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듯이 책을 읽었다. 왜? 8월 한 달 동안 16권의 책을 읽었다. 거의 이틀에 한 권의 책을 읽은 셈이다. 그리고 짧게 든 길게 든 북 리뷰를 남겼다. 원래 책 읽기가 취미이기는 하지만, 이번 달에는 거의 미친 듯이 책을 읽었다. 독서를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들이야 이해를 하리라 믿지만, 1년에 책을 한 두 권정도 읽는 사람들은 아마도 나에게 미쳤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왜 이런 병적인 짓을 했을까? 자문했다. 그리고 자답한다.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진짜로 미쳐버릴 것 같아서다. 아침에 눈을 떠서 신문을 연다. 열면 신경이 곤두선다. 기독교에 관련된 뉴스 그리고 교회라는 단어가 신문에 보이면 무서워진다. 그런데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아예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싶은데 눈이 간다. 그리고 접하고 나면 밀려오는 소회는 무력감과 참담함이다. 오늘, 좌의정의 자리에는 네이버가, 우의정의 자리에는 다음이, 그리고 영의정의 자리에는 유트브가 좌정하고 목사들에게 이모저모의 최신의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이들은 신문에서 보도한 경악에 가까운 교회 관련 기사들을 더 자극적인 글과 이미지로 표현하며 교회를 넉-다운의 빈사상태로 몰고 간다. 이것을 너무 잘 알기에 어떻게 하든 괴물 그 자체인 삼정승과의 피 말리는 싸움에서 벗어나거나 이기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독서다. 책을 손에 들어야 한다. 동시에 읽고 나면 글쓰기에 천착하는 수밖에는 없다. 적어도 책을 손에 들고 읽는 동안에는 삼정승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고, 글을 쓰는 동안에는 경기(驚氣)를 일으키는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기에 말이다. 코로나 19의 확산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서는 코로나는 정기적으로 하는 운동인 탁구도 중단하게 했다. 일주일 중에 월요일이면 아내와 함께 피난 가는 목욕탕은 나의 유일한 휴식처였는데 이제 그마저도 빼앗겼다. 말 그대로 수족이 다 잘린 느낌이다. 가만히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삼정승이 나를 공격한다. 거의 미칠 지경이다. 살기 위해서 나 역시 더 공격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고 했던가!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선택한 방법은 미친 듯이 몰입한 책읽기였다. 이 작업은 나를 숨 쉬게 한다. 여기에는 코로나 19가 없다. 여기에는 전광훈이라는 괴물도 없다. 여기에는 개교회주의와 국가주의와 같은 님비주의도 없다. 여기에는 절대로 삼정승이 침범하지 못한다. 여기에는 오로지 ‘grace revealed’ 만이 있다 8월의 마지막 주에 만난 휘트워스 대학 종교철학 교수인 제럴드 싯처가 역설한 말이 내 영혼에 공명이 되어 메아리친다. “세상의 주인이 그분이어도 세상을 돌보는 일은 우리의 책임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창조세계를 잘 관리하라고 하셨지, 망치라고 하신 적이 없다.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당하는 모든 재난의 이유는 내가 돌보지 않고 망쳤기 때문이다. 즉 절제하지 못했단 말이다.” (제럴드 L, 싯처, “하나님의 은혜”, 성서유니온선교회, p,220.) 싯처의 이 책 원제가 ‘grace revealed’ 즉 ‘계시된 은혜’다. 젊은 아이들 말대로 ‘빼박’의 촌철살인이다. 절제하지 못한 채 나와 당신이 갖고 있는 이기적 욕망이 만들어낸 괴물이 코로나다. 그와 싸우기가 버겁다. 이제는 지쳐가고 있다. 내가 미친 듯이 책을 읽은 이유는 그래야 내가 미치지 않을 것 같아서다. 말장난이 아니다. 정말로 그렇다. 세상의 걱정거리로 전락한 내 영원한 사랑 한국교회가 비집고 들어갈 회복의 틈새가 보이지를 않는다. 그런 여력이 안 보인다. 그래서 너무 아파 미칠 것 같다. 미치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책을 읽는 일은 계속될 것 같다.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난 정말로 미칠 것 같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