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만에 월요일 단상을 글로 적어 본다. 목회가 뭘까? 목사 안수를 받고 꿈을 꾸던 젊은 날부터 이제 은퇴를 생각해야 하는 나이에 이른 지금까지 이 질문은 계속 내 삶의 질문이다. 1987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목사 안수를 받고 달려온 세월의 뒤안길을 돌아보면 참 많은 일들이 목사라는 직을 안고 살아온 나날동안 여울져 있다. 목사라는 이름이 갖고 살아야 했기에 운명적으로 다가온 희비들에 대해 왜 회한이 없겠나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질문해야 하는 것이 생겼다. 지난 주말부터 월스트리트 저널 訃告 기자로 평생을 살면서 약 800여명의 부고를 알리는 글을 썼던 제임스 R, 헤커티의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 (인플루엔셜 간)를 읽고 있다. 저자는 타인의 부고 기시를 쓰면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반추가 시작되었고, 이제는 자신의 부고장에 쓸 기사를 추리고 있다고 밝히면서 남은여생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세 가지 질문에 대해 답을 내는 인생으로 마감해야겠다고 피력한다.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고자 했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목표는 이루었는가?” 글감을 만나고 나도 써보아야 하겠다는 상념에 젖게 되었다. 물론 이 글의 마감이 내 부고장의 기사가 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이 조금 더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하는 이유다. 다시 글의 시작으로. 목회가 뭘까?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본다. 목회란 타인을 향한 시선 돌리기다. 그러니 얼마나 삶이 곤비하랴! 아니, 어쩌면, 목사가 된다는 것은 이 피곤하기 짝이 없는 삶 살아내기를 선언함과 동시에 至難한 삶으로 들어가겠다는 무모한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목사가 되기 위해 이 길에 들어섰을 때, 이 선언을 하지 못했다. 왜? 몰랐으니까. 하지만 이미 버린 몸(ㅎㅎ)이 되고나니 이 길이 무게감이 얼마나 엄청난 질고의 길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버겁고 또 버겁고 울지 않고는 이 길을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 목사의 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목사임에 행복하다. 립 서비스 아니다. 자기만족과 합리화? 아니, 그렇지 않다. 얼마 전, 아들 내외와 고즈넉한 시간을 가졌다. 아내가 대화중에 며느리를 앞에 두고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리 며느리가 내가 걸어왔던 길을 다시 걸어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이성으로는 가지 말라 하고 싶다. 근데, 며느리야, 아프지만 이 길은 가장 소중하고 귀한 일이란다. 잘 해낼 줄 믿고 엄마와 아빠가 기도한다.” 말을 듣고 있는데 아내에게 너무 큰 죄를 지은 것 같아 속으로 울었다. 작년에 제자 한 명이 한국독립교회 연합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안수를 받기 일주일전에 내게 문자 하나를 전송했다. “교수님, 왜 하나님이 제게 이 길을 꼭 가라고 하셔야만 했는지 묻고 있습니다. 왜 내가 이 길을 가야만 하는지를 질문하고 있습니다. 나는 갈 힘이 없는데, 나는 자격도 없는데.” 제자가 목사 안수라는 명제를 앞에 두고 얼마나 치열한 고통과 고민이 있는지 알 수 있어 많이 생각한 끝에 이렇게 답신을 보냈다. “〇〇〇 전도사님, 목사 안수를 받는다는 것은 축하받을 일이 아닙니다. 도리어 가슴을 칠 일이지요. 더군다나 목사의 직을 여과 없이 폄훼하고 질타하는 지금은 더 더욱.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목사 안수를 받는 전도사님에게 한 가지만 당부하고 싶습니다. 아파도 가슴 치는 일을 중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단 한 명의 영혼을 위해 가슴을 치고, 랜덤시대의 막장으로 치솟고 있는 작금을 아파하며 가슴을 치고, 나 같은 것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하나님에게 그 은혜에 부합하지 못할 때 가슴을 치기 바랍니다. 동시에 목사 초기에는 그렇지 않겠지만 목사의 이력이 쌓아져가면서 교묘하게 순종을 불순종으로 바꾸며 영적인 갑각류로 변질된 괴물 되어져 가는 전도사님이 보이면 가슴을 치고 울기 바랍니다. 땅을 치며 통곡하기를 바랍니다. 적어도 이 치열함을 놓치지 않으면 주군께서는 전도사님을 목사로 세우신 뜻을 이루어나가는 종이 될 것입니다. 축하는 아니지만 이 시대로 부름받기 위해 결단한 전도사님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나 또한 가슴 치는 일을 중단하지 않으려 한다. 이 일을 중단하면 목사의 생명이 끊어지는 일이기에. 월요일 아침은 주일 설교가 제일 멀리 있는 날이기에 너무 행복하고 좋은 날이다. 턴테이블 위에 Ludwig Van Beethoven의 명반인 Für Elise를 올려놓았다. 부산에서 전담 사역을 할 때 받았던 자급 33만원 중에 아내가 ‘문화생활비’라고 하는 명목으로 매 달 주었던 일금 10,000원으로 1989년에 구입한 LP 보물이다. 함께 수록되어 있는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의 피아노 선율이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에 기막힌 타이밍으로 서재를 수놓고 있다. 10,000원의 행복이 이제는 값으로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되어 30년이 지난 세월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나를 감동시킨다. 뭐 행복이 별건가! 이게 행복이지. 모두가 행복한 한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월요일 단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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