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지은이 | 정유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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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출판사 | 은행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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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 2014-05-03 21:0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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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을 읽고 부정이든 긍정이든 삶이 치열하다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그것은 사람이 만들어 낸 언어의 유희가 아니라 현장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현실이다. 나는 세월호의 참사라는 기막한 현실 앞에서 다시 한 번 치열한 삶의 드라마를 본다. 희생을 당하는 자의 마당에서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참담함의 현실이, 가해자의 입장에서는 왜 이런 재수없는 일이 하필이면 ‘나에게’ 라는 현실이 그렇다. 그래서 치열하다. 작가 정유정은 이렇게 치열한 삶의 한 복판에서 살고 있는 또 다른 나의 군상들을 ‘7년의 밤’에서 독자들에게 던져준다. 소설 ‘7년의 밤’에는 치열한 삶을 사는 그러나 전혀 다른 두 길을 가는 아버지들이 등장한다. 서원의 아버지 최현수와 세령의 아버지 오영제가 그들이다. 최현수는 장래가 촉망 받던 전직 야구 선수였지만 그에게 있었던 고질적인 질병(세칭 영팔이) 으로 인해 1군 무대는 밟아보자도 못하고 은퇴를 하게 된 불운의 인물이다. 그는 은퇴 이후 아내 은주의 삶의 욕심 때문에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세령댐의 보안팀장으로 발령을 받고 이사를 준비하기 위해 부임 하루 전에 자기의 일할 세령댐을 방문했다. 사단은 여기에서부터. 가뜩이나 인생의 패배의식으로 가득차 있는 현수는 아내의 등살 때문에 가야 하는 본인의 근무지를 술을 마신 채로 답사를 갔다가 12살 먹은 어린 소녀를 차로 치게 된다. 늦은 밤이었고 본 사람이 없다고 확신한 그는 아직은 숨이 남아 있는 소녀를 목졸라 질식사를 시키고 사체를 유기한다. 호수로 사체를 던져 버린 것이다. 이미 면허 정지 상태였고 설상가상으로 음주 운전 상태에 아이를 친 상태이기 때문에 사실이 탄로나면 현수는 인생을 마쳐야 하는 두려움에 어린 소녀를 물 속에서 떠오르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 말고는 그에게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그는 정신없이 사체를 유기한 것이다. 이 엄청난 일을 벌인 최현수는 이윽고 세령댐 보안팀장으로 발령을 받고 이사를 완료한다. 이사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자기기 죽인 아이는 세령 마을의 유지이자 치과의사인 그리고 성품적으로 아주 냉혈한이었던 오영제의 무남독녀 오세령이었다. 세령은 아버지 영제에게 상습적인 폭행을 당하던 아이였다. 이유인 즉은 아버지 오영제가 어려서부터 선친으로부터 적지 않은 육체적, 심리적 폭력에 시달렸던 과거가 있었는데 그는 그 때의 트라우마로 인해 자신의 가정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각하겠다는 피해의식으로 아내인 문하영은 물론이고 딸인 세령이까지 서슴없이 폭력으로 다스리던 그런 자였다. 사건이 있었던 날도 역시 영제는 딸을 무자비하게 폭행을 가했던 것이다. 아내인 하영의 가출로 인해 심리적으로 완전히 망가진 영제는 그 폭력적인 기제를 딸에게 더 심하게 가한 것이다. 세령은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을 피해 밖으로 나와 세령호수 쪽으로 피신하다가 최현수의 차에 치이게 되었고 세령은 그렇게 어린 나이에 삶을 마감하게 된다. 이렇게 시작되는 기막힌 삶의 막장에서 치열하게 펼쳐지는 복수전과 방어전이 소설에 담겨 있다. 