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6.10.02 지역 셀 사역2024-04-22 16:19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내가 참 칭찬하고 싶은 교회 공동체의 지체 한 사람을 지명해 보기. 그리고 그 이유를 나누어 보기.  

 
경배와 찬양 (WORSHOP)

● 내 주의 나라와 (찬송가 208장)
● 예수 하나님의 공의 (ccm)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제목 : 바울과 소스데네는
● 본문 : 고린도전서 1:1-3
1) 소스데네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설교를 참고해서 나누어 보자.
① 사도행전 18:7-8절 참고:

② 사도행전 18:17절 참고:  

2) 본문에 바울과 소스데네가 고린도전서 공동 발신자로 병렬 기록된 영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설교 주제 참고 

  

3) 우리 교회가 위 항목 질문에 부합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바른 교회상을 나누어 보자.
① 1번 질문 답에 대한 나눔:
② 2번 질문 답에 대한 나눔:
③ 그런 교회와 성도가 되기 위해 합심하여 기도하기:  

 
사역하기 (WORK)
1) 중보기도제목
● 환우들을 위한 특별 비상 기도회의 응답을 위하여
● 대입 지원자들을 위해
● 지역 셀의 피 선교지를 위해
● 담임목사의 첫 번째 서적의 선한 승리를 위하여
● 가을 열린 모임 사역을 위하여
● 부교역자 충원을 위한 중보
2) 헌금
3) 광고
● 환우들을 위한 비상기도회 참여 독려하기
● 가을열린모임 1주차 사역에 누락되는 자가 없도록 독려하기
● 담임목사 저서 북 리뷰 작성할 수 있는 교우 독려하여 인터넷에 게재 독려하기
4) 폐회: 주기도  

 
설교요약 (SUMMARY)
2016년 10월 2일 주일 낮 예배 설교 (고린도전서 세 번째 강해)
제목: 바울과 소스데네는
본문: 고린도전서 2:1-3

  본문 1절에서 사도 바울은 분명한 소명의식이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교회라는 분명하고 올바른 교회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바울만이 아니라 또 한 사람이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두 번째 사람 소스데네입니다. 여기에 등장한 소스데네를 이해하려면 당연히 사도행전 18장에 기록하고 있는 고린도 사역을 병행하여 살펴야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하여 사역을 시작할 때 상당히 많은 도전들과 핍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을 위해 이미 준비해 놓으신 하나님의 동역자들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붙여 주셨고 동시에 바울의 믿음직한 디모데와 실라가 고린도 사역에 합류하게 됩니다. 바울의 고린도 사역에 있어 결정적이며 긍정적으로 작용한 영혼 구원의 일은 고린도 지역 회당장이었던 그리스보의 회심 사건입니다.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행 18:7-8)
  고린도 지역에 유대 종교적 지도자였던 그리스보의 회심은 고린도 지역 내에 있었던 유대인들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을 것이고 이것을 예의주시하며보고 있던 고린도의 유대 종교주의자들은 당연히 바울은 물론 바울의 동역자들에 대하여 심한 적대적 감정을 표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 핍박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여기에서 주목해서 보아야 할 또 다른 사건은 회당장 그리스보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함으로서 그리스보는 유대교에서 축출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당시 고린도를 통치하던 로마의 총독은 갈리오였는데 마침 갈리오가 고린도에 막 부임하였을 때 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자 고린도의 유대인들은 아직까지 정세 파악이 잘 안 되어 있는 총독을 찾아가 바울의 일행이 행한 일들이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일이라고 송사하며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윽박지르는 일이 사도행전에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송사를 받은 갈리오는 종교적인 문제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선을 그었고 유대인들에게 종교적인 일을 스스로 처리하라고 판정하며 법정에서 내쫒아 버리자 그 분노를 풀기 위해 또 다른 한 사람을 공격하였습니다. 그가 바로 소스데네입니다(행 18: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성경적인 내증을 중심으로 해석하자면 소스데네는 기독교로 회심하여 유대공동체로부터 출교된 그리스보의 뒤를 이어 회당장의 자리에 오른 후임 회당장이었습니다. 종합하면 고린도지역의 유대 종교는 아마도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전임자인 그리스보의 회심으로 출렁거리는 고린도 유대 공동체는 후임자인 소스데네의 회심으로 인해 치명타를 입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유대 회당의 장이었던 소스데네가 고린도 교회를 위한 첫 번째 편지의 발신자로 본문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이 오늘 고린도전서를 읽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가? 의 접근 입니다.

