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남편이나, 아내가 자랑스러워 보였을 때 나누기 | 경배와 찬양 (WORSHOP)● 어머니의 넓은 사랑 (찬송가 579장) ● 나의 사랑하는 책 (찬송가 199장)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제목: 아내의 신앙이 가정을 바꾼다.① ● 본문: 베드로전서 3:1-6 1) 에베소서 5:22-23, 골로새서 3:18절과 본문 1절에서 공통으로 호칭된 ‘아내들’(귀나이케스)이라는 단어의 차이점에 대하여 말해 봅시다. ● 에베소서 5:22-24, 골로새서 3:18 ● 베드로전서 3:1 |
2) 믿지 않는 남편들을 구원하기 위해 믿는 아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본문 설교를 중심으로 말해보자. ● 참고(2절):
● 주후 64년경의 로마에 살고 있던 아내들이 빠져 있었던 것들은? |
3) 진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아내로 살기위해 해야 할 일들을 진솔하게 나누어 보자. ● 남편에게 해야 할 일들: ● 자녀와 부모에게 해야 할 일들: ● 나눈 것들을 위해 기도하자. | 사역하기 (WORK)1) 중보기도 ① 환우들을 위해 (최정희 집사, 안동철 형제 등) ② 루존 교회의 이전을 위해 ③ 6월 장애우들을 위한 봉사를 감당하기 위해 (섬길 대상을 주옵소서) ④ 금요일에 실시되는 산상 기도회를 위해 ⑤ 여름 행사들을 위해 ⑥ 담임목사의 건강과 책 수정본 완성을 위해 2) 헌금 3) 광고: 4) 폐회: 주기도 | 설교요약 (SUMMARY)6월 5일 주일 오후 예배 설교 (베드로전서 19번째 강해) 제목: 아내의 신앙이 가정을 바꾼다.(1) 본문: 베드로전서 3:1-6
오늘 본문은 부부의 위기를 겪는 자들에게 주시는 성경적 해법 제시입니다. 본문을 통해 진실한 신앙을 가진 아내들의 삶이 무엇인지를 살펴봅시다.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본문 1절). 이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아내들아’로 번역된 헬라어 ‘귀나이케스’라는 호칭은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의 유사 구절의 호칭과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에베소서 5:22-23절).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골로새서 3:18절). 이 세 구절에 나오는 ‘아내들이여’라는 단어는 공히 ‘귀나이케스’ 라는 단어로 기록되어있지만 오늘 본문 베드로전서의 ‘아내들’과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의 뒤에 호칭된 ‘아내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바울서신의 아내들은 남편이 믿는 자들이나 베드로서신의 아내들은 남편이 불신자인 경우의 아내들입니다. 이 비교가 주는 교훈은 하나님의 명령인 것을 알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아내들은 믿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을 인정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기 1:27-28절). 이 구절만 놓고 본다면 남성과 여성은 분명 대등한 인격이고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의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릴 권리를 준 존재는 아담이 아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 둘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조금의 차이가 없는 동등한 존재이며 가치라는 것을 재삼 확인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5:22-24절에서 이런 하나님의 창조의 법을 무시한 것 같은 발언을 합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바울의 이 혁명적인 선언의 참 의미는 질서 때문입니다. 가정의 질서를 위해서 그렇게 선언한 것입니다. 믿는 여성이 믿는 남성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을 경우, 가정의 질서와 리더십에 대해 순종하라는 성서적인 권면을 수용하는 것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믿지 않는 남편과 결혼한 믿는 여성이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말을 액면 그대로 순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강조하는 것은 믿는 아내들도 남편들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말로 하지 않고 아내의 행실로 믿지 않는 남편들을 구원시키라는 것입니다.“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본문 1절 하반절). 이 설명의 전제는 분명히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유일한 방법이 이것이니 그렇게 해야 합니다. 행실로 남편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는 아내들이 믿지 않는 남편들의 구원을 위하여 해야 할 행실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1)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어 정결한 행실로 남편에게 영적 영향력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본문 2절). 이 구절의 이해를 위해서는 편지가 작성되었던 시기인 주후 64년 전후의 로마라는 도시의 가정적인 배경을 전 이해로 알아야 합니다. 당시 로마는 이교의 우상들이 판을 치던 도시였습니다. 그 중에서 로마라는 도시의 한 복판에서 주류로 자리를 잡은 우상이 술과 풍요의 신이었던 디오니소스 즉 우리들에게는 바카스(바쿠스) 신으로 더 잘 알려진 우상이었습니다. 