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단

제목평생 웬수의 지성적 영성을 탐하다.2024-09-20 09:28
작성자 Leve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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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참 좋은 친구인 차준희 목사를 평생 웬수라고 부릅니다. 이상히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단어는 허니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손이 오그라드는 분이 있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친구는 제게 너그럽지만, 제가 빈틈을 보이면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나무랍니다. 너그럽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저는 친구 앞에서 항상 긴장합니다. 하지만 매우 기분 좋은 긴장입니다. 적어도 제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친구는 글벗이자 길벗인 평생 웬수입니다.

2022, 김판임 교수께서 집필한 천재 예수, 그 생각을 탐하다-동연 간을 만났습니다. 김 교수께서 예수(저는 개인적으로 역사적 예수와 신앙적 그리스도라는 테제의 교집합으로서의 예수로 이해함)에 대해서 신약성서적 스펙트럼으로 접근하며 주해한 글을 읽다가 문자주의적으로 예수를 이해하려는 소극적 시도가 아닌, 성서가 말하려고 하는 정신(저자의 표현)에 입각하여 예수를 재해석하려 했던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동의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니 김 교수가 설정한 집필 도서의 책 제목, 천재 예수, 그 생각을 탐하다에 무릎을 치며 존경의 마음을 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친구가 신학교 교수로 사역할 시기가 이제 불과 2년여 남았습니다. 어제 페이스북으로 아주 오래전에 장밋빛 청사진을 갖고서 세간에 드러낸 예레미야 다시 보기는 친구의 역작이라고 말해도 결코 지나침이 없는 양서(良書)였는데, 이번 증보판 형식으로 다시 예레미야의 영성이라는 제하로 새물결 플러스를 통해 출간했다고 소개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아직 손에 넣지 못했지만 글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친구가 주장하고 제기한 예언서 예레미야에 대한 구약성서학적인 주해에 대해 이미 폭넓은 지식을 듣고 공부한 사람입니다. 그가 제기했던 성전 설교(6, 26)의 해제는 압권이었고, 특히 20:79절의 해제는 감동이었습니다.

파타하유혹또는 후리기‘(남의 것을 갑자기 빼앗거나 슬쩍 가지다.)를 뜻하고, ’하자크강간을 뜻한다. 이 두 단어가 나란히 사용되고 있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관계가 지니고 있는 복잡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즉 그것은 유혹의 달콤함강간의 난폭함을 나타낸다.” (차준희, 예레미야 다시 보기, 219)

이렇게 예레미야 자신을 강제적으로 압도한 야훼였는데도 자신에 대해 고난의 고삐를 멈추지 않는 야훼가 던진 미션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선포했던 예레미야가 다시 미션을 감당하겠다고 선언한 이 해제를 놓고 친구가 설정한 예레미야의 흔들림의 영성은 나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내가 이 책에 대해 주목하는 이유는 이런 예레미야의 영성을 도구 삼아 평생 신학교 교수로, 혹은 신학자들에게 흔치 않은 설교자로 산 자신에게 접목한 지성적 영성을 알기 때문입니다. 펜데믹이 한참이었던 시절, 사석에서 친구와 교제하면서 친구가 들려주었던 촌철살인을 제 심비(心碑)에 새겼던 기억이 오롯합니다.

이 목사, 목사와 신학교 교수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기도하는 삶이다. 나는 그것을 알기에 일정이 바쁘지만, 시간을 일부러 내서 출신교회에 나가 저녁 시간에 엎드린다. 이건 놓쳐서는 안 되는 목사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천착하며 실천한다.”

나는 친구가 갖고 있는 지성이 부럽습니다. 하지만 더 부러운 것은 그의 영성입니다. 신학교 교수의 직을 갖고 있는 이들 중에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부지기수임을 나는 압니다. 내가 평생 웬수인 친구를 존경하는 이유는 그는 지성적 영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몸부림친 영성의 소유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영성하면 박물관에 소장될 것으로 치부하는 시대가 되어 매우 유감이지만, 구약 전도사로 자신을 소개하며 살았던 친구의 평생 삶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은퇴를 앞둔 세월의 면전앞에 있는 차준희 교수가 갖고 전했던 지성적 영성의 진솔한 선한 영향력들이 제자와 후배들을 통해 열매 맺었고 또 맺고 있을 것을 나는 압니다. 그래서 이 책의 탄생을 누구보다 반기고 기뻐합니다. 그가 집필한 육십여 나무의 또 한 가지를 내린 예레미야의 영성에서 많은 열매가 주렁주렁 맺어지기를 화살기도 해봅니다.

 

(PS: 아직도 읽어야 할 책거리가 수없이 놓여 있는데 평생 웬수는 또 내게 짐을 내던졌다. 평생 웬수는 끝까지 평생 웬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