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제목니웅가의 노래2024-06-10 15:13
작성자 Leve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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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지은이 샐리 모건
ㆍ출판사 중앙 books
ㆍ작성일 2014-03-30 08:41:18

 

 

샐리 모건의 ‘니웅가의 노래’를 읽고


 

 

“아프다. 너무 아프다. 나또한 가슴 깊은 한 곳에 잔인한 늑대가 자리를 잡고 있는 개연성이 충분히 있는 존재이기에 아프다.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냥 사람다운 사람. 울면서, 분노하면서 이 책을 놓는다. 책은 놓지만 여운은 오래 갈 것 같다. 에버리진들을 위한 기도와 함께. 2014년 3월 1일. 오후 9시 17분”

독서를 마치고 기록한 사족이다.

페북 친구인 아주 귀한 분에게 이 책을 함께 공유하도록 권했는데 서평에 대한 글을 함께 공유할 필요가 있어 차일피일 미루다가 주일 설교 준비와 원고 암송이 끝난 뒤 조용한 시간을 이용하여 몇 자 적어 보기로 했다. 교회를 개척한 뒤, 다시는 외부에 나가는 일체의 정치적인 모임은 단절하리라고 굳게 다짐을 했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세상이 어디 말처럼 되나 싶다. 절친한 친구 목사들이 함께 사역하기로 결의했다는 오세아니아 선교회에서 유혹이 들어왔다. 결코 정치적인 모임이 아니라 순수한 선교 사역이니까 함께 동참하라는 집요한 공격(?)이 있었다. 교회를 개척한 뒤 3개월 정도가 된 즈음이라 개척교회 목사가 무슨 선교회 이사 사역을 하라 싶어 계속 거절했지만 신학교에서 함께 동역했고 부족한 선배이지만 존중해 준 후배가 선교사로 파송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흔들림이 있었고 결국은 코가 꿴 선교 사역이 오세아니아 선교회였다. 내친 김에 교회를 개척한 뒤 사역의 8개 핵심 가치가 선교지향적인 교회이기도 한 섬기는 교회 철학에 잘 부합할 것 같아 후배를 1호 선교사로 파송하는 은혜도 하나님이 주셨다. 그렇게 사역한 지 5년이 되어가는 즈음 선교사가 헌정한 책이 바로 호주 원주민인 에버리진들의 잔혹사인 니웅가(호주 남서부 에버리진의 말로 남자를 뜻하는 단어)의 노래를 선물로 받고 난 뒤 책의 분량이 워낙 많은 장편이고 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월초에 귀한 독서를 마쳤다.

지료를 찾아보니 2010년으로 기록이 남아 있는 걸 보면 벌써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나름 책 괴로워하며 읽었던 아주 방대한 자료 묶음의 책이 있다. 류시화님이 쓴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이다. 이 책은 소위 말하는 청교도 신앙을 가진 자들이 신대륙 아메리카를 발견하여 개척하면서 당시 미국 대륙의 인디언들에게 행한 잔혹사를 기록한 책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은 땅을 정복하는 과정에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행했는가 아주 세밀하게 고발한 책이었기에 읽는 내내 부끄러움과 괴로움에 몸서리쳤던 기억이 있다. 아직도 그 책에서 분노의 냄새를 자욱하게 피고 있는 한 대목을 소개한다.

인디언 부족이었던 피쿼트 마을을 공격한 존 매리슨 대장의 승전기사를 이렇게 적고 있다.

“그들은 마을에 불을 지르고 불길을 피해 달아나던 마을 주민 700명 대부분을 학살했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공격의 대열에 참가했던 코튼 매더 목사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인디언들이 불에 구워졌으며 흐르는 피의 강물이 마침내 그 불길을 껐다. 고약한 냄새가 하늘을 찔렸다. 하지만 그 승리는 달콤한 승리였다.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를 올렸다.’ 포로로 잡힌 인디언들 중 남자는 서인도 제도의 노예로 팔렸고 여자들은 병사들이 나눠가졌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숱한 피의 역사 중 가장 비극적인 사건의 하나로 꼽히는 이 ‘달콤한 희생’ 위에 보스턴을 비롯한 동부의 내놓으라 하는 도시들이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문명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p.54)”

