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래저래 죽일 죄인이다. “토마토 쥬스는 압축 병에 넣어서 한 달 보관 가능하지만 따면 열흘 안에 드셔야 합니다. 노란 뚜껑 작은 팩 2개는 전복죽으로 물 조금 넣으시고 해동해서 데워 드시면 됩니다. 작은 지퍼 백 4개는 강된장으로 냉동하셨다가 된장찌개로 드시면 됩니다. 작은 병은 볶음고추장입니다. 김치 볶음은 다른 나물보다 오래 보관이 가능합니다. 단호박은 깨끗이 씻은 거예요. 쪄서 드세요. 김은 반찬 없으실 때 굽기만 해도 될 것 같아서 보냈습니다. 목사님, 기도하고 있습니다. 강건하세요.” 아내가 투병 중인 친구 목사에게 보낸 메시지다. 주일부터 아내가 분주하게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인천 새결 교회 이상선 목사가 먹을 밑반찬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신학교에서 동문수학했던 친구, 나외는 신학의 결이 달랐기에 친구는 사역을 도시빈민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평생 달려왔다. 민초들과 함께 뒹굴며 울고 웃는 지난한 사역자로 서서 지난 세월, 한국의 갈릴리 사역을 마다하지 않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한 신실한 구도자인 이상선 목사가 투병 중이다. 어려서 수술한 심장 수술로 인해 언제나 생명의 위기를 느끼며 살아온 친구가 이제 이순을 넘어 노년의 삶으로 들어선 오늘, 너무 아프게도 남아 있는 건 육체의 나약함이다. 유전되는 것이 두려워 결혼도 포기한 친구, 유감스럽게도 온 장기의 연약함으로 인해 나날이 쇠약해져 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친구를 홀로 돌보던 어머님 권사님이 몇 주 전, 낙상하셔서 고관절이 골절되는 사고를 당했다. 극적으로 수술을 마쳤지만, 노령이기에 앞으로 재활이 녹록하지 않은 겹겹의 고난이 임한 상태다. 후일을 도모하는 것은 또 그다음 일이라고 해도 당장 급한 것은 친구 목사의 기본적 먹거리다. 어머님 권사님이 건강하셨을 때는 그럭저럭 비빌 언덕이었는데 이제 그마저도 어려워졌다. 젊은 시절, 함께 친하게 교제했기에 친구 목사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아는 아내가 드실 음식이 무엇인지 물어보라고 성화여서 아내가 고생할 것을 알았지만, 친구에게 물어 아내에게 전언해 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아내가 주일부터 음식 준비에 발 벗고 나섰다. 이런저런 음식을 정성스레 준비했다. 당뇨 합병증이 있기에 단 음식은 근처도 가지 말아야 하고, 심부전이 있어 짜고 매운 음식도 절대 금기라는 것을 알고 있는 아내가 온갖 지식을 동원하고, 유트브 짤의 도움도 받고 해서 밑반찬을 만들었다. 그리고 조리 방법, 먹는 방법을 몇 자 적어 친구에게 보냈다. 어제 친구를 만나 세인교회 지체들이 사랑으로 모은 작은 정성도 함께 전하고, 아내가 준비한 음식을 전했다. 친구가 울컥한다. 친구가 메시지를 보냈다. “보내주신 것을 정리하면서 정성을 실감했네. 꼭 그렇게 챙겨서 먹겠네.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더니(전화할 때마다 찬 걱정이시라) 사모님께 꼭 고마운 인사를 전해달라시네. 오늘 저녁 잘 먹었고, 잘 먹겠네. 고맙고 고마우이. 사모님께도.” 나도 메시지를 받고 울컥했다. 소망이 있다. 힘들겠지만, 친구가 나보다 먼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내가 새벽 예배 참석하기 위해 일어나면서 내게 툭 던진다. “뼈가 으스러질 것처럼 아파!” 나는 이래저래 죽일 죄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