딸의 죽음을 개인적으로 탐문하던 오영제는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이 최현수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개인적인 복수를 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짠다. 경찰이 범인인 최현수를 체포하여 구속시키는 일이 생기기 전에 영제는 개인의 복수를 위해 자신이 고용한 폭력배를 이용해서 현수의 가족과 승환을 습격한다. 현수의 아내인 은주 그리고 현수의 부하직원이자 심정적 지지자인 승환과 그의 아들 서원을 물리적으로 제압하여 의사이기에 손 쉽게 구할 수 있는 마취약으로 그들을 잠재우고 감금한다. 이윽고 영제는 복수심에 불타는 마음으로 세령댐 경비실을 지키는 딸을 죽인 현수를 철저한 계획 속에서 찾아가서 신변을 확보하고 그를 구속하는 데 성공한다. 오영제는 현수를 댐관리동 중앙통제실에 묶는다. 그리고 이미 고용된 폭력배들에 의해서 제압하여 신변을 확보한 현수의 아들 서원을 호수 한 가운데에 묶어 놓은 뒤 댐의 수문을 열어 서서히 물이 차이게 하여 자기 딸의 시신을 유기하여 결국은 익사하게 만든 현수에게 그의 아들도 그렇게 죽이는 보복의 현장을 중앙 통제실 모니터를 통해 현수에게 보여주며 괴로워하게 하는 잔인한 살인행위를 진행한다. 그러나 심각한 육체의 린치를 영제에게 당해 자기 몸 하나를 건수하기도 버거운 현수는 재치를 발휘해서 영제를 제압하는 데 성공한다. 위기에 빠진 아들을 구하기 위해 지금 아들의 목까지 차오른 호수의 물을 빼기 위해 댐 수문으로 달려간다. 드라마틱한 것은 거의 같은 동시간에 승환은 마취약에서 깨어나 감금에서 탈출하고 호수에 뛰어들어 서원을 구해낸 뒤 현수에게 달려간다. 현수에게 일격을 당한 영제는 혼절 상태에서 깨어나 고지대의 휴게소로 도망치던 중에 현수의 아내인 은주와 마주친다. 상황을 모르던 은주는 자기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는 영제를 만나자 그를 공격하지만 영제가 도리어 그녀를 때려 죽인다. 이렇게 상황이 종료되자 경찰은 상황을 접수하고 세령 살인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고 현수는 세령의 살인 혐의, 아내를 죽인 혐의, 그리고 세령마을을 물에 잠기게 하여 많은 사람들을 희생당하게 만든 일련의 모든 죄를 다 뒤집어쓰고 체포된다. 그렇게 일단락 된 소설은 시간을 7년 뒤로 작가는 돌린다. 살인자 아버지로 인해 많은 희생을 당한 서원은 19살이 되었다. 그는 아버지가 체포된 이후 끊임없이 왕따와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어린 나이에 살인마의 아들로 낙인 찍힌 그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냉대를 받았고 심지어는 친척들조차도 그를 조건부로 거두었다가 소리없이 이사를 가면서 그를 버린다. 어디 한 곳에 정착할 수 없었고 제대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었던 서원을 거둔 것은 승환이었다. 결국 서원은 남해안의 등대마을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다이빙을 하러 온 젊은이들이 그만 사고가 나는 바람에 그들을 구하다가 서원의 이력에 냄새를 맡은 언론은 대서특필한다. 피해 살았던 서원은 자신의 신상이 다시 공개되어 그곳에서도 살기가 불편해 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승환 아저씨가 갑자기 사라졌다. 서원은 극도의 불안에 휩싸였다. 바로 그 때 서원에게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는 소포들이 배달되기 시작했다. 승환 아저씨가 쓴 소설이었다. 서원은 그 소설을 읽으면서 7년 전에 아버지와 관계되었던 살인 사건에 관련된 영화같은 일들을 깨닫게 된다. 소설에는 승환이 영제의 전 처인 문하영과 주고받은 편지도 있었다. 그 편지를 통해서 오영제의 과거에 대해서도 알게되는 수확을 거둔다. 7년 전의 사건 뒤에 승환은 틈틈이 그 사건을 재구성하며 소설을 정리를 한 것이었다. 편지의 마지막에서 오영제의 전처였던 문하영은 승환과 서원에게 오영제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니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이윽고 서원은 하나의 전보를 받는데 아버지가 7년 만에 사형에 처해졌기에 시신을 인도해 가라는 전보를 받게 된다. 아버지의 교수형 실행은 곧바로 자기에게 또 다시 위험한 순간이 찾아왔음을 직감하게 된다. 