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5.10.04 셀 사역2024-04-22 15:35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 열린 모임 사역을 위하여 셀 원끼리의 전도 대상자 독려하기. (겹침이 없이 1명 대상자 선정하기)  

 
경배와 찬양 (WORSHOP)
● 주의 진리 위해  (찬송가 358장)
● 내 안에 사는 이 (복음성가)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본문 : 데살로니가후서 2:9-12
● 제목 : 탈선하지 마십시다.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리이시다. 그 진리를 벗어나 탈선한 자들에게 임하는 심판의 내용은 무엇인가?
● 설교 테마에 부속된 1번 교훈을 참고하여 말해 보자. (본문은 11절)
● 이 심판의 역설적인 은혜도 함께 나누기.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리이시다. 그 진리를 벗어나 탈선한 자들에게 임하는 심판의 내용은 무엇인가?
● 설교 테마에 부속된 2번 교훈을 참고하여 말해 보자. (본문은 12절)
● 이 심판의 역설적인 은혜도 함께 나누기. (설교를 참고하라)  

3) 1번과 2번의 교훈을 종합한다면 믿음이라는 것은 그렇다면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인가?
• 설교 테마를 참고하라.
• 영적으로 선을 벗어나지 않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안들 모색하기. (고린도전서 13장 참고)  

 
사역하기 (WORK)
1) 중보기도
  ① 담임목사님을 위하여
  ② 추계 셀 대 심방을 위하여(이경선 셀_16일)
  ③ 가을 열린 모임 사역을 위하여
    (10월 4일~7주)
  ④ 대입 준비를 위한 수능생들을 위하여(11/12)
    (곽보람, 서혜린, 섭현우, 이주원, 정승민)
  ⑤ 중보가 필요한 지체들을 위하여
*가을열린 모임 사역 심도 있게 논의하고 기도하기.

2) 치유기도

3) 헌금 기도

4) 광고

5) 폐회: 주기도
  

 
설교요약 (SUMMARY)
2015년 10월 4일 주일 오후 예배 설교
제목: 데살로니가후서 2:9-12
본문: 탈선하지 마십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봅시다.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9-10절).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는 주님이 이미 오셨다는 재림의 성취를 선포하며 거짓으로 재림을 가르치며 미혹하는 자들로 인하여 많은 선한 주의 백성들이 혼동하며 요동하고 있었습니다. 거짓 재림을 가르치는 자들의 정체는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하여 대적하여 하나님의 자리에 자기가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자칭 선언했던 하나님의 대적자들 이었습니다.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4절).
 이들은 하나님의 성전의 자리를 찬탈했던 또 다른 이름의 악한 자였습니다. 악한 자는 사탄의 활동에 따라 움직인다는 특징이 있는데 사탄이 휘두르고 있는 모든 능력, 표적, 거짓 기적, 불의 등을 통해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간 자였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이 거짓이라는 점입니다. 이와 같이 사탄도 능력을 행하는 존재이기에 바울은 자신의 서신에서 예언하는 은사를 사모할 때 반드시 영 분별함의 은사를 같이 간구하라고 한 것입니다.
  악한 자는 사탄의 속임수로 인해 멸망하는 자들입니다. 악한 자들이 사탄의 거짓 속임에 미혹되어 사탄의 활동을 추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 진리의 길에서 이탈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10절 b).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진리의 길에서 이탈하지 않는 것입니다. 역으로 이 길에서 이탈하면 누구든지 예외 없이 사탄에게 공격받아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리는 악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진리의 길에서 이탈한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4:6절의 대명제는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이 진리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을 본문 10절에 적용한다면  구원을 받지 못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받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자들이 구원의 반열에서 탈락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키에르케고르(덴마크 크리스챤 철학자)는 우리를 위한 주님의 사랑을 어떤 왕과 가난한 여인의 사랑이야기를 빗대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 가슴 아픈 사랑을 이루기 위해 왕의 권리를 포기하였고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슬픔을 스스로에게 돌리셨던 분이 계신다. 그 분이 바로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또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보좌를 버리셨던 주님, 버린 것도 감사의 감사이지만 직접 헛간에 오셔서 누더기 옷을 입고 지내시면서 우리와 같이 거하시고 우리들의 아픔과 고통과 환란을 이기게 하시고 죄악의 사슬을 끊어 비천한 사탄의 종의 위치에 있었던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의 격상을 허락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사랑은 분명 ‘진리의 사랑’ 이었습니다.
  이 위대한 사랑은 거부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이 위대한 사랑의 전제는 그대로의 수용 말고는 없습니다. 이 사랑을 수용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데살로니가 교회에 존재하던 자들 중에 악한 자들은 사탄의 미혹에 빠져 이 사랑을 거부했다고 바울은 고발합니다. 이 사랑을 거부한 자들의 공통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진리에서 이탈한 것입니다.
  본문 11-12절은 진리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탈된 자들에게 임한 심판의 내용을 분명히 보고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본문은 심판 내용의 두 가지를 알려줍니다.
 
