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지은이 | 박노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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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출판사 | 느린 걸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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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 2014-02-28 19:0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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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의 ‘다른 길’을 읽고 (도서 출판 느림 걸음, 2014) “그가 고통을 당할 때 나는 그의 고통이 당연한 줄 알았다. 그냥 나는 그 때 말로 사는 목회자였다. 그가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하고 싸울 때 나는 넥타이를 매고 폼 잡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이제 치열한 전쟁이 끝나고 ‘노동의 새벽’ 이후 그의 책을 오랜 만에 접했다. 그리고 연륜이 든 탓일까 왜 그의 언어들이 그렇게 살가울까 생각하며 그에게 감사했다. 그에게 조용히 머리를 숙인다.” 지난 달 출간된 박노해 시인의 사진 에세이 ‘다른 길’을 읽고 난 책 뒷면에 기록한 사족이다. 박노해 시인은 이 책의 프롤로그에 이렇게 말문을 연다. 시인다운 표현이지만 단지 시인이 갖고 있는 감수성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부족하다.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똑똑하고 편리해진 시대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인간 능력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을 돈으로 살 수 밖에 없는 무력해진 세계에서, 그들은 내 안에 처음부터 있었지만 어느 순간 잃어버린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시인도 역시 치열한 민주주의와의 전쟁을 치를 때보다 지금이 더 괴로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너무 편리해진 삶의 정황 속에서 나도 모르고 스리슬쩍 타협하려는 자아의 비굴함 때문에 말이다. 저자는 그래서 나름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아시아 몇 나라의 여행을 통해 그 땅을 섬기고 있는 민초들을 사진에 담았고 그 사진에 담겨 민초들의 아름다운 삶의 굴곡들을 전하며 스스로 치유된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들을 통하여 저자 자신이 이전에 치열하게 살았던 의미 있었던 자신을 찾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라오스, 미얀마, 인도, 티벳으로 이어지는 5개국을 돌며 그는 민초들을 컷에 담았다. 그러면서 가난하지만 결코 가난하지 않은 부유함을 경험하고 있는 그 땅의 민초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인도네시아의 감자 수확을 하는 여린 소녀들의 첫술을 고즈넉하게 전한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거죠. 풍년에는 베풀 수 있어 좋고 흉년 때는 기댈 수 있어 좋고 우리는 그저 사랑을 하고 웃음을 짓는 거죠.” 이렇게 시작되는 박노해 시인의 여행기는 감동의 서곡이었다. 인도네시아의 고산 차밭에서 잡목들을 칼로 치며 나아가는 여성 농부들의 칼놀림을 보면서 이렇게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칼날이 빛나고 신성해지는 곳은 오직 논밭과 도마 위리라” 당연한 말이지만 귀를 후벼 파는 교훈처럼 나는 들었다. “마을마다 공용지(共用地)는 아이들이 놀이터인데 그곳에는 텔레비전도 없고 인터넷도 없지만 심심하게 비워진 흙 마당에서 이리저리 궁리하며 날마다 자신들만의 새로운 놀이를 창조해낸다. 너무 재밌어진 세상에서 우리는 조금 더 심심해지자. 그래야 친구들을 부르고 내 안에 창조성이 발동할 테니.” 사이버에 이미 포로 된 나와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비극적인 삶과 세대를 살아가는 지를 엿보게 되는 대목이다. “사랑은 나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다.” 아빠가 아이에게 의자와 목마와 새장을 만들어주는 광경의 스케치이다. 사랑을 이렇게 정의한 저자는 다시 또 말한다. “먼 훗날 한 숨 지으며 내 살아온 동안을 뒤돌아볼 때 ‘아, 내가 진정으로 살았구나’ 생각되는 순간은 오직 사랑으로 함께 한 시간이 아니겠는가? 그 시간을 얼마나 가졌느냐가 그의 인생이 아니겠는가.” 동의에 동의를 표한다. 이제 파키스탄을 시선을 돌려보자. 파키스탄의 고산 힌두쿠시에 살고 있는 평범한 가정의 저녁 시간, 짜이가 끓고 양가죽으로 만든 전통 풀무 마시키자로 불씨를 살려 양젖에 홍차 잎을 넣어 차를 끓여 마신다. 화롯가에는 가족들이 모여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저자는 역설한다. “탐욕의 그릇이 작아지면 삶의 누림이 커지고 우리 삶은 ‘이만하면 넉넉하다고.” “마드라사는 1등을 하다가 학교를 집안이 가난하여 포기했다. 아빠와 벼 타작을 한다. 가르치지 않아도 아빠의 몸짓을 보고 금세 리듬을 맞추어 능숙하게 해낸다. “제일 닮고 싶은 사람은 우리 아빠예요. 제 동생들도 절 닮고 싶다고 하면 좋겠어요. 하하” 학교를 그만둬도 아이는 비참해지지 않는다. 공부는 학교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며 씨익, 앳된 얼굴에 맺힌 구슬땀을 닦는다. 