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월요일 성서 일과 묵상 조금도 오늘의 성서 일과 시편 119:41-48, 신명기 6:1-9, 20-25, 야고보서 2:8-13, 민수기 33:38-39 꽃물 (말씀 새기기) 시편 119:43, 45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43절) 내가 주의 법도들을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걸어갈 것이오며(45절) 마중물 (말씀 묵상) 시인의 읊조림이 비장하게 들린다.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않게 해 달라는 간구가 그렇게 들린다. ‘조금도’라고 번역한 영어 단어 ‘utterly’를 조금 더 과격한 단어로 바꾼다면 ‘절대로’ 로 대체할 수 있다. 시인은 놀라운 고백을 한다. 이렇게 빈틈 없이 ‘다바르’ 즉 ‘말씀’에서 떠나지 않을 때 나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함을 얻을 수 있다고 토로하고 있기에 그렇다. (45절) 이런 역설이 또 어디에 있나! 말씀에 대한 빈틈이 없을 때 진정한 자유함을 얻게 된다니 말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다바르’를 깊이 성찰하고 그 ‘다바르’에 묶여 살아본 자들은 시인의 영성에 100% 아멘한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할 때 진정한 자유함을 얻는다는 말은 내 삶에 대한 책임 소재가 내가 아니라 주군임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되기에 그렇다. 대학원을 다닐 때, 본관 앞에 우뚝 서 있는 문구를 항상 스쳐지나갔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2) 이 지유함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utterly’의 마음으로 ‘다바르’에 천착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다바르’를 취사선택의 대상으로 여기는 자에게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자유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나는 시인의 이 고백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조금도’ 두레박 (질문) 나는 말씀을 선택의 내용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말씀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에 있어서 빈틈을 보이지 않게 하소서. 조금도. 나비물 (말씀의 실천) 말씀을 나에게 유리한 것으로 악용하지 말자. 말씀을 말씀으로 받자. 그것이 불편하다 할지라도.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파하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전쟁, 기근, 질병, 차별, 오염 등등으로 아파하는 자들이 울고 있습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저들을 긍휼이 여겨 주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