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5.08.23 셀 사역2024-04-22 15:34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서정적인 노래 중에 본인이 좋아하는 노래 소개하고 불러 보기.  

 
경배와 찬양 (WORSHOP)

● 내 기도하는 그 시간 (찬송가 364장)
● 수많은 무리들 줄지어 (복음성가)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본문 : 데살로니가후서 1:11-12
● 제목 : 중보자이십니까?(2)
1)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에게 중보자가 되라고 했던 중보의 내용을 2주 설교와 관련하여 말해보자.
● 중보 했던 내용:

● 중보의 결과:  

2) 내가 중보를 하면서 받았던 은혜를 간증해 보자.
● 중보 하여 받은 응답 나누기:

● 중보 하였는데 대상자의 영적 상태가 준비되어 있지 않아 도리어 나에게 은혜가 돌아온 간증 나누기 :  

3) 지금 내 삶에서 가장 시급한 중보의 내용을 지체들과 함께 나누고 전심으로 기도하기.
● 중보 내용 ①:
● 중보 내용 ②:
● 전심으로 기도하기  

 
사역하기 (WORK)
1) 중보기도
  ① 담임목사님을 위하여
  ② 셀원들을 위하여
  ③ 대입 준비를 위한 수능생들을 위하여
    (곽보람, 서혜린, 섭현우, 이주원, 정승민)
  ④ 교회 부흥과 나라를 위하여(정치, 경제, 안보 등)
2) 치유기도: 연약한 지체들을 위하여
3) 헌금 기도
4) 광고
5) 폐회: 주기도문  

 
설교요약 (SUMMARY)
8월 23일 주일 오후 예배 설교 (데살로니가후서 5번째 강해)
본문: 데살로니가후서 1:11-12
제목: 중보자이십니까? (2)