나는 이 책을 접하면서 문명이 진정한 야만임을 깨달을 때 희망이 보임을 체득했다. 도무지 미국이라는 나라에 세워진 CHRISTENDOM 의 허구가 얼마나 사상누각인지를 뼈저리게 깨달은 적이 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봄이 막 시작되는 계절에 이제는 대륙을 북미 대륙에서 오세아니아 대륙으로 이동했을 뿐인데 4년 전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기분 나쁜 경험을 했다. 이 책의 저자인 샐리 모건은 본인이 에버리진 출신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성장했다. 제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지옥 같은 전쟁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아 돌아온 아버지와 에버리진 출신의 엄마 사이에 태어난 순혈 혼혈인 샐리 모건은 우연히 자신이 에버리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 그녀는 자신의 뿌리를 찾는 여행에 나선다. 그러다가 알게 된 자신의 뿌리들이 어떻게 인권이 유린되었고, 어떻게 무방비로 폭력에 시달렸고, 또 어떻게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당하지 말아야할 대우를 받고 살았는지에 대하여 절망하고 분노한다. 세상을 떠나기 전 운명과도 같은 느낌에 순종하려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눈물을 머금게 한다. 짐승 같은 대우를 받으며 삶의 굴곡을 견딘 사촌 할아버지 아서 코루나의 독백, 아주 똑같은 인생이었기에 강하게 본인의 질곡을 숨기며 살아왔던 할머니 데이지 코루나의 기막힌 인생 기록들은 한편으로는 본인들의 숨기고 싶은 추억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기술과 힘과 물리력을 가진 현대적 문명인들이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또 아주 질 나쁜 인종적 우월감으로 저질렀던 그들의 죄악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고발장이기도 하다.

“백인을 모면 웃음이 나는 게, 원주민들에게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매질을 한다. 그러는 자기 아이들은 어떤가? 나는 백인 아이들이 더 못된 짓을 하는 것을 많이 보았지만 아무도 그들은 건드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방황을 할 때가 있다느니 본래 심성은 그렇지 않다느니 하고 말할 뿐 때리지는 않는다. 불쌍한 흑인들이 똑같은 일을 하면 늬들 깜둥이는 옳고 그른 것을 모른다고 하면서 매질을 한다. 백인들의 세상은 그렇다.(p.442.)

그러나 이런 사회학적, 윤리적인 접근으로 인한 고발장은 내가 느끼는 참담함에 대한 심각성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니옹가의 노래에서 울고 싶은 목사로서의 자괴감은 가해자들이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점이다. 물론 그렇게 폭력을 가했던 그들이 입에 발린 하기 좋은 말로 흔히 쓰는 명목적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이라는 그런 말은 중요하지 않다. 가장 심각한 것은 항상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일만 골라 하는 공동체의 근간에 항상 기독교가 있었다는 점이다.

“크라이스트 교회의 목사가 원주민 여자들의 바느질 모임을 만든 일이 생각난다. 우리는 거기 가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바느질을 해야 했다. 그가 우리더러 결혼을 하려면 자기를 아껴야 한다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우리는 부끄러워서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이미 백인 남자들에게 침범을 당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로 부끄러웠다. 어느 날 우리가 정원에 앉아 바느질을 하는데 크라이스트 교회 학교 남학생들이 옆을 지나갔다. 그러더니 그들은 우리에게 돌을 던졌다. (p.441)”

오늘의 목사로 살아가는 나는 침묵에 빠졌다.

어떤 의미에서 나 또한 공범자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말미에 그토록 기막힌 짐승대우를 받으며 인생을 살아왔던 샐리 모건의 할머니 데이지 코루나는 본인에게 그런 죄악을 저지른 자들을 기억하며 이 아픔들이 후손들에게 이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부탁한다. 이 말은 자기 인생의 행복을 송두리째 앗아간 자들을 용서하는 것을 물론이고 더불어 그러나 이 아픔을 절대로 잊지 말 것을 당부하는 장면에서는 비장하기까지 하다.

“너희들이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늙은이들이 흙속에 앉아 있는 것을 보거든 그네 나라는 것을 기억해다오.(p.460.)"

영국의 철학자인 토마스 홉즈는 일찍이 이렇게 갈파했다.

"HOMO HMINI LUPUS" (인간은 인간에 대하여 늑대이다.)

가슴에 새겨야할 촌철살인이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홉즈의 이 말을 극복하는 최후의 보루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이어야 함을.

이 책을 저술한 샐리 모건의 용기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들이 되어준 그녀의 가족들에게 존경의 존경을 드린다. 더불어 이 땅에서 이런 비인간적인 일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하나님께 기도해 본다. 호주 일선에서 바로 이들 에버리진들을 위해 복음의 기치를 들고 있는 장원순 선교사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5년 전, 성지순례 때 유대인 학살 기념관인 야드 바쉠에 들렸다. 그곳 2층 전시실에 기록된 동판의 글귀를 보면서 유대인들의 정신에 놀라운 경의를 표한 적이 있어 소개하고 서평을 마친다.

"Forgetfulness leads to exile, while remembrance is the secret of redemption"

(망각은 포로상태로 이끌지만, 기억은 구원의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