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8일 월요일 성서일과 묵상
바로 ‘너’가 필요하다.
오늘의 성서 일과
시편 18:1-3, 20-32, 사무엘상 7:3-1, 로마서 2:1-11
꽃물 (말씀 새기기)
사무엘상 7:12-13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마중물 (말씀 묵상)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이 기록이 웃프다. 왜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만이었을까? 그 전에 그리고 그 후에는?
가만히 성찰해 보면 사무엘 전은 사사시대요, 그 후는 사울의 초기 왕정 시대였다. 이 말은 이런 묵상을 가능하게 한다. 하나님이 찾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 결국 사람이었구나! 하는 소회 말이다. 지금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누구일까? 블레셋의 공격을 사무엘이 사는 동안에는 막으셨다는 그 사무엘의 역할을 감당할 도구는 도대체 누구인가?
아브라함 죠수아 헤셀은 대단히 단호하게 이 질문에 답하며 재질문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정의를 실천하는 일’임을 믿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브라함 죠수아 헤셀, “하느님을 찾는 사람”, 한국기독교연구소, 197쪽)
몇 년 전, 한세대학교 영산신학대학원 정기 채플에서 설교할 기회가 있었다. 교회에서 전도사님이라고 호칭해 주고 대우해주는 사람들이 예배자들이었다. 동시에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 상당수는 조용기 목사의 목회 철학을 시금석으로 삼고 있는 자들이었다. 한 번 나를 감동 시켜 보라고 압박하는 저들에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전한 본문이 미가 6:6-8절이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그랬다. 미가 시대는 정치권력과 있는 자들의 금권과 사법부의 유전무죄무전유죄의 불공정과 심지어 최후의 양심적인 보루 역할을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기득권에 빌붙어 공생하던 타락한 유대 종교까지 콜라보네이션을 이루며 무소불위의 칼날들을 휘두르며, 구조적으로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힘없는 자들을 마음껏 유린하며 저들의 세속적 욕망을 만끽하던 시대였다.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타락한 기득권 세력들이 누리던 천국이었다. 참담하기 그지 없었던 것은 이렇게 사악한 일을 자행하던 저들이 습관화된 종교적 버릇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잘못을 탕감받으려는 말도 안 되는 행위들을 일삼았다는 점이다. 제사를 드릴 때마다 최고의 제물들을 드리겠다고 경쟁했다. 일 년 된 살진 송아지, 천천의 숫양, 만만의 기름, 심지어 당시 이방적 제의의 절정이었던 인신 제물까지 드리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야훼 하나님께서 이런 가증한 제물을 받으실 리 만무다. 가증한 것들을 집어치우라고 선언하셨다. 도리어 미가를 통해 역설하신 야훼의 요구는 대단히 본질적이었다. 정의를 행함, 인자를 사랑함, 겸손이 행함을 실천하는 ‘너’를 드리라고 직설했다. 이 메시지를 전하면서 나도 떨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삼박자 축복이 기저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을 순복음신학생들에게 이 메시지가 어떻게 들릴지 나름 긴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이행하는 사람, 그 한 사람이 필요하다. 2023년 8월 28일은 더 더욱. 그래서 그런지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오늘 성서 일과가 크게 공명되어 울린다. 나는 작금에 일어나고 있는 영적 랜덤을 종식시킬 수 있는 사무엘인가? 질문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두레박 (질문)
나는 사무엘의 역할을 하고 있나?
손 우물 (한 줄 기도)
은혜의 하나님, 거대한 꿈이나 비전을 품을 나이는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자유자재로 사용하시는 도구가 되겠다는 꿈은 접지 않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정의, 인자, 겸손을 드리는 하나님의 삶이 되기 위해 그 내용들을 구체화하자. 그리고 한 걸음씩이라도 이행하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