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6.04.10 셀 사역2024-04-22 16:13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요즘 나를 살찌우는 것들을 나누어 봅시다.  

 
경배와 찬양 (WORSHOP)
●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찬송가 546장)
● 주의 말씀 듣고서 (찬송가 204장)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제목: 정상입니까?
● 본문: 베드로전서 2:1-3
1)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젖’의 개념을 두 가지로 설명해 보자.
●  ‘젖’ (고린도전서 3:1-2, 히브리서 5:12-13 참고):

●  ‘순전하고 신령한 젖’ (본문 2절):  

2) 젖 먹는 수준에서 자라지 못한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이 요구하신 수준을 손 마른 자의 비유를 통해 말해보자.
● 바리새인들이 가버나움 회당에서 행한 행동들:

● 주님이 원하신 성장의 내용 (마가복음 3:4-5 참고):  

3) 로고스를 레마화 하기
● 경험담 나누기

● 그 결정적인 성경 구절을 말할 수 있으면 셀원들과 공유하기  

 
사역하기 (WORK)
1) 오순절 릴레이 기도회
  ① 기간: 3월 28일(월)~ 5월 14일(토)까지
  ② 시간: 오전 9시~ 오후 9시까지 (1시간씩 담당)
    (기도를 마친 후 다음 지체에게 문자 남기기)
  ③ 장소: 교회 혹은 개인의 상황에 따라
2) 중보기도
  ① 춘계대심방을 위하여(우정제 셀을 위하여)
  ② 임직 예배를 위하여
  ③ 환우들을 위하여(최정희 집사, 안동철 형제 등등)
3) 헌금
4) 광고: 4월 표어 실천하기(재래시장에서 장보기)
5) 폐회: 주기도
  

 
설교요약 (SUMMARY)
4월 10일 주일 오후 예배 설교 (베드로전서 13번째 강해)

본문: 베드로전서 2:1-3
제목: 정상입니까?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들의 외식이 본말을 전도하는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유대 종교의 편리주의와 안락함에 길들여져 있었기에 그들이 무기 삼은 末(말-율법적인 외형)을 이용하여 진짜로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本(본-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적반하장의 삶을 살았기에 주님은 바리새인들의 행태를 향해 무섭게 비난하셨습니다.
  마가복음 3장에서 주님께서 손 마른 자를 고치신 기사를 보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가버나움 회당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가버나움 전 지역에서 귀신들린 자를 내쫒아 치유하신 사건을 비롯하여, 한센 병 환자와 중풍병자와 죄인들의 죄를 사하시는 등 상당히 놀랄 만한 사역을 이미 이루셨기에 그 일을 행한 장본인인 예수를 통해 각종 문제를 해결 받기를 원하는 긍정적인 사람들과 반대로 예수로 인하여 본인들의 자리가 위태롭다고 느낀 예수에 대하여 상당한 반감을 갖고 있는 바리새인들까지 모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기자인 요한 마가는 이 회당에서의 긴장감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마가복음 3:2절). ‘고발하려 하여’라는 이 말을 원어대로 직역하면 ‘의도적으로 비난하기 위해 반대의 지역에 서 있는 것’ 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상황과 정황을 보고 정확한 기승전결에 따라 반대할 일이 있으면 반대하고, 수용할 일이 있으면 수용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해도 이미 반대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이미 반대하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음을 알았기에 가버나움 회당에서 손 마른 자를 고치는 순간, 벌떼처럼 예수님에 대하여 고소하고 힐난할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마가복음 3:4-5절).
  예수님에게 정곡을 찔린 바리새인들은 이 어마어마한 기적과 능력이 펼쳐지는 현실 앞에서 도저히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와 이런 일을 도모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마가복음 3:6절). 영혼이 망가진 비정상적인 기형아들이 얼마나 나쁜 상태까지 갈 수 있는지를 마가는 아주 선명하게 보고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받을 은혜는 정말로 무서운 영적 기형아가 되지 않고 정상적인 그리스도인과 정상적으로 자라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문이 제시하는 방법을 찾아봅시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베드로는 오늘 본문 3절에서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고 말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경험했던 적이 있었다면’ 이라는 말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단 한 번이라도 경험한 감동이 있는 자라면 그 은혜를 지속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후속 단계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2절에서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순전하고’ 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 ‘아돌론’의 원뜻은 ‘속일 수 없는’ 이라는 의미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뛰어난 최첨단 시스템을 통하여 만든 분유도 그냥 분유이지 모유가 될 수 없다는 말과 기막힌 매치를 이룹니다.
  고린도전서 3:1-2절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문제투성이였던 자들을 향하여
주저 없이 너희들은 ‘육신에 속한 자’ 즉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라고 지칭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지체들이  분열되어 싸우며 모이면 교리를 가지고 너 잘났다고 이전투구를 했습니다. 전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는 거리가 먼 세속적 토양이 충만했던 명목적 그리스도인들이 고린도 교회에는 허다했습니다. 이것을 안 바울은 그들을 처음으로 양육할 때 젖을 먹였지 밥을 먹이지 않았다고 천명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한  영적 능력이 그들에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전제할 때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지체들에게 먹인 젖이 가장 기초적인 하나님의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또 히브리서 5:12-13절을 보면,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젖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깊은 말씀 즉 의의 말씀이 아니라 가장 초보적인 말씀이 젖입니다.
  이에 반해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히브리서 기자나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지체들에게 선언했던 말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속일 수 없이 순결한 그리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은 2절 하반절에서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은 ※ 레마입니다.

