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6.11.20 지역 셀 사역2024-04-22 16:20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금년 한 해 꼭 감사하고 싶은 사람과 그 이유 나누어 보기.  

 
경배와 찬양 (WORSHOP)

● 산마다 불이 탄다 (찬송가 592장)
● 시선 (복음성가)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제목 : 내 아들 마가도
● 본문 : 베드로전서 5:13-14
1) 요한 마가가 제 1차 전도여행에서 팀을 이탈한 이유는 무엇인가?
*설교를 참고하기
① 학자들의 다섯 가지 요인 분석:
② 실질적인 이유:  

2) 요한 마가가 실패를 경험하고 다시 하나님의 사역자로 서게 된 이유를 세 사람과 관련하여 말해보자.
① 바울:
② 바나바:
③ 베드로:  

3) 설교를 통하여 나누어야 할 교훈을 레마로 정리해 보자.
① 리더십과 관련하여:
② 나는 교회에서 어떤 리더십을 실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는가?  

 
사역하기 (WORK)
1) 중보기도제목
● 서정수, 최정희 집사 및 환우들을 위하여
● 행복 나눔 축제로 인해 교회에 등록한 교우들의 아름다운 정착을 위해
● 쳥년회 M.T가 승리할 수 있도록 (25-26일)
● 국가적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성도로서 진정성이 있는 중보 드리기
● 한 해의 마무리를 잘 하기 위하여
● 담임목사의 목양 승리를 위하여
2) 헌금
3) 광고
● 등록한 자들에 대한 관리 철저
● 베스트들에 대한 중단 없는 사역하기
4) 폐회: 주기도  

 
설교요약 (SUMMARY)
2016년 11월 20일 주일 오후 예배 설교 (베드로전서 35번째 강해)
본문 : 베드로전서 5:13-14
제목 : 내 아들 마가도