서원은 소설의 시나리오대로 마지막 자기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위험을 스스로 극복하고 끝장내기 위하여 스스로 덫으로 뛰어들기로 한다. 그의 정면돌파는 예상대로였다. 오영제와 그의 고용된 폭력배들은 서원을 구금한다. 현수의 사형이 집행되는 때에 맞춰 승환과 서원마저 깨끗하게 처리해버리려고 오영제는 7년을 준비해 온 것이었다. 그러나 사형을 집행되기 전부터 감옥 안의 현수는 오영제의 집요한 보복 계획을 꿰뚫고 승환을 통해서 앞으로의 위기를 대비해 줄 것과 서원을 잘 맡아줄 것을 부탁했다. 현수의 예상대로 위기를 대비한 승환과 서원은 힘을 합하여 오영제의 그룹들을 제압하고 그를 경찰에 넘기는 데 성공한다. 소설의 대단원의 막은 서원이 현수의 시신을 인도받아 화장하고 그 유골을 바다에 뿌리면서 엔딩한다. 거의 500페이지가 넘는 이 장편을 접하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단어가 ‘치열함’이었다. 글머리에서 말한 그대로 그 치열함이 부정이든 긍정이든 말이다. 딸을 잃은 아버지의 빗나간 복수심으로 자행된 인간성 파괴의 치열함을 보여준 영제, 또 예기치 않은 실수로 사람을 죽인 뒤에 그로 인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자기의 아들을 죽이려는 또 다른 보복의 위기 속에서 아들을 지키기 위하여 치열하게 싸우는 현수, 삶의 굴곡에서 어떻게 하든 가정을 지켜가려는 그러나 너무 일방적인 이기심으로 치열하게 살았던 은주, 치열하고 왜곡된 보호방식으로 쓰라리고 치열한 삶을 살아야 했던 하영과 그렇게 피해자로 짧은 인생을 살고 마감해야 했던 세령, 운명적으로 만난 직장 선배의 아들을 돌보며 끝까지 선한 싸움을 치열하게 감당해 준 승환, 그리고 아버지의 순간적인 실수로 인해 평생을 살인마의 아들로 살아가면서 또 다른 피해자의 심리를 갖고 살았지만 결국은 아버지의 치열한 부성애를 발견하고 운명적인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서원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생의 군상들은 치열함 속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작가 정유정은 이런 치열함을 여성 작가의 예리하고 세밀한 심리를 갖고 무섭게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필채는 단지 치열한 인생들의 군상들을 그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바로 이 ‘그러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야기되지 않은, 혹은 이야기 할 수 없는 ‘어떤 세계’, 불편하고 혼란스럽지만 우리가 한사코 들여다봐야 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왜 그래야 하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모두 ‘그러나’를 피해갈 수 없는 존재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 나는 소설을 읽는내내 세월호에 대한 기막힌 현실 앞에서 ‘그러나’를 불편하지만 물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읽었다. 해피아, 정피아, 언피아등등의 듣도 보도 못한 신조어가 탄생할 정도로 사실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이 두 번 죽어가고 있는 이 때 ‘그러나’를 질문하며 진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 아니겠는가! 작가의 말 대로 인간은 ‘그러나’를 피해갈 수 없는 존재이다. 동시에 ‘그러나’를 물어야만이 부정이 아닌 긍정으로 아픔들을 치유할 수 있다고 서평자는 믿는다. 인생들의 삶은 치열하다. ‘그러나’ 들어가 보면 아프지만 살만한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그러기에 그 살만한 이야기들을 치열하게 파헤쳐야 한다. 나는 책을 다 읽고 이렇게 사족을 달아 놓았다. 소설을 닫으면서 나는 무서웠다. 주인공들처럼 자기들 스스로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가치를 지키기 위한 치열함이 없는 것 같아서. 삼가 주인공 현수에게 조의를 표한다.
2014년 4월 29일 오후 9시 11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