로마의 관습으로 볼 때 믿는 여인이 믿지 않는 남성과 결혼을 하면 통상 남편의 종교로 개종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이럴 경우 아내들이 가정은 소홀히 하고 밤마다 바카스 신전에 가서 술에 취하여 향락과 사교와 문란함에 빠지는 경우가 있었기에 남편들은 이를 경계했고, 급기야는 로마의 원로원에서 여성들이 디오니소스 신전에 출입하는 일을 금지시키기까지 했으니 당시의 종교적인 탈을 쓴 여성들 즉 아내들의 일탈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도리어 남편의 종교를 따라 개종하지 않고 소리를 내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과 또 그 결과로 주어지는 아내들의 정결한 행실은 남편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좋은 방법이었던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었습니다. 2절에 ‘두려워하여’로 번역된 헬라어 형용사 ‘포호보’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인해 자연 발생적으로 임하는 두려움’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믿지 않는 남편에게 믿는 아내가 인정 받지 못하고,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다는 사람들의 말을 더 믿지 못하는 것은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모양만 예수쟁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데 그의 속 안에는 썩은 냄새가 나는 이중성 때문입니다. 가짜들은 가짜들을 잘 압니다. 그 이유는 동급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짜는 진짜들에게 머리를 숙입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남편들이 믿는 아내들을 핍박하는 이유는 종교성의 차이 때문에 핍박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도리어 진짜 흉내를 내는 가짜 예수쟁이로 아내가 살아가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핍박합니다. 엉터리 신앙 집어치우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3절을 봅니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바카스 신전에 나가 수다를 떨며 성적인 매력을 발산하기 위해 외형적 치장에 목숨을 거는 여자들이 허다한 것을 베드로는 꼬집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은 여성신학자들에게 바울이 몰매를 맞는 대표적인 장입니다. 하버드대학의 린 화이트 교수는 바울을 남성우월주의 빠진 정신병자라고 극언을 퍼부으면서 그를 공격했습니다.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고린도전서 11:2-10절). 이 구절의 통상적인 해석은 고린도라는 당대 최고의 음란의 도시에 존재하던 창녀촌의 여인들은 성적인 매력을 뽐내기 위해 긴 머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그 긴 머리에 각종 액세서리와 치장들을 과하게 했습니다. 이것은 많은 남성들을 유혹하는 미끼였습니다. 많은 남편들이 창녀촌으로 가는 것을 본 아내들은 이것을 흉내내기 시작합니다. 성적으로 난잡한 삶을 살던 고린도지역의 부유층의 아녀자들은 창녀들의 그런 외형적 삶을 동경하며 그렇게 치장하며 사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고린도는 매음굴의 여성이나 일반 여성이 구분이 안 갈 정도의 심각한 외형문화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문제는 이런 심각한 세속적인 타락의 문화가 고린도 교회 안으로 유입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바울은 이 점을 경계하여 교회 안의 여성들에게 세상의 여자들과 분명한 구별을 할 수 있도록 머리에 천을 쓰고 다닐 것을 그리고 예배 때는 반드시 착용하고 예배를 드리도록 강제한 것이 고린도전서 11장의 통상적인 해석입니다. 문제는 남성들의 일탈에 대하여는 침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진짜 그리스도인들은 외형적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내면적 그리스도인들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아내에게만 요구하는 그런 해석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 전부에게 요구되는 영성입니다. 외형에 목숨을 거는 세인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정성을 기초로 하는 내면적 영성을 추구하는 진짜 그리스도인들이 됩시다. 아내들이 이런 영성으로 무장하여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감동으로 믿지 않는 남편들을 구원하라고 베드로는 역설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본문의 시대적 배경인 로마 시대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이 사는 시대에도 아내들의 영성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은 매일반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에드워드 클라우니 박사가 쓴 베드로전서 주석서를 보면 성 어거스틴이 자기의 어머니인 모니카가 이교도인 아버지 파트리시우스에게 신실하게 증거 한 것을 이렇게 묘사한 글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자기남편을 주인으로 섬겼으며, 남편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행동으로, 주님이 그로써 어머니를 아름답게 만드신 그 행동으로 아버지께 주님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침내, 어머니의 남편의 삶이 이생에서 거의 끝나갈 무렵, 어머니는 그를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진실한 신앙을 가진 진짜 아내가 가정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아내들이 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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