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6.02.21 셀 사역2024-04-22 16:09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내가 경험했던 장례식 중에 가장 감동적인 장례식 소개하고 그 이유를 나누어 보자.  

 
경배와 찬양 (WORSHOP)

● 어머니의 넓은 사랑 (찬송가 579장)
●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복음성가)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제목: 구원 그 이후를 살아가는 교회⑦
● 본문: 디모데후서 3:1-5
1) 이미 본문을 통해 살펴본 구원 그 이후를 살아가는 교회의 성도들이 살아내야 할 지침 4가지를 말해보자.



  

2) 오늘 설교를 통해 주신 테마를 두 가지 관점에서 설명해 보자. (설교를 참고하라)
● 부모를 거역하지 말라는 영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 왜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가?  

3) 부모님에게 순종했던 일과 불순종했던 일을 솔직담백하게 나누어 보고 그 결과들까지 말 할 수 있으면 교훈으로 삼아보자.
● 순종했던 일과 그 결과
● 불순종했던 일과 그 결과
● 교훈 나누어 보기  

 
사역하기 (WORK)
※ 사순절 영성 회복의 스케줄 정하기(실천 가능하게):

1) 중보기도
① 담임목사님을 위하여
② 사순절 기간을 경건하게 보내기 위하여
③ 셀 원들의 중보기도를 위하여

2) 치유기도
3) 헌금
4) 광고
5) 폐회: 주기도
  

 
설교요약 (SUMMARY)
2016년 2월 21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본문: 디모데후서 3:1-5
제목: ‘구원 그 이후’를 살아가는 교회 (7)

바울의 양아들 디모데는 혈기 왕성한 목회자로 에베소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젊음으로 패기 있게 사역하는 양아들 디모데를 분명 응원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이의 연소함으로 인해 혹시 그르칠 수 있는 사역의 실수들을 줄이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신병이 로마의 감옥에 있었기에 참 불편하고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디모데에게 19가지의 삶을 살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① 자기를 사랑하지 말 것. ② 돈을 사랑하지 말 것. ③ 항상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작은 자임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살 것. ④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의를 지키는 사람이 될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구원 받은 형제들이 실천해야 하는 두 가지 명제를 살펴봅니다.

5) 부모의 말에 설득 당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본문 2절). 바울은 말세에 일어날 일 중에 또 하나 ‘부모를 거역하는 일’이 발생할 것을 예측하고 역설적으로 부모를 거역하지 말 것을 권면합니다.
‘거역하다’라는 단어의 원어적 의미는 ‘설득하지 못하다, 혹은 경청하지 않는다.’의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입니다. ‘부모가 말하는 데에도 설득되지 않는 자식, 부모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 자식’은 패륜의 자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패륜’이라는 한자는 悖(어그러질 패)와 倫(인륜 륜)을 씁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윤리에 어그러졌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윤리는 부모의 말에 설득당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의 말에 설득을 당하는 것은 부모의 말이 옳아서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에 설득을 당할 때 부모가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말씀에는 조건 없이 설득당해야 하며, 경청 당해야 합니다. 그것이 자식의 태도이며 의무입니다. 

사무엘상 22장을 보면 다윗이 경험한 일화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살해 위협을 심각하게 당할 때 이제는 더 이상 도망갈 수 있는 것이 없자 불과 얼마 전, 물맷돌로 쓰러뜨렸던 블레셋의 장수인 골리앗의 고향인 가드로 피신할 수밖에 없는 기막힌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쓰러뜨릴 때 이렇게 선포했던 자였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사무엘상 17:45-47절).
적어도 다윗에게 있어서 블레셋은 공중의 새와 들짐승들과 같은 존재로 여기던 상대하지 못할 족속에 지나지 않았던 하찮은 이방의 할례 받지 못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렇게 하대했던 블레셋 가드로 피신했다는 말은 그만큼 절박했다는 것을 증언하는 대목입니다. 또한 다윗은 가드로 들어가 골리앗에 관한 이전의 일을 기억할 수 있었던 가드 왕 앞에서 미친 사람 흉내를 내야 했습니다. 역시 신변의 위협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을 본 가드 왕 아기스는 미친 자를 자기의 땅에 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다윗을 추방하자 다윗은 이제 어쩔 수 없이 당시 이방의 또 다른 땅에 편입되어 있었던 아둘람이라는 정말로 척박한 땅으로 끝내 쫓겨 나 피신하기에 이릅니다. 이곳은 사람이 거하기가 정말로 아닌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사가는 자신의 몸 하나를 거두기가 쉽지 않은 이곳에서 다윗에게 임한 또 하나의 부담스러운 일 하나를 덧붙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사무엘상 22:1-2절).

