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5.08.30 셀 사역2024-04-22 15:34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 고난이 변장하고 찾아온 하나님의 축복인 것을 진심으로 깨달았던 예를 소개하고 나누어 보기.  

 
경배와 찬양 (WORSHOP)

● 어려운 일 당할 때 (찬송가 463장)
●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복음성가)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본문 : 열왕기상 17:8-16
● 제목 : 사르밧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1) 엘리야가 사르밧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서 일하셨던 것과 상황이 급반전 된 내용을 말해보자.
● 하나님이 먼저 일하신 내용: 본문 8-9절을 참고하여 말해 보자.
● 엘리야가 도착하였을 때의 급반전 상태: 12절 본문 참고   

2) 사르밧 과부에게 엘리야가 요구한 내용과 그 이유를 설교를 참고하여 말해 보자.
● 요구한 내용: 본문 13절 참고
● 요구한 이유: 설교 테마의 두 번째 내용을 참고하자.  

3) 오늘 내 삶에서 경험되는 영적 사르밧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는가?
• 방법 1)
• 방법 2)
• 그 방법을 달라고 하나님께 전심으로 기도하기  

 
사역하기 (WORK)
1) 중보기도
  ① 담임목사님을 위하여
  ② 셀원들을 위하여
  ③ 대입 준비를 위한 수능생들을 위하여
    (곽보람, 서혜린, 섭현우, 이주원, 정승민)
  ④ 중보가 필요한 지체들을 위하여

2) 치유기도
3) 헌금 기도
4) 광고
5) 폐회: 주기도문  

 
설교요약 (SUMMARY)
2015년 8월 30일 주일 낮 설교
제목 : 사르밧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본문 : 열왕기상 17:8-16