1) 내버려둠입니다. (11절)

문자적으로 11절을 해석하면 하나님께서 미혹하게 하는 역사를 계속해서 그들에게 보내셔서 악한 자들의 악함을 다 악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유진 피터슨은 “하나님께서는 악에 사로잡혀 있는 그들로 하여금 자기 술수에 당하게 하십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그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심판은 방치입니다. 내버려 두심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 하나님이 행하시는 심판 중에 가장 무서운 심판은 심판 받을 대상자들에게 아무런 일을 행하시지 않고 그대로 멸망하게 하는 방치의 심판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동성연애자들과 같이 죄를 반복하는 자들에게 일찍이 내버려둠에 대한 경고했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로마서 1:26-28절).
  방치됨은 저주입니다. 내버려둠은 최고의 불행입니다. 이런 면에서 내 뜻대로 기도했는데 기도의 응답이 있었다면 기뻐하지 말고 더 긴장해야 한다고 ‘사귐의 기도’ 에서 말한 김영봉 목사의 권면은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교훈입니다.

2) 불의를 좋아하게 함입니다. (12절)

  진리를 거부하는 자들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것처럼 보이는 비 진리, 즉 불의를 보게 되며 또 그것과 친하게 되는 것입니다. 비 진리와 의기투합하는 자들은 불의를 사랑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바울이 노래한 사랑 노래의 압권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고전 13:6)입니다. 이 말씀은 보편적 상식입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면 사랑은 반드시 진리와 함께 거하기를 원하고 그렇게 되는 삶을 기뻐합니다. 반대로 불의를 기뻐하는 자들은 사랑하지 않는 자들이며 그들은 진리와 함께 거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로마서 2:8절에서 바울은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고 직설합니다. 바울의 이 경고를 보면 불의를 기뻐하는 자에게 임하는 결론이 심판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믿음이 무엇인지 우리는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란 예수라는 진리를 이탈하지 않아 항상 그 진리 안에서만 말씀하시고 거하시는 주님을 느끼며 사는 것입니다. 챨스 프라이어 목사도 이렇게 갈파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은 오직 한 가지이다. 예수께서 당신의 마음을 그 분의 집으로 삼으시게 하시고 당신 혼자서 결코 살 수 없었던 삶을 그 분에게 내어드려 그 분 예수께서 당신 속에서 살 수 있도록 해드리는 것이다.”
  무슬림들이 성지 순례를 하기 위해 방문한 사우디아라비아 미나에 있는 ‘마귀의 돌기둥’에 돌을 던지는 의식을 행하던 중에 밀려든 인파로 인해 일어난 비극적 참사는 거의 매년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위험한 일이 된 것을 알면서도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길을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가는 것은 그들은 그 길을 가는 것이 진리를 사수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서 주님을 향한 믿음의 선에서 탈선하지 않고 진리의 사랑을 거부하지 마십시다. 그리하여 주님으로부터 내버려둠을 당하지 않으며, 불의를 따르는 자가 되지 맙시다. 오직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심을 기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