  레마는 젖의 수준을 뛰어 넘은 밥을 의미합니다. 젖만 먹으면 아기의 수준에서 조금 더 성장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성장하지 않습니다. 아기에서 성장을 멈추면 그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형입니다. 신자가 로고스만 먹으면 기본적으로 성장할 수는 있겠지만 장성한 성인으로 자라날 수 없습니다. 장성한 성인으로 성장하려면 반드시 로고스를 레마로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성경공부를 한다고 내 안에 있는 악독, 기만, 외식, 시기와 비방이 제거되지 않습니다. 분석하고 비평하는 데 익숙해져 악해집니다.
  로고스를 레마로 만든 장성한 자들은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먹는 수준에 도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 땅에 사람의 모양을 하고 오셔서 우리들에게 선포하신 로고스의 말씀을 나에게 객관적으로 적용시켜 나의 영혼을 살리는 말씀 즉 레마로 승화시키는 수준 높은 그리스도인들이 되십시다.
  시편 119:25절에서 시인은 이렇게 기도하며 노래했습니다.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진토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아파르’는 말 그대로 재와 먼지입니다. 내 영혼이 바람이 날리는 진토에 붙어 있다면 내 영혼이 죽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것을 뼈저리게 영적으로 체감한 시인은 그래서 이렇게 절규한 것입니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옵소서.” 히브리서 기자는 4:12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라고 했습니다. 말씀의 어원은 ‘말숨’이라고 했습니다. 말의 호흡이 말숨입니다. 레마는 말숨입니다. 포장된 말이나 진정성이 없는 말에는 생명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레마는 사람으로 하여금 영적인 호흡을 하게 합니다.
  시인 이성복이 지은 무한화서라는 시론이 있습니다. “우리는 시를 쓰면서도 언어를 불신해요. 불성실한 하인쯤으로 여기는 거지요. 언어는 우리보다 위대해요. 언어를 믿어야 언어의 인도를 받을 수 있어요.” 시인의 글을 이렇게 패러디 해 봅시다. “우리는 레마를 사용하면서도 레마를 불신해요. 불성실한 하인쯤으로 여기는 거지요. 레마는 우리보다 위대해요. 레마를 믿어야 레마의 인도를 받을 수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도(道)를 따라간다는 것은 레마를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이 그 레마를 불신하며, 그 레마를 내 삶의 부속물 정도로 여기고 있다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남기신 레마는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하기에 그 레마를 믿어야 그 레마가 나를 정상적인 그리스도인 되게 인도하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서려면 미쳐 버린 이 시대, 지극히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이 시대이지만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나에게 인격적으로 다가오셔서 말씀하시는 레마를 듣고 있는지 그리고 그 레마의 조명대로 살고 있는지 날마다 질문하고 살아가는 세인지체들이 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