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풀을 보면서 인동초(忍冬草)라는 단어를 알게 된 때가 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별명이라는 사실이 매스컴에서 보도된 이후였습니다. “겨울을 겪어낸 풀‘ 이라는 문자적인 의미를 새기고 훑어보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애처로움이 ’인동초‘라는 단어에서 느껴집니다. 진보적 시인으로 유명한 고 김수영 시인의 그 유명한 시 ‘풀이 눕는다’를 보면 이런 시어(詩語)가 있습니다. “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말 그대로 인동초와 같은 끈질김이 풀에게서 느껴집니다. 풀이라는 이미지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읊으려고 이 시어를 끄집어 낸 것이 아닙니다. 다만 풀의 생명력이 한없이 애잔하기도 하고, 또 강인함을 새겨 보기위해서 적어 본 것입니다. 교회 뒷마당 정원에 나가보셨습니까? 1년에 두 번 정도 잔디 정리를 할 때, 같이 자란 잡풀들을 제거하고 손질하는 데 이번에 지루한 장마 탓인지 다른 어느 해보다 그 번식력이 왕성하여 지난 봄, 이곳을 손 본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잡풀들이 우후죽순처럼 즐비하게 자라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을에 다시 손을 볼 때 정리할 것이 생각보다 많을 것 같습니다. 부교역자가 휴가로 부재인 탓에 교회 구석구석을 돌보는 한 주간을 지내면서 뒷마당 정원에도 자주 나가 보았습니다. 1년 여 즈음, 남자 집사님들이 이목(移木)한 포도나무들이 꽤나 많이 자라 포도넝쿨 쉼터를 생각하여 세워놓은 쉼터 지탱대에 제법 많은 넝쿨이 기둥을 타고 올라왔고, 아직은 식용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몇 송이의 포도 열매도 냈습니다. 너무 습한 기간이 오래 지속되어서 게스트 룸과 기도실이 많이 상해 근본적으로 수리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이번 주간 새롭게 했습니다. 또 하나, 정원에 강하게 자라난 이름 모를 풀들을 보다가 목사로서의 직업의식이 발동되었습니다. 풀이면 풀이지 왜 잡풀이라고 했지? 아마도 사람에 따라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각양일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생각이 다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예외일 리 없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목사로서 답을 내 보고 싶어졌습니다. 풀은 풀인데 왜 잡풀일까? 돌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잘 다루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냥 내버려두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한꺼번에 정리될 소중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게 되자 성경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태복음 13:29-30) 잡풀 성도, 잡풀 목사가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알곡이 되어야지. 한 주간의 단상(斷想)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