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 화요일 성서일과 묵상 머리털, 머리털 하지 말라 오늘의 성서일과 시편 28편, 사사기 16:1-22, 빌립보서 1:15-21, 시편 42편, 출애굽기 18:13-27 꽃물 (말씀 새기기) 사사기 16:22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마중물 (말씀 묵상) 삼손이 머리털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다는 이 구절은 오래 전부터 묵상하다가 자칫 잘못하면 왜곡하거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한 구절이라고 경종했다. 머리털이 다시 자란 삼손은 힘을 다시 얻게 되어 블레셋에게 받은 치욕을 갚을 수 있었다고 말도 안 되는 해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에 말이다. 삼손의 힘이 머리털에 기인했다면 이것만큼 샤먼적인 일이 또 어디에 있으랴! 신학교를 다닐 때 기독교는 고등종교라고 배웠다. 샤먼이 아니라는 의미다. 하나님이 나를 직접 찾아오신 사건은 대단히 인격적인 사건이다. 그런데도 내가 믿는 주군이신 하나님을 샤먼적인 신으로 강등시키려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버젓이 자행한다. 성서일과로 본 사사기 16:22절의 의미는 삼손이 머리털이 다시 나서 힘을 얻게 되었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삼손의 머리털이 자랐다는 말은 나실인으로 부름 받았지만, 전혀 나실인답지 않은 삶을 살던 삼손에게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다시 형성되고 있다는 메타포다. 나는 나의 힘의 원천인 종교적인 주술인 그 무언가가 되지 않도록 치열하게 싸운다. 근래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아무개’가 전도자라는 이름으로 사도행전적인 역사를 나타내고 있다고 들썩인다. 거기에 열광하는 부류들은 여론을 부축이기까지 한다. 그걸 인정하지 않는 일체의 사람들은 은혜를 모르는 심판의 대상자라고 몰아붙이기까지 한다. 유구무언이다. 그가 행한 퍼포먼스를 유트브를 통해 시청했다. 보다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2000년대 초반으로 기억되는 ‘빈야드’라는 이름으로 일어났던 종교적 쇼 엔터테인먼트를 고스란히 옮겨다 놓은 것이 다시 떠올랐다. 대단히 유감스러운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샤먼적인 퍼포먼스로 변질시키는 일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마치 오병이어의 기적을 목격한 벳세다의 회중들이 예수를 왕으로 옹립하려는 분위기를 알고 가버나움으로 피신한 예수를 집요하게 다시 추적하여 따라온 뒤에 다시 제 2, 3의 오병이어 기적을 보여 달라는 종교적 마약에 중독된 자들이 오늘도 여전한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냐고 고백한 베드로의 고백이 그들에 있을 리 만무다. 말씀보다 종교적 퍼포먼스에 열광하는 무리들에게 말씀으로 성육신 하나님이 보일 리 만무다. 이렇게 기형적 종교인들을 만든 공범자 중에는 광적인 신비주의를 도입한 일련의 교회들도 존재한다. 부인할 수 없다.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시편 18:1-3) 가슴 절절한 고백이다. 아브라함 죠수아 헤셀은 이렇게 천명했다. “하나님을 앎이라는 것은 그분과의 인격적 결합이 전제되는 것이다.” (『예언자들』,116쪽) 하나님이 나의 힘이라는 사실을 인격적으로 아는 것은 주술적인 그 무언가가 아니다. 종교적인 쇼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다. 그 분과의 전인격적인 하니 됨이다. 삼손의 머리털 자람은 주술적인 상징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전인격적인 관계의 회복이다. 헷갈리지 말자.
두레박 (질문) 하나님이라는 주군을 악용의 도구로 삼는 일체의 것들과 맞장 뜨고 있는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내 인격의 창조자이신 하나님. 하나님을 격하시키는 일체의 것들과 싸우게 하옵소서. 물러서지 않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내 주님과 함께 인격적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조금 더 주님이 들려주시는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이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연휴의 마지막 날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체들이 후유증 없이 일상에 복귀하게 하시고, 다시 주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잘 맺는 일상이 되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