중보기도는 믿는 자에게 힘을 주는 무기임을 믿었던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이 이름값을 하는 그리스도인들로 서주기를 기도했고, 동시에 나의 기도를 통해 데살로니가 교회 지체들이 역사하는 하나님의 힘을 공급받기를 기도했습니다. 두 번째 본문 설교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을 향한 중보 기도의 결과를 바울이 단언하여 선포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12절). 바울이 밝힌 중보기도의 결과는 두 가지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3) 성도의 중보기도를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게 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지금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을 위해 우리가 중보를 하는 중요한 이유는 주 예수의 이름이 데살로니가 교회는 물론 교회의 지체들 안에서 높여짐으로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함이라고 역설한 것입니다. 바울의 이 가르침은 대단히 중요한 교훈입니다. 예를 들어 중보 기도를 하는 어떤 자가 있는데 동시에 그 중보가 진정성이 담보된 기도라면 그 기도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은혜가 담보된 기도라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기도를 드릴 때 이기적인 기도가 되기 십상인데 전술한 어떤 이의 중보 기도는 철저하게 이타적이라는 말이며 이것은 곧 주님이 너무나 기뻐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인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기도를 드렸다면 그는 지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 증거이기도 한 것입니다.
일천번제를 기브온 산당에서 드린 솔로몬이 주님께 드렸던 기도가 자기를 위한 기도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자신이 어린아이와 같아서 백성들을 치리하고 다스리기가 참 부족하다고 인정하여 지혜를 간구한 것입니다(왕상 3: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기뻐하셨습니다(왕상 3:10).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임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 중에 중요한 신앙적 요소가 바로 이타적 기도인 중보기도입니다. 이것을 이미 안 본회퍼 목사는 그의 불후의 명작인 ‘신도의 공동생활’에서 이렇게 갈파했습니다. “우리가 중보기도를 드리는 바로 그 시간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안에서 매일 새로운 기쁨이 솟는 원천이 되게 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 우리들이 중보 하는 이유는 그 중보를 들으실 때 주님이 기뻐하시고 그것을 통하여 주님은 교회 공동체가 드리는 영광을 받으신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을 향하여 중보하며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12절 전반절). 주님도 이 점을 분명히 하셨습니다(요 14:13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다락방 강화의 끝부분에서 주님이 제자들에게 언명하신 내용이 감동입니다(요 13:31-32절).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주 예수께 영광을 돌리는 자는 아버지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됨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중보자는 이런 동시다발적인 은혜를 한꺼번에 드리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너희 가운데에서’입니다. 증보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공동체에 하나님은 당신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겠다고 선언하셨다는 말입니다. 공동체 안에 거하시는 주님보다 더 큰 은혜가 없습니다. 이것을 당신의 백성들에게 알려주기를 너무나도 간절하셨던 주님께서 이런 이유 때문에 스바냐 예언자에게 이렇게 노래하게 하셨던 것입니다(습 3:16-17).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우리 세인 공동체가 중보 하는 공동체가 됨으로 인하여 우리 가운데에서 영광을 받으시는 은혜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4) 중보기도를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중보기도의 대상자도 영광을 얻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본문 하반절에서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믿는 자들만이 알 수 있는 비밀입니다.
중보 기도자는 물론 대상자도 영광을 받게 된다는 교훈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는 본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중보기도를 받는 자였던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도 하나님께서 영광을 돌려주신다고 약속하신 대상이 된다는 것을 지금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기도가 마음에 들어 기쁘셨다고 했습니다. 그 기쁨의 발로를 주님은 이렇게 되갚아주시겠다고 솔로몬에게 약속하셨습니다(왕상 3:13-14).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주님은 솔로몬에게 분명히 “지혜는 물론 구하지 아니한 것도 줄 것이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부귀와 더불어 또 하나, 영광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솔로몬이 변질되어 타락하기 전까지 그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았는지를 잘 압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같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 같지 않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위로는 세상이 주는 위로와 같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 공식으로 접근한다면 이것 또한 사실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영광의 복은 세상이 주는 영광과는 족히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이렇게 이 은혜를 빗대서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라고 선포했습니다.
중보자가 누군가를 위하여 이타적 기도를 드렸는데 그 기도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웠으나 문제는 그 이타적 기도를 받아야 할 대상자가 하나님께 온전하지 못한 상태인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기도를 해도 그 기도를 통해 승리를 해야 할 대상자가 영적으로 준비가 되지 못한 상태라는 말입니다. 그 때는 중보자에게 축복이 되돌아오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중보 했지만 그 기도는 조카 롯을 비롯한 사람들과 성읍을 위한 기도였음이 분명합니다. 이 차원에서 아브라함의 중보는 응답받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에 문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소돔의 영적 상태가 문제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도는 그의 자손들을 통한 번창함으로 돌아와 응답받았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중보는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기는 했지만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모세의 기도가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신앙공동체의 죄악으로 인하여 그 기도가 응답받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중보는 모세의 자손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의 영적 반열의 마지막 보루로서의 역할을 끝끝내 감당하여 그의 계보가 복된 계보로 이어지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혈육 곧 친척들이 주께로 돌아오면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도 괜찮다는 목숨을 건 중보를 했습니다. 바울의 기도는 오늘 이 시대까지도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바울의 기도가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완악함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기도를 통하여 전 세계의 이방인들이 주님을 받아들였습니다.
바울은 승리자로 지금도 우리들의 숨결 속에 남아 있습니다. 중보의 기도는 하나도 실속 없는 기도가 없음을 교회사의 역사가 증명 합니다. 이 믿음의 중보 기도가 드려져야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중보하면 그 중보를 받는 대상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모른다하지 않고 기억하십니다. 그것이 중보의 힘입니다.

우리 교회에 중보기도가 살아서 움직이면 여러분과 여러분의 중보기도를 받는 자들을 통해 이런 기막힌 은혜들이 우리 교회에서 쏟아질 것을 믿습니다. 중보기도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우리들이 생명을 걸고 드려야 하는 성도의 필수적인 승리 도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