  베드로가 첫 번째 편지를 마감하는 끝부분인 오늘 본문 13절에서 이렇게 문안 인사를 합니다.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택하심을 함께 받은 베드로가 언급한 바벨론이라는 지명은 남 유다를 멸망시켜 수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왔던 악명 높았던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본문에 기록된 바벨론은 상징의 언어로 로마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본문 13절 전반절에 기록된 바벨론에 있는 교회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라는 편지를 써서 격려했던 로마 교회일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또 하나 해석의 관점은 ‘너희에게’입니다. 이 수신자에 대한 이해는 디아스포라 소아시아 크리스천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타당합니다.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본문 14절). 베드로는 심각한 로마의 핍박에 놓여 있는 로마에 살고 있었던 교회 공동체의 지체들과 거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는 소아시아의 디아스포라 크리스천 공동체의 지체들 모두에게 다가올 핍박과 시련에 굴하지 말고 서로 사랑의 입맞춤으로 문안하고 격려할 것을 부탁합니다. 더불어 아무리 고통스러운 핍박이 와도 교회 공동체의 지체들에게는 샬롬(평강)이 임하기를 축원하면서 글을 맺습니다. 이상의 글 마무리를 보면서 너무나 상식적인 평강의 인사 그리고 안부 전함 정도로 본문은 끝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담겨 있는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구절이 13절 후반절입니다.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베드로가 편지의 말미에 언급한 마가는 마가복음의 저자인 요한 마가입니다. 요한 마가라는 이름이 성경적 내증으로 첫 번째 등장하는 본문은 사도행전 12:12절입니다.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야고보 사도가 순교하고 베드로가 감옥에 갇혀 있었던 예루살렘의 심각한 핍박 속에서 예루살렘 신앙 공동체의 지체들은 두려운 마음에 한 곳 모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기도처를 누가는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의 집이라고 지칭합니다. 이 집은 학자들에 의하면 아마도 주님께서 살아 계실 때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한 바로 그 장소일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이유는 이 집은 큰 다락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 가지 차이는 주님이 살아계실 때 찾으셨던 그곳의 주인인 요한 마가의 아버지는 생존해 있었고, 누가복음에 기록된 베드로를 구출하기 위한 특별 기도회가 열리던 그 때는 요한 마가의 아버지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망한 상태라는 차이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도행전 12:12절에는 마가라는 요한의 어머니 집으로 기록했고 마가복음 14:14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행하셨던 다락방의 주인을 ‘오이코테스포테스’라는 남성명사로 기록하여 ‘집주인’이라고 표현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요한 마가의 아버지였습니다. 유대 종교가 대세였던 예수님 당시 나사렛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잘못하면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말도 됩니다. 그런 살벌한 시대에 요한 마가의 아버지는 예수님의 일행에게 다락방을 제공하는 통 큰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더불어 남편을 여읜 요한 마가의 어머니도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남편의 믿음을 따라갔던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최후의 만찬을 위하여 장소를 제공했던 마가의 아버지, 베드로가 구금되는 핍박의 시기에는 그를 구출하기 위해 중보기도 장소로 함께 모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 마가의 어머니 밑에서 마가는 성장했을 것이 자명합니다. 이런 강력한 믿음의 바탕 위에 서 있었던 마가에게는 또 다른 영적 지원자가 있었습니다. 골로새서 4:10절을 보면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초대 이방 교회의 강력한 사역자이자 리더였던 바나바는 그의 삼촌이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요한 마가는 영적 배경이 말 그대로 든든한 배경이었습니다.
  이런 배경을 가진 요한 마가는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서 진행한 제 1차 선교 프로젝트인 바나바와 바울 팀의 요원으로 발탁되어 선교 여행의 동반자로 서는 초대 교회 공동체의 지도적 인물로 서 갈 수 있는 좋은 위치를 선점할 수 있었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요한 마가가 제 1차 전도여행에 이탈한 사건이 생겼고 이 일로 인해 바울과 바나바는 갈라서서 제 2차 전도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행 13: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13절의 해석은 대체적으로 다섯 가지로 종합됩니다. ⓵ 맨 처음 마가가 전도 팀에 합류할 때 구브로까지만 동행하기로 하였기에 여기서 헤어졌다. ⓶ 삼촌이었던 바나바를 따라 전도 팀에 합류했는데 선교의 주도권이 바울에게 넘어가는 것을 보고 불만스러워 이탈했다. ⓷ 향수병에 걸렸다. ⓸ 용기 부족으로 이탈했다. ⓹ 바울이 풍토병에 걸리는 것을 보고 겁을 먹었기에 이탈했다. 
