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단

제목한 해의 반을 보내면서2024-06-29 07:53
작성자 Leve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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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부 신학자 성 어거스틴은 시간을 이렇게 정의했다.

시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객관적인 질서이며, 마음의 팽창이다.”(선한용, 시간과 영원-성 어거스틴에 있어서”, 성광문화사, 82)

그동안 많은 책이나 학자들을 통해 시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하려는 시도를 만났지만, 적어도 내겐 어거스틴이 말한 위 정의보다 더 적절한 시간에 대한 해석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어거스틴의 시간 정의를 최고의 정의로 새기고 있다. 나는 왜 이 정의에 천착할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객관적인 질서라는 문구에 열광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객관적인 질서라는 말에 동의하려면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시간의 선용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어거스틴의 정의 안에는 시간을 낭비하거나 막 사용하는 자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범죄자라는 말을 포함하고 있다는 말이다.

오늘은 2024년이라는 크로노스의 반을 보내는 주일이다. 1년의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난 6개월을 반추하면 여러 소회가 넘실거린다. 기억하고 싶은 일, 그 반대의 일, 울고 웃었던 삶의 내용들이 슬라이드처럼 스쳐 지나간다. 목회의 막바지 필드에 서 있는 목사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주어졌고, 주어지고 있는, 주어질 시간의 귀함이 얼마나 애틋하게 다가오는지 모른다. 주께서 맡겨주신 사람이 귀하고, 경험하게 된 일이 소중하고, 사역하고 있는 현장이 너무 감사하고, 지금 내가 만나는 모든 이가 소중하다.

내가 좋아하는 유대인 철학자 마틴 부버의 일침이 한 해의 반을 보내는 오늘, 다시금 내게 시금석으로 오롯이 다가오며 각인된다.

“‘와 마주 서 있다. 그러나 와의 직접적인 관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마틴 부버, 나와 너, 문예출판사, 111.)

세인 공동체를 맡아 하나님께서 맡기신 당신의 양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위임받은 지 15년이 흘렀다. 오늘은 그 시간 중에 또 한 해의 반을 보내는 날이다. 내게 허락된 한 날, 한 시간에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부버는 알려준다. ‘라는 또 다른 와 마주 서서 관망하지 말고 의 안으로 걸어 들어가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날이 되라고 말한다. 목회는 라는 존재가 라는 낯선 이의 안으로 들어가는 지난(持難)한 일이다. 더군다나 20246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은 라는 존재가 더 두터운 갑각으로 무장한 시대이기에,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은 녹록하지 않을뿐더러 두렵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한 해의 반을 보내는 오늘 나는 나름의 오기가 더 생겨 결기를 다진다. 그런 시대니까 안으로 더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오기 말이다.

그러기에 또 다른 한 해의 반 시간 도래하는 것에 대해 떨지 않으련다. 또 나에게 주어질 한 해의 반 시간 역시 하나님이 창조하신 객관의 질서이기에 임할 크로노스의 시간에 최선을 다해 하나님이 조각해 가시는 카이로스라는 시간의 감동을 만들어 하나님께 보고하고 싶다. 이게,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목회니까 감당하련다. 해서 오늘, 더 간절히 기도하고 싶다.

하나님, 전반기도 선방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후반기에는 더 기쁜 보고를 드릴 수 있도록 세인 공동체를 인도해 주옵소서.”

대한기독교나사렛 성결회 세인교회, 참 좋은 교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