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6.01.17 셀 사역2024-04-22 16:07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새해에 정말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소망을 신앙적 차원과 삶의 차원으로 나누어 말해보자.  

 
경배와 찬양 (WORSHOP)
●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찬송가 488장)
● 주님 고대가 (복음성가)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본문: 베드로전서 1:3-5
● 제목: 소망이 살아 있습니까?
1) 사도 베드로가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에게 살아 있는 소망을 가져도 되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선언하고 있는가?(첫 번째 이유)
● 설교 테마의 첫 번째 내용을 참고하자. (본문 3절 중반절)
●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교 에드워드 클라우니 박사의 해석 참고  

2) 사도 베드로가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에게 살아 있는 소망을 가져도 되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선언하고 있는가? (두 번째 이유)
● 설교 테마의 두 번째 내용을 참고하자. (본문 3절 하반절)  

3) 진실 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감에 있어서 균형 잡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신앙적 태도를 심도 있게 토론해 보고 결과 도출된 실천적 행동 지침을 추출해 보자.
●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
● 아직 이루어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
● 실천적 행동 강령 추출하기:   

 
사역하기 (WORK)
1) 중보기도
  ① 담임목사님을 위하여
  ② 권사 및 피택 안수집사 1일 세미나를 위하여
  ③ 사업체 심방을 위하여(19~ 22일)
  ④ 셀 원들의 중보기도를 위하여
2) 치유기도
3) 헌금기도
4) 광고
5) 폐회: 주기도
  

 
설교요약 (SUMMARY)
2016년 1월 17일 주일 오후 예배 설교 (베드로전서 네 번째 강해)

본문: 베드로전서 1:3-5
제목: 소망이 살아 있습니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기적과도 같이 살아난 프리모 레비는 살아남아야 할 목적이 분명히 있었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 목적은 레비 스스로가 절망을 하지 않도록 만든 동기 부여였고 결국은 이것이 레비의 간절한 소망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현재 진행형의 소망은 인간을 살아나게 만드는 아주 중요한 요소임을 알게 해 줍니다.

  사도 베드로는 AD 64년에 로마가 다스리고 있었던 속국에 속한 모든 디아스포라 크리스쳔들에게 닥칠 박해를 예상하고 박해의 대상자이자 피해를 받게 될 장본인들인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크리스천 나그네들에게 편지를 쓴 것이 베드로전서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제일 먼저 디아스포라 크리스천 형제들에게 우리들이 가질 소망이 산 소망인 까닭을 본문 3절에서 두 가지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1) 주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을 찬송한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에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예수를 부활시켰기에 하나님을 찬송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베드로에게는 찬송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교 교수인 에드워드 클라우니 박사는 자신의 베드로전서 강해에서 베드로전서 1:3절을 다음과 같이 주석했습니다. “우리가 산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메시지가 아니라 부활의 사실이다. 즉 그 분이 부활하셨다는 것으로 인하여 그 분은 우리의 구원을 확보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을 때 우리도 다시 살아났기에 그 분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이다.” ‘부활의 메시지가 아니라 부활의 사실’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은 주님의 부활의 현재성입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에게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보여 진 하나님의 행동에 대하여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의 가인의 항의가 오늘의 현대인들의 항의입니다. 하나님이 빌미를 제공했으므로 하나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무신론자들이나 불신자들이 열광하는 까닭은 부활 믿음에 대한 사장성(死葬性)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게 하셨다는 부활에 대하여 전혀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4:14-15절은 동생을 죽인 대가로 하나님이 내리신 징벌에 못견뎌하며 긍휼을 요구하는 카인에게 다시 한 번 사랑의 확약을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끝까지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보입니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부활에 대한 死葬性(사장성)이 아닌 부활에 대한 現在性(현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인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보이는 것입니다. 삶이 아무리 고단하여도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까닭은 바로 부활하신 주님의 현재성이 나에게 산 소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부활신앙은 오늘 나의 심령에 2,000여 년 전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께서 여전히 꿈틀거리는 은혜로 살아계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 안에 날마다 살아서 움직이시는 부활의 주님의 은혜가 현재적으로 움직여 살아 있는 소망을 갖고 승리합시다.

2) 부활하신 주님이 나를 거듭나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셔서 우리들의 구원을 확보하신 것은 물론 우리들을 거듭나게 해 주셨습니다(본문 3절 후반절).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주님이 우리들을 거듭나게 해 주신 이 거듭남의 신비는 정말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23절을 보면,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베드로는 내가 거듭난 것은 썩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을 확신했습니다. 썩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태어난 베드로는 거듭나기 이전에는 ‘철저한 경계선 그리스도인’이었고, ‘아주 이기적인 회색주의자’였으며, 아주 불완전한 다혈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거듭나기 이전 베드로가 갖고 있었던 이것들은 영원하지 않은 것들입니다. 반드시 사라질 것들입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인하여 말씀으로 거듭난 베드로는 달라졌습니다. 그는 썩지 아니할 영원한 소망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를 당했다고 합니다. 베드로가 이런 신앙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종말론적인 신앙의 기틀을 산 소망으로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심령 안에 여전히 부활하셔서 역사하시는 주님이 주시는 산 소망의 핵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썩지 않는 소망, 더럽지 않은 소망, 쇠하지 않는 소망은 이 땅에서 승부가 나는 소망이 아닙니다. 이 소망은 하늘에 간직되어 있는 종말론적인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을 갖고 있는 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습니다. 이렇게 놀랍고 놀라운 산 소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자들이 받습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본문 4-5절).
  담임목사님께는 거듭난 이후 산 소망이 신앙의 기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 에서 교회가 그리고 성도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천착하며 목회를 하셨습니다. 구원 그 이후를 살아가는 것, 월요일부터 더 승리하는 것, 축도 이후가 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 성서적 앎을 실천적 삶으로 연결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바로 이런 관점에서 담임목사님께서 실천하려고 했던 목양의 틀입니다. 또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앞으로 반드시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 를 소망합니다.
  요한계시록 21:1-4절을 보면,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 말씀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적입니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권위를 상실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교회가 무엇을 해도 믿지 않는 영적 흑암의 시대가 우리를 덮쳤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 기막힌 형극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잘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이 적지 않은 위로를 줍니다. 캄캄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한 가지만 있으면 됩니다.
나는 지금 살아있는 소망을 갖고 있는가? 에 대한 대답에 YES 하는 삶입니다. 그러려면 두 가지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① 부활하신 주 예수께서 오늘 나의 심령 안에서 여전히 살아 움직이시는 부활의 현재성을 믿어야 합니다.
② 동시에 그 주님이 썩지 않는 영적 거듭남을 주셔서 종말론적인 승리를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의 살아 있는 소망을 갖고 날마다 승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