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섬기던 바른 교회 아카데미라는 참 좋은 단체가 있었다. 지금 여러 가지 이유로 이 단체가 사역을 멈추었지만 활동이 왕성할 때, 현장 목회자로 있는 나는 너무 좋은 공부를 할 수 있어서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1년 두 번, 각 신학대학에서 강의하는 교수 연구위원들이 세미나의 주제에 맞게 소논문을 준비하여 서로 발제하고, 논찬하며 건강한 한국교회 만들기에 정진했던 기억이 참 귀하게 남아 있다. 당시 나는 목회자로 이 세미나에 참석하여 교수들이 발제하고 논찬하는 판에 끼어들어 몇 가지를 피력한 적이 있었다. 경우에 따라 신학교 교수들과 치열한 논쟁을 벌일 때마다 부족한 신학적인 능력으로 인해 매 번 수비적인 입장으로 경청하는 입장이었고, 늘 수동적으로 마치 신학교 시절에 교수들보다 덜 공부한 죄를 달갑게 받는다는 입장에서 야단맞음을 쿨 하게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단 한 가지의 경우는 예외였다. 텍스트에 국한하여 콘텍스트를 무시할 때였다. 나는 보수적인 신학교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그리고 두 번째 석사학위는 지경을 넓힐 필요를 느껴 조금은 진보적인 학교에서 공부했다. 그 때 배웠던 내용 중에 하나, 성경중심적인 텍스트 연구를 상황 중심적으로 연계하지 않는 신학은 의미가 없는 죽은 신학이라는 선생님의 가르침에 동의했고, 또 배운 대로 그렇게 목양의 현장에서 실천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바른 교회 아카데미 사역에 동역할 때, 목회 현장에 대해 체휼의 느낌이 없는 몇 몇 신학교 교수들에게 현장을 존중해 달라고 무언가를 청하면 되돌아왔던 까칠했던 한 수는 이것이었다. “이래서 가능하면 목사와 교수는 토론하면 안 돼!” “academia에서 non-academia를 논한다.” 핀잔이었다. 코로나 19 사태가 한국교회를 만신창이를 만들고 있는데 그래서 현장 목회자들은 지금 코마 상태인데 아주 극도로 편향된 좌우 논리에 빠져 있는 신학자나 목회자의 말잔치가 요란한 것 말로, 정말로 한국교회를 위해서 말해 주어야 할 균형이 있는 신학자들이 유감스럽게도 침묵하고 있다. 대단히 비겁하다. 적어도 나 같은 현장 목사는 균형 잡힌 신학자들이 제시하는 코로나 사태에 따른 현장 목회자들이 갖추어야 할 신학적 자세에 대해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데 감감 무소식이라 아쉽다. 한국교회 교우들의 눈물과 물질의 후원으로 학위를 취득한 신학대학교 교수들은 작금의 한국교회를 위해 공부한 지식을 쏟아내야 할 시기다. 현장 목회자들은 많이 부족하기에 도움을 기대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현장 목회자) 어떻게 코로나 사태에 대한 교회론을 가져야 하는지 목마르다. 성서신학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갈급하다. 이럴 때 조직신학자들은 무엇을 생각하지가 궁금하다. 교회사적으로 교회는 위기 때마다 어떻게 해석했는지도 궁금하다. 이럴 때 교회는 상황윤리적인 태도로 코로나를 보아야 하는지 기독교 윤리학자들의 성찰도 듣고 싶다. 어떻게 설교를 해야 하는지 설교신학자들의 고언도 듣고 싶다. 실천신학자들은 지금 발 벗고 나서야 할 때다. 코로나 사태에 대한 실천신학적인 프락스시를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에 나는 민감하다. 로교 신학대학교 역사 신학 교수로 있는 모 교수가 발표한 코로나 사태에 따른 논문을 보았다. 현장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논제여서 많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 노력에 감사했다. 우리보다 더 많이 공부한 교수들이 지금은 현장 목사들을 위해 한 수 가르쳐 주어야 할 때다. 기다린다. 간절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