1) 교회의 지도력은 서열이 아니라 영성이라는 점을 알려줍니다.
  본문 1절을 보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우리성경 본문에는 번역이 생략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형제 소스데네’ 라고 번역된 문구 앞에 정관사 ‘호’가 붙어 있습니다. 이 말은 고린도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미 형제로 정해진 숫자 중에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소스데네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 고린도 교회는 물론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에베소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지도자로 부각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시기적인 해석으로 덧붙이면 ‘마르쿠스 안네오스 노바투스’(갈리오 총독의 원 이름) 총독이 아가야(고린도 지역)의 총독으로 부임한 시기를 주후 51년 7월 1일로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때 고린도 회당의 장으로 있었던 소스데네가 고린도전서라는 편지를 바울이 썼던 시기를 주후 53-55년으로 추정할 때 그의 회심의 연수를 불과 아무리 많이 잡아도 2-4년 정도로 산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신앙의 연수가 짧았던 소스데네가 당시 바울의 동역자들 중에 더 많이 바울을 도와 사역했던 측근 동역자들을 제치고 고린도전서의 공동 발신자로 발 돋음 한 이 보고를 교회 사역의 지도력은 서열이 아니라 영성임을 바울이 우리에게 깊이 새겨주고 있습니다.
  소스데네는 고린도 지역을 위시한 아가야 지역은 물론 에베소 지역을 기점으로 하는 소아시아 지역 그리스도 공동체에 있어서는 초짜요, 신출내기요, 젖비린내는 나는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의 위상에 비해 디모데와 실라는 바울에게 있어서 훨씬 더 영향력이 있는 큰 산과 같은 존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사라졌지만 그의 전임 회당장 그리스보는 분명 선배였을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소스데네에 비해서 기득권 무리였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기라성과 같은 사역자들을 제치고 소스데네는 오늘 바울과 더불어 고린도전서의 공동 발신자가 되는 영적 영예를 얻었습니다. 교회라는 공동체의 지도력은 그 어떤 것으로 대치되지 않습니다. 단 하나의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영성입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쓸 때 소아시아 공동체의 지체들과 동역자들 중에 소스데네 만큼 고린도교회에 영적 영향력을 줄만한 영성이 있는 자를 보지 못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문제투성이의 고린도교회에 영적인 도전과 교훈을 그리고 각성을 불러일으킬 적임자로 소스데네 만큼의 큰 인물이 없음을 인지하고 회심의 연수가 짧지만 그를 공동 발신자로 발탁하는 파격의 수를 둔 것입니다.
  사도행전 14장을 보면 바울과 바나바는 수리아 안디옥 교회로부터 선교사로 파송을 받고 제 1차 전도여행의 장도에 오르게 됩니다. 그들은 구브로를 거쳐 오늘날의 터키에 있는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함으로 적지 않은 회심자들을 생산해 내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의 반감을 사서 가는 곳마다 심각한 핍박으로 곤혹을 치르게 됩니다. 이고니온, 루스드라에서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루스드라에서의 핍박은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루스드라까지 파송된 유대인들의 충동질로 인해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거의 죽게 되는 지경의 린치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돌에 맞아 기절한 바울을 본 루스드라의 회심자들이 바울의 시신을 끌고 루스드라 성 밖으로 나가는 장면이 사도행전 14:1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마치 스데반 집사처럼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에 의해 바울은 돌에 맞아 거의 죽은 시체처럼 엄청난 데미지를 입었다는 보고입니다. 특별히 한 단어가 바울이 입은 치명상을 알게 해 주는데 ‘내치니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 ‘헤쉬론’은 마치 쓰레기 더미를 쓰레기 소각장에 갖다가 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내다 버린다’는 단어입니다. 바울은 그렇게 루스드라의 유대인들에 의해 폭력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심각한 린치를 당하는 이 장면에서 바나바가 보이지 않습니다. 제 1차 전도여행의 팀장이었던 바나바는 어린 신자였던 바울을 이끌어 주어야 할 리더였습니다. 그런데 루스드라 전도 사역의 현장에서 같이 있었던 바나바는 돌 한 개를 맞지 않았습니다. 성경에는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바울이 복음을 증거 할 때 바나바가 방관하고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바나바는 돌멩이 하나 맞지 않고 멀쩡할 수 있었으며 그 돌멩이는 바울만 맞아 거의 죽게 되었을까에 대한 충분한 개연성과 설득력이 있는 해석입니다.
  심각한 육체적 린치 앞에서 방관한 바나바, 그러나 순교의 각오를 갖고 복음을 루스드라 사람들에게 외쳤던 바울, 이 두 사람의 운명은 루스드라의 기사가 기록된 사도행전 14장을 끝으로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총회 이후로 바나바는 그 이름이 사도행전의 역사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바울의 사역은 사도행전이 끝나는 28장까지 하나님의 역시를 이룬 인물로 등장하는 것은 물론 13개의 서신서는 바울의 복음 증거의 간증입니다. 그러나 수리아 안디옥의 담임목사의 일을 감당했고, 제 1차 전도여행까지는 전도팀의 수장으로 앞서 나아갔던 바나바는 역사의 무대에서 탈락되고 마는 언 해피엔딩의 주인공으로 남겨졌습니다. 바나바의 내증과 오늘 본문의 소스데네를 통해 우리는 교회 공동체의 지도력은 영성에 근거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교회 사역의 원동력은 서열이 아니라 영성에 기초한다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질서는 그리고 사역의 기상도는 언제든지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수 있으며,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지도력의 순위는 영성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2) 교회 공동체는 절대로 차별 공동체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본문 1절에 바울은 소스데네를 형제라고 호칭했습니다. 소스데네를 형제라고 호칭한 것은 주종의 관계가 아닌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나 바울은,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라 나의 벗 소스데네와 함께 메시아이신 예수의 부르심과 보내심을 받았습니다.”(유진 피터슨 번역) 바울이 소스데네를 벗이라고 칭한 것도 파격이지만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은혜로운 장면이 바울은 자기만 부름을 받은 자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나와 나의 벗 소스데네는 함께 보내심과 부르심을 주님으로부터 받았다고 말합니다. 동등한 인격적 관계로 소스데네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은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교회는 어떤 이유로든 차별 공동체가 되어선 안 됩니다. 교회는 어떤 변명으로도 차별을 정당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이미 알았던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자기의 글에 비장한 의미를 남겨놓았습니다(야고보서 2:1-9절).
  우리 세인교회의 지도력의 기초는 영성이며, 어떤 일이 있어도 차별이 없는 공동체가 되게 합시다. 이것은 건강한 교회의 상식이여 기초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상식이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통하는 교회가 되게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