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5.06.21 셀 사역2024-04-22 15:30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가르치는 자와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주의 말씀 실천하기  

 
경배와 찬양 (WORSHOP)

● 여기에 모인 우리 (찬송가 620장)
● 환란과 핍박 중에도 (찬송가 336장)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5:12-15
● 제목 : 성도로 살아가기
1)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성도로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제일 먼저 갖추어야 한다고 역설한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 설교 테마의 첫 번째 내용을 적용하여 말해 보십시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존재했던 가르치는 자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전제하여)  

2)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지체들에게 당부한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내용들은 무엇이었습니까?
● 게으른 자들에 대하여
● 마음이 약한 자들에 대하여
● 힘이 없는 자들에 대하여  

3) 성도가 성도로서 살아가기 위한 두 가지의 테마를 구체적으로 적용한 뒤에 기도합시다.
※ 주의 종에 대한 신뢰성과 존경심 재확인하기
※ 말씀하신 말씀의 방향성대로 살아가기 위한 내용 나누기  

 
사역하기 (WORK)
1) 중보기도
  ① 담임목사님의 안식 월 동안의 사역을 위하여
  ② 연약한 지체들을 위하여
  ③ 대입 준비를 위한 수능생들을 위하여
    (곽보람, 서혜린, 섭현우)
  ④ 셀원들을 위하여

2) 치유기도
3) 헌금 기도
4) 광고
5) 폐회: 주기도문


  

 
설교요약 (SUMMARY)
2015년 6월 21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데살로니가전서 21번째 강해)
제목: 성도로 살아가기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12-15

터키 가파도기아에 있는 데린구유 지하 도시를 보면 그들이 지하 동굴의 삶을 선택한 단 한 가지 이유는 포기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소중함 때문이었습니다. 성도로 살아가기 위해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신앙의 위기는 성도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정체성의 위기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지녔는데 그 그리스도인이 과연 어떤 존재인가에 대하여 무지하다는 것이 오늘 시대에 신앙의 위기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도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비록 편지를 통한 간접적인 가르침이기는 했지만 어린 신자들이었던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성도답게 살아가는 방법들을 몇 가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의하면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주의 복음을 증거 하다가 베뢰아로 쫓겨났습니다. 베뢰아에서의 상황도 매일반으로 역사를 일으키는 바울의 소식을 들은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베뢰아까지 쫓아와 바울을 핍박한 것입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았던 베뢰아에 있었던 그리스도인 형제들은 바울을 바다 쪽으로 데리고 가 배편으로 그를 아덴으로 피신시켰음을 사도행전 17장은 증언합니다.
  베뢰아에서 아덴까지는 당시 뱃길로 320㎞ 정도 떨어져 있었기에 대략적으로 4일 정도의 길이었습니다. 고린도는 아덴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데살로니가전서를 기록하고 있는 바울은 고린도에 거하고 있었기에 데살로니가를 그리 쉽게 방문할 수 없던 상태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할 수 없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을 위해 중보하며 승리하기를 소망하는 것이 바울이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었던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어린 신자들이 항상 맹수 앞에 내놓은 양과 같은 마음이었기에 노심초사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고린도로 디모데가 가지고 온 소식은 기쁜 소식이기에 분명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우들이 예상 밖에 승리하고 있다는 보고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승리의 지속성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점을 간과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편지의 말미에 성도로 살아가는 것이 그리 녹록한 것이 아님을 명시하며 몇 가지 승리를 위해 주목해야 할 성도로서의 덕목을 알려주고 있습니다(본문 12-13절).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에게 던진 성도로서 살아가기의 제일 첫 번째의 덕목은 1) 가르치는 자에 대한 신뢰와 존경함이었습니다.
 
