳건하게 하옵소서. ② 데살로니가 교회와 지체들을 악한 자에게서 지켜 주옵소서. ③ 데살로니가 교회와 지체들의 마음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④ 데살로니가 교회와 지체들을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기도의 교통입니다. 주고 받음입니다. 중보의 기도의 숙제를 내 주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한 바울은 동시에 그 기도에 순종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임하도록 이번에는 그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중보 기도의 소통이 자유자재로 역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에게 중보 기도를 요청하고, 또 그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요청했던 그 기도의 소통이 있는 교회가 됩시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기도의 동역자가 있고, 내가 또 그 동역자를 위해 기도하는 역동이 끊어지지 않을 때 우리 교회는 초대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은혜가 진동하는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사도행전 4:31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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