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6.09.18 지역 셀 사역2024-04-22 16:18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내 비석을 새긴다면 넣고 싶은 문구를 이야기 해보고 나누기.  

 
경배와 찬양 (WORSHOP)

● 옳은 길 따르라 (찬송가 516장)
● 뜻 없이 무릎 꿇는 (찬송가 460장)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제목 : 당신은 정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 본문 : 베드로전서 4:12-14
1) 베드로가 편지의 수신자 그리스도인들에게 불 시험을 감당할 준비를 시킬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사건 두 가지는 무엇이었고 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① AD 64년:
② AD 70년:
③ 그 이유: (설교 참고)  

2) 베드로가 성도들이 당하는 시험과 시련이 당연한 일이라고 확신한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①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차원에서:

② 정상의 비정상화라는 차원에서:  

3) 신앙인이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전혀 신앙인답지 않은 삶을 살았던 나를 철저하게 고발하자.
① 고발하기:
② 참회하기:
③ 결단하기:  

 
사역하기 (WORK)
1) 중보기도
● 환우들을 위한 특별 비상 기도회의 응답을 위하여
● 대학 입시를 앞둔 수험생들을 위하여
(명단:서혜린, 섭현우, 김현동, 민예은, 신요한, 이장규, 조재영, 차수빈, 김예준, 권나윤, 김민지)
● 지역 셀의 피 선교지를 위해
● 담임목사의 첫번째 서적의 선한승리를 위하여
● 가을 열린 모임의 준비와 승리를 위하여
● 부교역자 충원을 위한 중보
2) 헌금
3) 광고:
4) 폐회: 주기도  

 
설교요약 (SUMMARY)
9월 18일 주일 오후예배 설교
제목: 당신은 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본문: 베드로전서 4:12-14

  그리스도인으로 신실하게 사는 자가 당하는 비참한 고난과 악의 극점에 있는 자들의 승승장구라는 이 상반된 모순 앞에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들을 허용하셨는지에 대해 우리는 토마스 롱 교수의 말처럼 ‘겸손한 자세로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악의 근원에 대해 어느 정도 불가지론으로 남겨’ 둔 채 성경 속 내증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그 고민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12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시키려는 불같은 시련에 관하여 너희에게 어떤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도리어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니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이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큰 기쁨으로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베드로 사도는 이 편지의 수신자들을 향하여 ‘불같은 시련이 일어나면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또 본문 14절에서는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욕을 당하면 복이 있느니라. 이는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위에서 안식하고 계시기 때문이니라. 그들의 편에서는 그 분께서 비방을 당하시나 너희의 편에서는 영광을 받으시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욕을 당하면 복이 있을 것이라는 말까지 분명히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불같은 시험’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욕을 당할 것이라’고 말한 이유는 로마를 불태운 네로로 인해 시작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대 박해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죄가 없는 로마와 소아시아에 살고 있었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심각한 테러와 이유 없는 고난과 죽음을 당합니다. 그들에게 임한 시험은 불시험일 수 있습니다.
  영어성경 NRSV에서는 불 시험을 호된 시련으로 번역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시험은 분명히 AD 64년에 일어날 네로의 박해를 염두 해 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네로의 박해가 AD 64년 경 로마와 소아시아 지역을 강타했다면 그로부터 6년 뒤에는 팔레스타인의 중심인 예루살렘에 몰아닥친 재앙을 통해 당하는 시련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AD 70년 예루살렘 함락 사건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이 때 일어날 비극적인 일을 마태복음 24장과 마가복음 13장에서 익히 보아 알고 있습니다. 일련의 이런 재앙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임함을 베드로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이 고난을 준비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보기에는 이 두 사건은 불 시험이요, 호된 시련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당시 그리스도교 신앙공동체의 영적 리더였습니다. 베드로는 감히 닥치고 엄습할 시련에 대하여 본인 스스로도 참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 될 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험이 전무했던 시험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던 베드로는 그리스도교 신앙공동체의 지체들에게 미리 준비시켜야 함을 긴장하는 마음으로 각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시련을 준비시켜야할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었습니다.

⓵ 준비시키지 않으면 무너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⓶ 이 시련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그리스도 인하여 고난 받은 자가 받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12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시키려는 불같은 시련에 관하여 너희에게 어떤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도리어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니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이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큰 기쁨으로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베드로는, * 정상적인 것을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왜곡하는 일체의 기도에 넘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불같은 시련은 너무나 당연한 일임에 흔들리지 말라고 선언합니다.
  본문에 기록한 ‘이상히 여기지 말라’로 번역된 헬라어 ‘크세니제스데’는 문자적으로 육체를 마비시키는 것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오늘이라는 현장 안에서 올바른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참 고독하고 견디기 어려운 길입니다. 그러다보니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은 순교적 영성을 갖추지 않는 한 결코 살아가지 못하는 삶입니다.

  근래에 절대로 성서적이지 않고, 신학적이지도 않은 비정상의 일들이 정상의 일들을 마비시키고 있는 비극적인 것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교회의 본질, 성도로서 마지노선을 지켜 나아가야 할 일들이 마비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의 일들은 식물인간처럼 누워 잠자고 있고, 전혀 요동하지 않으려는 무기력에 빠져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에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다고 동의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옳다고 믿는 것에서 물러서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의 여정 안에서 정상적인 신앙의 정체성이란 하나님은 우리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조차도 통치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인간이 말하고 있는 이성적 잣대로 질문할 수 있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그 질문의 답에 대하여 항상 하나님의 선택이 정상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들을 위해 침묵을 통해 일하십니다. 다만 한 가지 물러서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단 한 번도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이라고 인정하신 적이 없고 반면, 정상적인 것이 비정상화되는 것을 인정하신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시키려는 불같은 시련에 관하여 너희에게 어떤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도리어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니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이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큰 기쁨으로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본문 12절). 베드로는 이렇게 강변한 뒤에 참 큰 위로의 메시지를 고난당하는 자들에게 선포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욕을 당하면 복이 있느니라 이는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위에서 안식하고 계시기 때문이니라. 그들의 편에서는 그 분께서 비방을 당하시나 너희의 편에서는 영광을 받으시느니라”(본문 14절).
  이것을 믿는 자가 정상적인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나아가는 자가 비정상의 시대에 정상을 사수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또 하루와 멀어진 날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은 점점 더 멀어져 갑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얼 채우며 살아가고 있는지 조차도 모릅니다. 비워가는 내 가슴 속인데도 우리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가 없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등바등 살고 있는 우리 인생인데 우리는 너무도 안타깝고 유감스럽게도 비정상적인 것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오늘 선포된 말씀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이 복되다는 단순한 교훈이 아닙니다. 오늘 교훈은 정상적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정상적으로 살고 있는 것을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