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5.08.09 말씀 요약지2024-04-22 15:33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8월 첫주와 둘째주는 무더위로 인하여 2주간 휴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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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요약 (SUMMARY)
8월 9일 주일 오후 예배 설교 (데살로니가후서 3번째 강해)
본문: 데살로니가후서 1:5-10
제목: 갚으시리라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인종차별정책으로 흑인들의 인권 유린의 대표적인 온상지였으나 인권 회복과 민주화 투쟁을 통해 지금은 민주주의 국가 체제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남아공의 지금의 모습이 있기까지 투쟁했던 이들의 우분투 정신과 민주화 정신은 지금 그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으나 그들은 오늘도 기억되고 되새겨지고 있다는 사실이 적지 않은 위로요 보상일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보상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10-12절에 나오는 빌라델피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①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 ②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리라 ③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리라  ④ 너희들의 이름을 새 예루살렘에 새겨 주리라. 또한 바울이 말한 로마서 8:18절의 말씀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마태복음 5:10-12절의 약속하신 복이 있습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보상에 대하여 더 적극적으로 약속하고 있습니다(본문 6-9절).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은 여러 종류의 핍박을 당했습니다. 가장 심각한 핍박은 유대인들의 핍박이었습니다.그들은 예수 믿는 자들에 대하여 아주 도전적으로 도발했던 자들이었으며, 데살로니가 지역에 만연했던 우상숭배자들 즉 황제 숭배자들의 핍박도 만만치 않았을 것은 자명합니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도발과 핍박에 비해 결코 좌시될 수 없었던 또 다른 고난은 교회 내에 있었던 변하지 않던 신앙인 중에 불신자들로 인한 영적인 스트레스였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핑계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게으른 자들 말입니다. 이들은 주님을 인정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교리를 핑계로 종교를 이용하는 편협한 자들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내외적인 일련에 도발하는 자들의 일체의 행위를 바울은 박해와 환난이라는 단어로 총칭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고난을 인정하라고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에게 선언합니다(본문 5절).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바울은 고난을 피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① 끝 날에 하나님이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실 때 그 심판에서 제외되는 자들을 추리는 증거(표)이기 때문이다. ② 고난을 받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③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신앙의 연수는 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을 당하고 있는 어린 신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는 본문에 또 다른 모습으로 적시하고 있습니다. ⓐ 환난을 주는 자들을 그 날에 반드시 환난으로 갚으신다는 것. ⓑ 환난을 받는 자들에게 내가 안식을 줄 것. ⓒ 그날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황제숭배자, 신비주의자)와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유대인들, 게으른 자들)들에게 임할 형벌이 정해져 있다는 것. ⓓ 앞에 언급한 세 명의 부류들에게는 주의 얼굴과 그의 영광에서 배제되어 영원한 형벌의 자리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신앙인들과 불 신앙인들을 향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뜻의 호불호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 뜻의 압권은 본문 10절 마지막 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주님은 반드시 오셔서 그 동안 환난과 핍박을 당하던 당신의 백성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동시에 그렇게 영광을 받으신 주님은 그 백성들을 깜짝 놀라게 하실 위대한 구원과 보상의 프로젝트를 갖고 당신의 백성들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이 부분은 우리가 이 땅을 사는 동안 믿음의 자리를 이탈하거나 떠나지 말아야 함을 분명하게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주님이 그 날, 당신을 향한 신앙의 잣대를 대셔서 분명한 심판의 획을 그으시려는 의지를 천명하고 계신 이유는, ※ 하나님은 공평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이 말은 성경에서 당신이 약속하신 약속의 말들을 반드시 이루셔서 당신의 공의를 만천하에 이루시는 것을 보여 준다는 의미입니다. 그 날 공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은 크로노스의 시간 동안 그 동안 사랑과 인내라는 당신의 속성을 가지시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카이로스의 시간이 되어 당신이 행하셨던 인내와 사랑의 속성을 거두시고 또 다른 속성인 공평을 이루시는 것이 바로 심판입니다. 심판은 주님이 갖고 계신 공평의 실천적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평등(equality)의 하나님이 아니라 공평(equal justice)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보편성을 가지시고 평등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것을 기대하셨고 기다리셨고 또 참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전능성을 갖고 무소불휘의 힘을 휘두르지 않으셨습니다. CS 루이스의 갈파처럼 하나님께서 하지 말아야 할 것까지도 행하시는 전능성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말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자유의지와 선택을 존중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하여 주님은 그 날 공평의 속성을 가지시고 계수(COUNTERING)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예언자 이사야는 이사야 5:16절에서 이렇게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시리니”, 또한 시편 97:1-2절에서도 주님의 공평하심을 찬양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 구름과 흑암이 그를 둘렀고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
  마가복음 10장을 보면 영생을 얻기 위해 찾아온 청년이 주님이 요구하시는 재물을 나누라는 명령을 거절함으로 그 기회를 놓친 장면이 나옵니다. 주님께서 영생의 기회를 놓친 그 청년의 일화 끝에 그 유명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뚫는 것처럼 어렵다는 교훈을 선언하십니다. 바로 이 때 이 교훈을 받은 베드로가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작심한 듯 주님께 이와 같이 묻습니다. “우리들은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우리에게 약속된 그리고 보장된 복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답변이 마가복음 10:28-30절입니다.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이 말의 의미는 분명한 보상이 예비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신앙인들은 이것이 유치찬란한 것이 아닙니다. 마땅히 기다려야 할 하나님의 보상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 함께 그 하나님을 높여 드리십시다.

  건물을 예로 든다면 한 건물은 겨울을 포함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인 속전속결로 지어졌고, 또 한 건물은 봄부터 시작하여 여름이 끝나기까지 꼼꼼하고 든든하게 건물을 세웠습니다. 이 두 건물은 견고성과 보온성과 내구성과 외형적인 아름다움까지 포함하여 절대로 동일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수고와 사랑과 애정이 포함되어 있느냐? 에 따라 그것은 판가름이 납니다. 지어진 건물도 그럴진대 하물며 하나님의 사람들이 환난과 핍박을 견디며 이 땅에서 만들어간 반석 위에 세운 집과 명목적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하여 세속적 마인드에 빠져 이 땅에서 모래 위에 집을 세운 자들을 하나님이 공평하게 대우하실 리 없습니다.
  우리 모두 공평하신 하나님이 오고 계심을 명심하고 그날에 주님으로부터 반드시 공평하게 갚으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남길 분깃들을 수여 받는 지혜롭고 충성스러운 종들이 되십시다. 사도 요한의 묵시록은 믿는 자들을 이렇게 위로하십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요한 계시록 21:3-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