C. S. 루이스의 말을(고통의 문제) 빌자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임하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복이 고난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공동체와 집단 중에서 고난을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말하는 유일한 곳은 교회이며 성경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고난을 성찰해야합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곳은 사르밧이며 정치적인 배경은 북 왕국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이었던 아합과 그의 아내 이세벨이 통치하고 있었던 영적 절망의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은 북 왕국의 사악함을 아시고 당신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디셉 사람 엘리야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엘리야로 하여금 북 왕국 이스라엘의 통치자인 아합에게 경고하신 것은 가뭄이었습니다(왕상 17:1).
엘리야를 통하여 선포하신 하나님의 이 선포는 북 왕국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전 포고였습니다. 당시 북쪽은 이방의 땅이었던 사르밧 출신의 여인 이세벨이 왕비로 등극한 이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라는 농경의 신이요, 풍요의 신이라고 정의하던 우상을 섬기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왕상 17:1b)고 선포합니다. 비의 신들인 바알과 아세라를 향한 하나님의 선전포고입니다. 엘리야의 선포는 비를 내리게 하는 주체가 바알과 아세라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강력한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비를 내리는 주체에 대한 혁명적인 선언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리고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시작을 알리는 단초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이 선언을 한 뒤 그릿 시냇가에 가서 숨어 지내라는 주님의 명령을 받고 그릿에서 거하는 동안 하나님이 보내신 까마귀를 통해 전달해 주시는 떡과 고기를 먹었고 그릿 시냇가의 냇물이 마르기전까지 그곳에서 물을 먹으며 견뎠습니다. 그러나 그릿 시냇가의 물도 말라버렸습니다. 이제는 엘리야 자신도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태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다시 엘리야에게 찾아오셔서 사르밧으로 내려가 기다리고 있는 한 과부를 찾아가라고 명하십니다. 엘리야는 그곳으로 내려가 거주하던 한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사르밧도 가뭄으로 인한 피해에서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 사르밧에 살고 있었던 과부는 가뭄과 남편이 없음으로 인해 아사 직전까지 몰린 불행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여인에게로 가라고 엘리야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여인에게 먹을 것을 요청하라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명령을 내리시기까지 하셨습니다(본문 10-11절).
사르밧에서 만난 한 과부에게 가뭄으로 극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귀하고도 귀한 물을 달라고 먼저 요구를 합니다. 이 여인이 엘리야의 말대로 귀한 물을 가지러 가는 것을 보자 엘리야가 다시 그녀를 불러 이번에는 떡 한 조각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여인은 갖고 있던 감정을 드러내며 불편한 심기를 비춥니다(본문 12절). 당신이 살아있다고 말하는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에게 이런 요구를 당신이 나에게 하지만 내 현실은 떡은 고사하고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이 조금 있을 뿐이라고 에둘러 항변합니다. 이제 남아 있는 이 재료들을 가져다가 음식을 해서 먹은 뒤에 이제 질기고 질긴 생명을 끊으려고 한다는 비장한 말을 던집니다. 여인의 이 말을 들은 엘리야의 반응이 본문 13-16절의 말씀입니다. 엘리야는 나름 성이 나 있는 여인에게 확신을 줍니다. 내게로 음식을 만들어 가지고 오면 하나님께서 비가 이 땅에 내리기 전까지 너의 집에 있는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고 그 병의 기름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며 그로 인하여 생명은 물론 하나님의 기적을 맛보며 살게 될 것임을 약속합니다. 여인은 엘리야의 말대로 순종을 하게 됩니다. 열왕기상의 역사가는 그렇게 순종한 여인의 이후 이야기를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고 전합니다.
현존하는 구약학자로 유명한 윌터 브루그만 교수는 자신의 열왕기상 주석서에서 이 대목을 “과부와 아들이 계속 빵을 먹으며 살 수 있게 된 것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온 나라가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극한 빈곤에 처해 있는 과부의 현실과 형편을 감안하면 사치스러운 풍요로움이었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성도에게 주어진 사르밧이라는 고난의 한 복판에는 하나님이 항상 일하고 계신다는 교훈입니다.
엘리야는 디셉 출신의 선지자로 정치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전혀 세속적인 백 그라운드가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아합과 맞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엘리야와 함께 하고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사르밧 과부를 하나님의 측면에서 보면(본문 9절),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사르밧에 살고 있는 과부를 내가 먼저 찾아가서 그녀에게 이미 손을 써 놓았다는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은 엘리야를 위하여 준비해 놓으신 하나님의 철저하신 배려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을 해보면 하나님은 가루 한 움큼과 병에 있는 기름 조금이 전부인 가난한 여인의 삶을 체휼하셨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로 하여금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사르밧 과부를 통해 알게 됩니다. 이미 죽을 각오가 되어 있을 정도로 심히 피폐해 있는 한 여인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본문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즉 엘리야의 고난의 행군 속에 미리 앞서 가셔서 엘리야를 돕고 계시는 하나님, 사르밧 과부라는 한 여인의 삶의 고난이라는 굴곡진 내부에 들어가셔서 그녀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하나님은 당신의 고난 속에 뒷짐 지고 계시는 분이 아니라 그 고난의 한 복판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교훈입니다.
창세기 4:9-10절은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입니다. 가인은 아벨에게 완전 범죄를 이루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인을 찾아 오셔서 동생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자 가인이 변명을 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가인에게 “네 아우의 핏 소리가 땅에서 내게 호소한다.”고 말하셨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사람은 잊어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2) 오늘 나에게 주어진 사르밧의 고난을 극복하는 비결은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는 것이라는 교훈입니다.
본문 13절은 하나님이 사르밧 과부에게 행하실 일을 조명해주셨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사르밧 과부의 반응은 엘리야에게 음식을 공궤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습니다. 마지못해 하는 것과 남아 있는 재료들을 다 쓴 뒤에 아들과 함께 죽으려고 한다는 비장한 말까지 남깁니다. 또 12절에서 사르밧은 시돈에 속한 이방의 땅이었기에 그녀 역시 바알과 아세라가 하나님보다는 더 친숙한 이방적 종교문화에 친숙해 있었을 것이 분명한데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는 여인의 고백을 전제한다면 이 여인은 하나님이 미리 조명해 주셨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그녀가 남은 허접한 재료들을 사용하여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난 후에 죽으리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과 계획하심이라는 분명한 조명을 받은 사르밧 여인은 그 때까지만 해도 그녀의 우선순위는 ‘자기와 자기 아들’ 이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한 우선순위를 재발견할 것을 명령하셨을 것인데 그녀는 요지부동하였습니다. 제일 순위는 자기였습니다. 이렇게 견고한 여인에게 엘리야가 판을 바꿀 것을 종요하는 것이 13절입니다. 제 1 순위는 엘리야를 위하여, 제 2 순위는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로 판을 다시 짤 것을 엘리야는 요구합니다.
본문의 엘리야의 이 요구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에 대한 순종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르밧이라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제 일 순위에 놓고 그만을 바라보겠는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너에게 사르밧을 극복하기 위해 너의 생각과 너의 의지와 너의 삶의 경륜이라는 일 순위를 내려놓고 하나님이라는 존재로 그 사르밧을 이길 수 있도록 자리를 이동하겠는가를 지금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오늘도 주님은 우리들에게 우선순위를 묻고 계신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내가 당하고 있는 영적인 사르밧의 땅에서 그 사르밧의 고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무엇을 선택하고 있습니까? “기도가 상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상황은 기도하는 내가 바꾼다는 오스왈드 챔버스의 말에 동의하나, 이 일이 이루어지기 위한 대전제는 기도하는 내가 하나님의 식을 고집하는 나로 바뀌어 질 때입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자기’라는 먼지 같은 테두리 안에서 머물고 싶어 하는 인간의 그 허접함을 냉소하는 촌철살인을 남겼고, 베드로는 성령을 받기 전에 주님에게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라며 압박을 가했지만(마 10:28)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뒤에 그의 패러다임은 금과 은이 없어졌습니다(행 3:6). 왜냐하면 베드로 안에는 예수 그 한 분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선순위의 변화를 가져온 자의 삶의 흔적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본인들만의 사르밧이라는 고난을 예수로 삶의 우선순위를 바꿈으로 인해 주님이 나를 이기게 하시고 그 환경을 극복하게 하시는 진정한 승리를 맛보는 주인공들이 되십시다. 내가 당하고 있는 고난과 고통이라는 오늘의 사르밧의 고난이 임할 때 하나님은 내 삶의 한 복판에서 나를 위해 일하고 계심을 기억합시다. 그 때야 말로 나의 삶의 궤적을 ‘나’라는 우선순위에서 ‘하나님’이라는 존재로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