본인의 몸 하나를 추스르기도 벅찬 다윗이었는데 그 아둘람으로 다윗의 형제들과 아버지의 온 집 즉 친가 쪽의 다윗의 형들의 가정까지 모든 식솔들이 아둘람으로 내려왔음을 보고합니다. 이 보고는 단순하게 지나칠 만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평상 시 같으면 온 식구들이 함께 모였다는 것이 축제의 장일 수 있겠지만 지금 다윗의 형편은 자기 혼자의 몸도 간수하기가 쉽지 않은 위기의 때였기에 분명히 아버지의 온 집이 그에게로 내려온 것은 그만큼 부담스러운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사정이 이 정도 되면 아들 다윗의 상태는 거의 실신 직전일 것입니다. 아마도 다 포기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기막힌 상태의 다윗은 블레셋 지경에서 동쪽 끝에 있는 또 다른 이방의 땅인 모압으로 피신 장소로 옮겨 모압 왕에게 엎드려 자신의 부모를 의탁했습니다(사무엘상 22:3-4절).
다윗의 위대함은 위기의 순간에도 부모를 끝까지 보호했다는 효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윗처럼 어느 순간, 어느 처지에 있든 부모의 신변을 끝까지 봉양하고 책임져야 하는 것은 부모는 나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구원 그 이후에 부모에게 거역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부모를 거역하는 것이 마지막 세속의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거역하는 자는 결코 구원을 받은 자라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 부모에게 패륜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자입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계명과 하나님의 계명을 이어주는 제 5계명을 다음과 같이 돌 판에 적시하신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애굽기 20:12절).

6) 구원 받음의 감격이 있는 성도라면 반드시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2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지켜야 할 또 다른 하나를 세밀하게 지적합니다. “감사하지 아니하며” 여기에 번역된 ‘감사하다.’는 뜻의 헬라어 ‘카리토’는 ‘호의를 베풀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 단어의 의미를 깊이 새겨보면 아주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사람이 감사하는 삶을 살려면 상대방이 나에게 호의를 베풀고 있음을 인식하며 자각하는 삶을 산다는 것을 전제한다는 말이 됩니다.
반대로 내가 감사하지 못한다는 것은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호의를 베풀고 있음을 인식하지 않고 사는 교만한 존재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서도 너무나 상식에 속한 일입니다. 이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바울은 혹시 젊었다는 것 하나 가지고 천방지축 자기 잘난 맛으로 목회를 할까 두려운 디모데 목사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한 것입니다. “감사하지 아니하는 일에서 멀리 떠나라”
마가복음 14장의 나드 한 옥합을 깨뜨린 한 여인의 기사에서 주님이 여인의 헌신을 칭찬하는 말씀임에 틀림없지만 또 다른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군이신 주님도 감사를 잊지 않으셨다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마가복음 14:6-9절).
주님은 당신의 죽음을 준비하여 장례의 상징을 보여준 여인의 헌신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는 교훈이 이 기사에 담겨 있습니다. 받은 호의에 대하여 주님도 인식하시고 그녀에 대하여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그녀의 이름을 전하라고 명령하신 주님의 선포하심은 그녀를 향한 최고의 감사 사례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말세에는 감사하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경고합니다. 그러기에 교훈의 교훈을 받으며 다짐하십시다. 감사하는 일을 잊지 않겠다고.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편지하는 글에서 이렇게 일찍이 선포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로새서 3:15).

구원 그 이후를 살아가는 자들로서 부모님을 거역하지 마십시다. 감사의 삶을 상실하지 마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