  바울이 교회를 세울 때마다 장로들을 세우는 일을 했던 것을 미루어 볼 때 데살로니가에서도 당시 목사의 직에 해당하는 장로를 세운 뒤에 다른 사역지로 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본문 12절에서 언급한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은 데살로니가 교회는 말씀을 가르치는 성직자의 반열인 장로들이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에게 제일 먼저 당부하고 권한 것이 바로 이들에 대한 대우였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이들에 대한 대우를 다음과 같이 이어지는 13절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바울이 요구한 것은 ‘사랑 안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라’는 것이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형제들에게 이것을 제일 먼저 당부한 까닭은 이것이 성도가 성도로서의 삶을 유지하는 데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관건이라고 바울은 분명히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사랑 안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구체적인 것은 바로 신뢰함과 존경함입니다. 성도가 성장하는 방법은 나를 영적으로 이끌어주는 자에 대하여 무한한 신뢰를 갖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를 존경해 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영적인 소통은 세상적인 지식의 소통과는 전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소통은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와의 철저한 인격적인 관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랑하는 양아들에게 이런 권면을 했습니다.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디모데전서 4:11-13절)”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초대 감독으로 사역을 감당하고 있던 디모데에게 성직을 맡은 자로 영적 처신에 있어서 실패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촉구했습니다.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 이 말은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도록 처신을 똑바로 하라는 권고입니다. 그러려면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반드시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읽는 것, 권하는 것,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여 공부에 최선을 다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성직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의 도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실패한다면 성직의 도는 무너지고 자격도 무너집니다. 그래서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성직자의 구비 요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바울이 말한 가르치는 자에 대해 이것을 대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이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자에 대하여 존경과 신뢰를 보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님을 또한 강조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한 가르치는 자에 대한 이 대전제를 앞에 놓고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체들에게 이렇게 권한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라’
  바울은 단지 데살로니가의 지체들에게만 그리 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의 권위를 의심하며 바울을 직간접적으로 괴롭혔던 갈라디아교회의 지체들을 향해서도 의미 있는 일침을 가했습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 6:6). 가르치는 자와 좋은 것을 함께 하며 그를 가장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그렇게 여김을 받는 자에게도 복이겠지만 사실은 그 신뢰를 갖고 가르치는 자를 대우하는 자가 더 큰 복을 받은 자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영적으로 가르치는 자들로부터 물댄 동산 같은 영적인 샘을 끊임없이 길어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르치는 자에게서 끊어지지 않는 영적 공급을 받는 성도야 말로 은혜로운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도로서의 기쁨을 유지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영적인 가르침을 주는 자와 영적인 신뢰감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2) 말씀이 말씀한 방향성을 나아가는 것입니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본문 14-15절).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공동체에 존재하고 있었던 세 종류의 관심 대상자들을 주목하여 볼 것을 종용하고 있습니다. ① 게으른 자들 ② 마음이 약한 자들 ③ 힘이 없는 자들입니다.
  데살로니가 공동체 안에는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에 대하여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재림이 가까웠다고 생각을 하고 본인들의 임무와 일과 사역에 손을 놓았고 빈둥빈둥했습니다. 그들은 마땅히 해야 하는 일들에 손을 놓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린다는 핑계로 게으름을 피웠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권계하라고 했습니다. 게을러진 자들은 마땅히 삶을 정상적으로 영위할 리 없습니다. 개역판 성경은 이들을 ‘규모 없는 자들’이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권계한다는 말은 게으른 자들을 향하여 올바르게 살 것을 권함과 동시에 그들과 같은 삶을 살지 않도록 경계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을 돌보아 바르게 가르치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약한 자들의 의미는 주님의 재림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죽고 없어진 지인들로 인해 낙심하고 있는 자들에 대한 권고입니다. 이들에 대하여는 격려하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죽음으로 이미 주님과의 관계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찾아가 그들을 격려하고 주님의 다시 일으켜 세워주심이라는 말씀으로 그들을 격려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세 번째로 힘이 없는 자들의 의미는 육체적으로 병들어 있는 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약한 자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을 향하여는 붙들어 주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헬라어 ‘안타케스다이’는 그냥 붙드는 것이 아니라 매듭을 짓듯이 ‘단단히 붙들어 매는 것’을 말하는 단어임을 전제할 때 바울이 믿음이 연약한 자들에 대하여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이런 관심은 로마서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로마서 15:1절).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세 종류의 관심 대상자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돌보며 이끌 것을 당부하면서 그 강도를 이렇게 마무리 합니다. 일시적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끝까지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완곡한 것 같지만 도리어 강한 표현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14절 후반절부터 15절 전체에 그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을 종합하면 말씀이 말씀한 방향성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성도의 힘은 말씀이 말씀한 방향성대로 살 때 나옵니다. 성도의 위기는 말씀이 말씀한 방향성을 비틀 때부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가슴을 느끼고 담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와 해석을 뛰어 넘어 우리에게 물 만난 물고기가 생명의 호흡을 내뿜는 것과 같은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는 영혼의 샘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잃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성도로 살며 성도로 살아가기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살아계신 말씀이 말씀한 방향성을 향해 가며 그 말씀을 가르치는 자를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