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내가 한 사랑 나누기 (아가페-주님의 사랑, 필레오-형제사랑, 스톨게-가족사랑, 에로스-남여 사랑) | 경배와 찬양 (WORSHOP) ●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찬송가 438장) ● 예수 사랑 나의 사랑 (복음성가)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제목 : 필레오에서 아가페로 ● 본문 : 베드로전서 1:22 1) 디베랴 바닷가로 베드로를 찾아오신 예수께서 베드로에 물어보았던 사랑의 내용을 순서로 말해 보고 베드로의 고백에서 볼 수 있는 사랑의 답은 어떠했는지 살펴보자. ● 설교 참고:
● 요한복음 21:15-17절 참고: |
2) 요한복음 21장에서 경험했던 주님과의 사랑의 밀어 사건과 오늘 본문에서 소아시아의 형제들에게 뜨겁게 사랑하라고 권했던 베드로가 아가페의 사랑을 요구한 반전의 은혜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3) 적어도 성도가 필레오의 사랑에서 아가페의 사랑으로 진보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설교 테마 참고) 사역하기 (WORK)1) 제 6차 특별새벽기도회 사역 ① 예배 준비하기(기도, 특송) ② 헌금 드리기(이번 특.새의 헌금은 건축헌금으 로 드려집니다.) ③ 셀 별 기도회: 셀 별로 앉기 ④ 아침 식탁 공동체 ⑤ 카풀 2) 최정희 집사 치료를 위한 중보기도 ① 기간: 3월 28일(월)~ 5월 14일(토)까지 ② 시간: 오전 9시~ 오후 9시까지 (1시간씩 담당) (기도를 마친 후 다음 지체에게 문자 남기기) 3) 부활 주일 온 가족 초청 예배: 27일, 오전 11시 4) 중보기도 5) 치유기도 6) 헌금 7) 광고 8) 폐회: 주기도 | 설교요약 (SUMMARY)3월 20일 주일 오후 예배 설교 (종려주일 설교) - 베드로전서 11번째 강해
본문 : 베드로전서 1:22 제목 : 필레오에서 아가페로
아가페의 사랑에는 진심어림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22절)에서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베드로는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그리스도인 형제들을 향하여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사랑의 종류 중에 아가페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유일한 단어입니다. 이 사랑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조건이 없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오늘 본문에서 아가페의 사랑으로 형제들을 뜨겁게 사랑하라고 한 까닭은 요한복음 21장의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디베랴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던 7명의 제자들에게로 오셨습니다(요한복음 21:2절).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실수 연발과 천방지축이었던 베드로와 주님의 부활을 직접 체험해 본 도마와 조금은 교만했던 나다나엘과 허점투성이였던 야고보와 요한은 권력에 눈이 멀었던 자들이었고, 성격적으로도 상당한 다혈질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익명의 두 제자는 누구인지는 모르나 예수님과의 공생애 3년을 반추해 본다면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예수님께 공범의 죄를 범한 자들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주님이 행하실 때 그들은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했음에도 불구하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모조리 주님을 버리고 도망한 배신의 죄를 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심지어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했다가 부활하신 주님의 손과 허리에 난 못 자국을 만져보기까지 부활의 감격을 누렸지만 결국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도 낙향한 베드로를 따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 고기 잡는 옛 생활로 돌아간 불신앙을 보였습니다. 인성을 갖고 계셨던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가지고 있는 앙금이 없을 리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형편없는 제자들을 주님은 다시 찾아 가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요한복음 21:1) 주님은 베드로에게 두 번째 미션을 주기 위해 이런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와 함께 고기를 잡고 있는 제자들이 한 마리의 고기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바닷가에 서 계셨습니다. 이윽고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주님은 베드로에게 배 오른편으로 그물은 던지라고 제자들에 명령을 하고 153마리의 고기를 잡게 하셨습니다. 그런 뒤, 주님은 잡은 고기를 가지고 육지로 올라오셔서 아침 조반을 제자들과 함께 드셨습니다(요한복음 21:15절).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주님은 이 질문을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셨습니다. 그 중 두 번의 질문을 행하실 때 베드로에게 전부 ‘아가파스 메’라고 물으셨습니다. 다시 말해 베드로에게 ‘나를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는가?’를 물으신 것입니다. 이 질문에 베드로는 감히 ‘주님을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을 아가페의 사랑으로 답하지 못하고 ‘필로 세’라고 대답함으로 친구의 사랑으로 격하하여 대답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세 번째 질문을 하실 때는 베드로의 마음을 아시고 눈높이 사랑으로 내려가셔서 ‘필레이스 메’ 라고 물으심으로 ‘친구간의 사랑으로도 나를 사랑하는가?’ 