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서울신학대학교에 입학해서 학부를 공부하던 20대 초반, 군에 다녀와 복학해 신대원에서 M-div 과정을 공부하던 20대 후반까지 학교에서 더 많이 불리던 이름은 제 이름이 아니라, 이강덕 목사 아들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양가감정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테죠. 부담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강덕 목사 아들이라는 이름을 때론 즐겼습니다. 아버지가 타 교단에서 사역하는 분이지만, 여전히 아버지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라는 교단에서도 나름 선한 영향력으로 회자되는 분이었기에 즐기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30대가 되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어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이제는 목사까지 된 오늘에 서서 제일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제가 속한 기독교대한성결교회에 소속된 목회자가 아니라, 타 교단 목회자라는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이강덕 목사라는 아버지가 타 교단에서 사역하고 계시지만, 여전히 성결을 외치는 목사로 부족하지 않게 지금도 여전히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여기저기에서 실감하고 있습니다. 타 교단에 있는데도 소위 말하는 아버지의 후광으로 인해 적지 않은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웃픈 이야기이지만 ‘아빠 찬스’를 쓰는 게 아니라, 너무 받았고 또 받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런데, 만에 하나 아버지가 제가 속한 교단의 목사였다면 저는 지금, 아주 교묘히 이강덕 목사라는 이름의 레떼르를 이용하며 맘껏 줄기는 아주 질 나쁜 목사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 뻔합니다. 하나님의 식을 붙드는 목사가 아니라, 아버지 식을 붙들고 놓지 않으려는 수준 이하의 목사로 즐기며 살고 있었을 테니까요. 제가 안수를 받기 전에 보내주신 편지를 마음에 담았습니다. 어떤 중요한 시간마다 제게 보내주신 아버지의 글들이 이제는 이요한 목사를 조각해 가는 잠언이 되고 있습니다. 그 글들은 아버지를 붙들지 않고, 하나님을 붙드는 아딧줄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많이 연약한 아들이지만, 하나님을 붙드는 목사가 되어 보렵니다. 아버지가 타 교단에서 사역하면서 제게 영적 후원자가 되어 주고 계신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어제 오랜만에 대면해서 만난 아들이 진중하게 들려준 고백이다. 사랑했던 교단을 떠나 교회를 개척하고 가장 힘든 시기였기에 가능하면 기회로 생각하고 pk의 자리를 멀리 떠날 호기로 충분히 삼을 수 있었던 아들이었지만, 신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뜻을 잘 만들어가며 성장해 가고 아들이 잘 성장해서 이제는 제법 목사티를 내며 신실한 목사가 되고 있음을 고백받고 눈물겹게 감사했다. 오늘 새벽 예배 시간에 아들이 하나님의 식을 철저히 그리고 더 치열하게 붙드는 신실한 목사로 살아내 주기를 엎드려 기도했다. 이제 결혼 1년이 지났는데 아들의 부족한 부분을 기꺼이 메워주고 있는 며느리에게 고맙고 또 고마웠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목사와 사모로 아들과 며느리가 계속 자라주기를 화살 기도하는 행복한 아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