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직선 지난 주간에 가평에 있는 필그림 하우스(pilgrim house)에서 머물렀습니다. ‘순례자의 집’이라고 해석되는 이곳에서 깊이 성찰한 문장이 바로 ‘부드러운 직선’이었습니다. 이 문장은 문자적으로 말하면 모순입니다. 직선의 의미는 ‘단호함’, ‘올곧음’, ‘강직함’으로 대변되기에 결코 부드러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도종환 시인이 쓴 시 중에 이런 시문을 담아 그 시의 제목을 ‘부드러운 직선’이라 명한 것은 기막힌 통찰이었습니다. “그러나 저 유려한 곡선의 집 한 채가 곧게 다듬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것을 본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요구한 정신을 두 개의 단어로 추출한다면 마땅히 ‘사랑’과 ‘공의’입니다. ‘사랑’은 부드러운 곡선의 의미를 갖고 있는 하나님 정신의 메타포인데 비해, ‘공의’는 결코 굴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직선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정신입니다. 필그림 하우스에 가면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을 상징하는 참 많은 상징물들이 조형되어 있습니다. 이번 여정에는 저 역시 그가 남긴 천로역정의 코스를 즈려밟아 보고 싶었습니다. 해서 천로역정 공원을 돌아보았습니다. 순례의 여정을 돌다가 존 번연이 말하고 했던 천로역정의 생살 드러내기를 맛보았습니다. 천성을 향해 가는 삶을 우리는 곧잘 순례자의 삶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럴 때, 순례라는 단어가 낭만적인 단어처럼 여겨지는 이유는 아마도 유토피아적인 사상이 담보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성도가 살아내야 하는 순례의 삶이 얼마나 치열한지는 그 길을 진정성 있게 달려가는 자만이 느끼는 체감의 온도일 것입니다. 한 주간, 침묵의 쉼을 독려하는 필그림 하우스에서 치열했던 지난 2020년의 상반기 시간들을 뒤돌아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만난 문장이 바로 ‘부드러운 직선’이었습니다. “그러나 저 유려한 곡선의 집 한 채가 곧게 다듬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것을 본다.” 유려한 집이 유려한 이유는 집 모양이 곡선화 되어 있는 구조였기에 가능했다고 시인은 보았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시인의 통찰은 그 유려함을 이루는 건축의 방법론이 ‘곧게 다듬은 나무’ 즉 직선으로 구성된 재료들을 이용했다는 점을 본 것이었습니다. 웬만한 범인(凡人)들은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는 바로 시인의 이 혜안이 너무도 부러웠습니다. 한 주간, 기도원에서 후반기 사역의 지혜를 구하다가 스쳐지나간 조명은 도종환 시인의 그 다음 연에 있는 명 시구였습니다. “휘어지지 않는 정신들이 있어야 할 곳마다 자리 잡아” 후반기 사역 역시, 방법론 아니라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고 계시는가? 라는 그 정신을 추구하기로 다짐해 보았습니다. 휘어지지 않는 정신을 세인의 곳곳에 자리 잡게 하는 것, 그러나 그 이끌어감이라는 직선을 품음이라는 부드러움의 곡선으로 조화시키는 목양, 아마도 세인 교회 후반기 사역의 내용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후반기에는 더 큰 지혜가 필요합니다. 키리에 엘레이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