를 물으십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역시 필로 세라고 대답함으로 사랑의 대화가 마무리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디베랴로 오셔서 베드로와 함께 나누신 대화를 통해 얻는 교훈은 적어도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깊이가 친구 간의 사랑인 필레오의 사랑으로 사랑을 하는 것만이라도 행하라는 교훈을 얻습니다. 나를 사랑하되 필레오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필레오의 사랑만이라도 행하라는 명령이 담보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그것만이라도 만족한다는 간접적인 가르침을 요한복음 21장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예수님과 사랑의 속 깊은 밀어를 나눈 베드로는 그로부터 약 30-40년이 지난 본문의 시기에 소아시아의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을 향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뜨겁게 사랑하라’고 권합니다. 여기에는 대반전의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에 이른 것을 격려하는 이 때의 형제 사랑이 ‘필라델피안’입니다. 다시 말해 그가 30-40년 전에 주님께 디베랴 바닷가에서 고백했던 바로 그 사랑입니다. 베드로는 지금 소아시아에 있는 그리스도인 형제들이 필레오의 사랑을 함께 나누고 있는 것을 격려하고 치하하면서 여기에서 머무르고 있지 않고 “소아시아의 형제들이여! 당신들 스스로가 형제 사랑을 하는 것을 너무나도 귀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을 더 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사랑을 하되 서로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라고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베드로의 이 권면의 끝에 나오는 사랑은 ‘아가페사테’ 즉 30-40년 전 주께서 자기에게 그렇게 요구하고 소망했던 아가페의 사랑이었습니다. 필레오의 사랑으로 밖에는 주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고집하던 베드로가 불과 30-40년 만에 아가페의 사랑을 요구하는 주의 사도로 승화했다는 점이 대반전입니다. 베드로의 이 권면은 말로만 외친 아가페의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초대교회 전승에 의하면 로마에서 순교를 당할 때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것이야 말로 베드로가 자기의 마지막을 아가페의 사랑을 실천함으로 주님이 그토록 원하시던 베드로의 베드로 됨을 실천했다는 평가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본문에서 제시된 필레오에서 아가페로의 승리라는 이 엄청난 승리가 이루어진 것은 적어도 세 가지의 분명한 신앙적 실천을 담보하고 있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1) 진리에 순종할 때 이 사랑의 승리가 임합니다.
진리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요한복음 14:6, 데살로니가후서 2:10-13절).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진리이신 예수를 믿는 자는 구원의 은혜 안에 들어옵니다. 그 은혜 안에 들어온 자만이 아가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2)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 중반절에서 ‘너희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의 ‘깨끗하게 하여’라고 번역된 헬라어 ‘하그니코테스’는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목욕을 해서 정결한 몸을 만드는 행위를 말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오늘 베드로는 이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방법이 바로 앞에서 전제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만 가능함을 성경은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편지하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에베소서 5:26절). 내 영혼이 깨끗할 때만 아가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찬송가 438장은 ‘내 영혼이 은총을 입으면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며, 내 주 예수를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고백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힘입으면 우리들의 영혼에 은총이 임할 것을 믿고 사랑하는 셀원들이 되십시다.
3)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3절 하반절의 “거짓이 없이(아뉴포크리톤)”는 문자적으로 가식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곧 성실한 것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계산하지 않는 삶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원하고 있는 것은 거짓이 없는 사랑, 기도, 품어줌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기적을 창출하는 운동력이요 요소인 것입니다.
터키의 ‘앗탈리아’라고 하는 도시에는 그곳에 얽힌 옛 이야기가 있습니다. 동생을 끝까지 지켜주고자 했던 형의 사랑과 또 형의 사랑을 알고 형을 추모하고 기리기 위해 도시의 이름을 ‘빌라델피아(형제 사랑)’라고 바꾼 곳입니다. 형제사랑의 필레오 사랑도 그림같이 아름다운 데 하물며 주님의 피 흘리신 사랑, 아가페 사랑은 이와 비교되지 않습니다. 진리에 순종합시다. 그래서 영혼을 깨끗하게 하고, 더불어 계산하지 않는 사랑을 실천해서 우리 교회가 아가페의 사랑을 실천하는 좋은 교회가 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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