좋은 학군에서 가장 좋은 과외를 시키면서 서울대학을 못 보내면 자살할 것 같은 압박을 주고 있는 이 시대의 부모들과 또 그렇게 훈련되고 만들어져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인 줄로 알며 길들여져 가는 이 시대의 아이들 모두가 불행한 시대를 살고 있다. 파키스탄의 곡창 지대인 펀자브, 소작농들의 주위에는 대지주들이 고용한 총을 들고 있는 무장 경호원들이 감시중이다. 독점하는 자는 항상 어디서나 총구에 의지하고 독식하는 자는 언제나 불안에 떨 수 밖에 없다. “정직한 쌀에는 총이 필요 없다.” 성경에 실릴 법한 명언이다. 라오스는 어떤가? 라오스의 민초들은 집을 자기들이 직접 짓는다. 이유는 식구가 늘어나 집을 짓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기나 부의 가치를 나타내기 위함으로 집을 짓지 않기 때문이다. “집이란 이렇게 사고파는 부동산의 가치가 아니라 내 삶의 무늬를 새기며 오래될수록 아름다워지는 지상의 단 하나 뿐인 기억과 소생의 장소이다.” 대한민국에 사는 잘 산다고 자부하고 국민 소득 40,000불을 목표로 달려가는 우리는 언제 이런 생각을 가지며 살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집은 부의 상징이요 또 부를 추구하는 대표적인 수단이 된지 오래다. 우리는 나도 모르게 물질에 철저하게 노예로 살고 있음을 알고나 있는지. 라오스 농촌에 목화 실을 짓기 하는 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이 장면에서 저자는 라오스 사람들이 이런 일을 당할 때 쓰는 상용구를 소개한다. “인류 지혜의 서고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가슴을 담을 말이다. 우리나라나 라오스나 농촌 가옥에는 옥수수가 매달려 있다. 먹음직한 그 옥수수들은 모두가 한 톨의 씨앗으로 비롯되었다. 씨앗이 할 일은 두 가지이다. 자신을 팔아넘기지 않고 지키는 것, 자신의 대지에 파묻혀 썩어 내리는 것. 그렇다. 명제요 진리이다. 저자는 역설한다. “그대여 씨앗만은 팔지 말라.” 광우병으로, 알 수 없는 강력한 박테리아로 신음하는 이 시대를 경종하는 금언이요 잠언이다. 미얀마로 떠나자. 물 위에 떠 있는 광활한 농장 ‘쭌묘’는 최고 품질의 채소를 길러내는 미얀마 농산물 생산부의 심장부이다. 이 쭌묘에서도 심장부는 불전에 바치는 꽃밭이다. 미얀마에서는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소득의 십일조 바쳐 꽃을 사고 매일 아침 불전에 올리며 기도를 드린다. 그들이 섬기는 부처에게 가장 멋진 선물을 드리는 마음이 향기롭다. 나는 주께 그런 향기를 드리고 있는가? 혹시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종교주의자는 아닌가? 뒤돌아본다. 아름다운 ‘인레’ 호수에서 고기를 낚는 어부는 말한다. “내 모든 것은 물결처럼 사라지겠지만 사랑은 남아 가슴으로 이어져 흐르겠지요.” 쓸어 담고 싶을 정도의 가치의 격언이다. 정작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지 않을까 싶은데 우리는 너무 각박하다. 저자는 미얀마 인레 호수 근처에 세워진 나무다리, 그래서 매년 홍수 때는 사라지는 다리를 건너는 민초들을 보면서 이렇게 감회를 서술했는데 접하면서 기막힌 탄성을 나 스스로가 질렀다. “‘함께 하는 혼자’로 진정한 나를 찾아 좋은 삶 쪽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에게는 분명 다른 길이 있다.” 김기석 목사는 이 길을 오래된 새 길이라고 정의했는데 고독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이 길을 가야하리라.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신분제도가 아직도 버젓이 살아 있는 나라이다. 그러기에 인도에서 가난한 여자로 산다는 것은 카스트 위의 카스트를 이고 사는 것과 동일하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뜨거운 한 낮의 볕에서 유채를 수확하는 여성 농민들을 보며 이렇게 직시한다. “인도에 신이 있다면 이들 여성 농민들이 아닐까.” 꽃 농장 인부들이 일을 시작하기 전 짜이를 끓여 먹으며 담소한다. “삶을 위해 일하고 웃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인데 일과 돈이 사람의 주인 노릇을 하면 되나요.” 촌철살인이다. 맞는 말이다. ‘일터’는 ‘돈 터’가 아니라 ‘삶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티벳 불교의 성지인 티벳을 저자는 다녀왔다. 티벳 사람들은 반드시 생애 중에 한 번 성지를 다녀오는 것을 목적으로 산다. 그들의 성지 순례는 소위 말하는 오체투지이다. 지난 6개월 동안 일당 1만원의 건설 공사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힘들게 모은 돈의 절반을 시주하러 떠난 26세의 청년 통꼬하단은 오체투지로 성지를 방문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내 영혼을 위해 순례 길을 나섰습니다. 돈은 빛나도 내 영혼이 어둠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나는 기독교 목사로서 반평생을 살아왔다. 그러나 통꼬하단의 영성을 갖고 있는가? 를 자문하면서 부끄럽기가 그지없다. 책의 말미에 저자는 밥과 영혼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갈파한다. “사람은 밥이 없이는 살 수는 없지만 영혼이 없는 밥은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아니다.” 어떤 이들은 박노해를 아직도 색깔론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졸렬한 그들이야 하나님도 어쩔 수 없으실 것 같다. 참 오랜 만에 노동의 새벽 이후 잊고 있었던 박노해님을 만났다. 그리고 행복했다. 그냥 행복만으로 만족한 것이 아니라 표현할 수 없는 평강의 마음이 임했다. 목사로 이 땅을 사는 자가 평범한 작가의 진정성이 있는 삶의 고백들을 들으면서 성경이 아닌 또 다른 책에서 은혜 위의 은혜를 받은 것이 너무 감사했다. 박노해님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