  학자들의 해석은 이러하나 성경에 있는 상황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정직한 해석은 영적 상태의 빈곤함이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마가는 전도여행을 감당할 만한 수준에 미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이 대열에서 이탈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요한 마가는 어떤 의미로 보면 초대 교회 지도자 그룹에서 탈락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마가는 제 2차 전도여행에서 당시 이제는 어엿한 팀장으로 부상한 바울의 시각에서 외면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나바의 간절한 부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가는 2차 전도여행팀에서 배제되는 치욕을 당합니다. 그런데 역사의 정황은 이렇게 요한 마가의 기록을 매듭지을 줄 알았는데 대단한 반전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에게서 외면 받은 마가는 이윽고 삼촌 바나바와 함께 다시 구브로에 가서 나름의 사역을 감당합니다. 요한 마가가 구브로에서 어떤 사역을 했는지 성경은 침묵합니다. 그래서 요한 마가의 구브로에서의 동선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나바라는 인물을 통해 마가의 행적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바나바는 사람을 세우는 위로의 아들이자 권위자였습니다. 그는 한 번 실패한 마가를 다그치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그는 마가에게 너 때문에 내 신세도 1인자의 자리를 바울에게 내 주고 이 신세가 되었다고 요한 마가를 다그치지 않았을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바나바는 다시 마가를 품어주는 데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유추할 수 있는 것은 구브로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난 뒤의 요한 마가의 동선 때문입니다.
  요한 마가에 대한 행적을 성경은 이렇게 우리들에게 보고합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디모데후서 4:11절).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있을 때 양아들 디모데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의 유언과도 같은 이 편지의 말미에 디모데에게 할 수만 있으면 빨리 내 곁으로 오라는 독려의 편지 끝에 올 때에 혼자 오지 말고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당부합니다. 그 이유를 디모데후서 4:11절에서 마가는 ‘내게 유익한 자’라고 설명합니다.
  제 2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 그렇게도 간절하게 마가를 함께 데리고 가기를 원하던 동역자 바나바의 요청을 냉정하게 뿌리쳤던 바울이 이제는 그가 나에게 유익한 자이고 내가 그를 보고 싶기에 그를 데리고 오라는 바울의 글 속에서 훼방자이고, 무익하던 자로 인식되었던 마가가 이제는 유익한 자로 변했다는 감동이 전해 옵니다. 아마도 마가가 그렇게 변한 사역의 동기는 바나바의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품어주었던 탁월한 리더십 때문일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하나님의 사역과 공동체를 위하여 인간적인 사사로운 정에 연연하지 않아 마가를 배제했던 바울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연단 받고 변화된 마가를 다시 인정해 주었던 봄의 리더십입니다.
  바울은 마가를 바라보는 봄(SEEING)의 리더십을 갖고 있었던 반면 바나바는 마가를 품음(RECEIVING)이라는 리더십을 보여 줍니다. 결국 이 두 사람의 리더십이 요한 마가라는 위대한 인물을 세웠고, 그가 그렇게 세워졌기에 오늘 우리가 복음서 중에 가장 권위 있는 마가복음이라는 선물을 받게 되는 행운도 얻게 된 것입니다.
  요한 마가는 바울의 요청대로 로마로 건너와 바울에게 적지 않은 위로와 용기를 주는 동역자로 분연히 섰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요한 마가를 그 정도로 사용하시지 않고 더 위대한 일을 계획하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메시지에 담겨 있습니다. 베드로가 마가를 소아시아에 있는 형제들에게 “내 아들 마가” 라고 소개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 성서학자들의 대부분의 의견은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투옥되어 있을 즈음인 주후 64년경 로마에 발을 디딘 요한 마가는 감옥에 있는 바울을 위로하는 동역자로, 또 하나는 바벨론으로 지칭된 로마에 있는 베드로와 교회 공동체의 지체들을 돕는 사역자로 이중의 일을 감당했다고 합니다. 당시 히에라볼리의 감독이었던 파피아스의 기록물이 우리들에게 전해졌습니다. 파피아스는 마가를 베드로의 통역관으로 설명합니다. 베드로의 지적인 능력이 일천하여 화려한 헬라어로 편지를 쓸 수 있는 능력이 없었는데 이것을 아신 주님은 베드로에게 실루아노라는 동역자를 붙여 주셔서 편지를 대서하게 했고, 헬라어에 대하여 능통하지 못한 베드로를 위하여 통역 동역자 마가를 붙여 주셨다는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귀한 사역을 감당해 주었던 요한 마가를 가리켜 베드로는 최고의 친밀함을 나타내는 ‘휘오스’ 즉 아들이라는 표현으로 마가를 극찬하고 있습니다.
  이상의 본문 해석을 통한 레마는, *건강한 리더십은 하나님의 사람을 승리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라는 교훈입니다. 바울의 봄이라는 리더십, 바나바의 품음이라는 리더십, 그리고 베드로의 세워줌(REBUILDING)이라는 리더십이 요한 마가는 있게 했다는 감동의 레마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의 서두에 언급한 대로 영적 리더십은 교회 공동체의 생사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임을 설교를 통해 재확인하게 됩니다.
  우리 세인 교회에 주님의 시선으로 보아주는 봄(SEEING)의 리더십이 있기를, 주님의 시선을 품어주는 품음(RECEIVING)의 리더십이 있기를, 주님의 시선으로 세워주는 세워줌(REBUILDING)의 리더십이 있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