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5일 수요예배 설교 (요한복음 27번째 강해) 본문: 요한복음 4:10〜15 제목: 목마름과 목마르지 않음 서론) 군사독재 정권 시절, 붓으로 저항한 저항시인 김지하는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시를 발표하여 세간을 뒤집어 놓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 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는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 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 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1980년에 대학에 입학한 저는 대한민국의 암울했던 그 시기를 몸소 몸으로 직접 경험한 세대였기에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이라는 이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던 아련한 그 시절의 여운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2025년, 내가 느끼는 아픔은 세상이 온통 캄캄함으로 뒤덮었는데도 불구하고 무통, 무감각이라는 질병에 빠져 있다는 점이 분명해 보인다는 아픔입니다. 이런 차제에 본문이 주는 경성의 메시지는 그 울림이 적지 않습니다. 본론) 예수께서 사마리아 수가 성에 들어가셨습니다. 지난 26번째 강해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주께서 대단히 의도적인 행보를 보이신 것입니다. 마침, 주께서 먼저 도착하신 야곱의 우물가에서 육체적 곤비함을 풀기 위해 쉬고 있었는데 그곳으로 한 여인이 물을 뜨기 위해 온 것입니다. 예상하신 대로 그녀를 기다리고 계셨던 주님은 여인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주님의 청을 받은 여인은 정색하며 출신 성분이 다른 남정네가 자기에게 물을 달라고 하자, 기분 나쁜 내색을 보이며 거절합니다. 9절입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이렇게 거절당한 주님은 포기하지 않고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지는 본문 10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주께서 선포하신 이 말씀의 진의는 이런 의미일 것입니다.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무지 때문에 내가 물을 달라고 한 청을 거절했다. 하지만 만에 하나, 네가 내가 누구인지를 자세히 알았다면 도리어 네가 나에게 물을 달라고 했을 것이고, 그러면 나는 네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여인에게 주께서 물을 달라는 청을 여인이 거절한 이유는 유대와 사마리아라는 두 지역의 적대관계라는 해묵은 고정관념이 한몫했기 때문임을 9절에서 분명히 제시합니다. 결국, 예수님은 여인이 가지고 있었던 해묵은 지역감정과 더불어 영적인 무지함을 깨닫게 해 주시면서 포기하지 않고 여인에게 권한 내용이 앞에서 언급한 10절입니다. 10절을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번역으로 다시 나누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네가 하나님의 후하심을 알고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내게 마실 물을 달라고 했을 것이고, 나는 네게 시원한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예수님과 하나님에 대한 무지함이 그녀로 하여금 예수님의 청을 거절한 이유임을 밝히신 것입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인은 예수께서 지적한 10절이 떨어지자마자,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고정관념, 그리고 주워들었던 풍월로 대항합니다. 11〜12절입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이 구절을 해석한 이재철 목사의 해제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재철 목사는 이 구절에 대한 주해를 아주 냉소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얼핏 보면 여인이 주님의 말씀을 믿고 백 퍼센트 수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정반대의 반어법입니다. ‘아니 세상에, 한번 먹고 평생 목마르지 않은 물이 있단 말인가? 그런 물이 있으면 한 번 보여나 주시오,’ 이런 비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철저한 부정이요, 모독이었습니다.” (이재철, 『요한과 더불어 Ⅱ』, 홍성사, 31쪽) 여인이 보인 반응은 고정관념에서 물러서지 않은 행보를 보였다고 이재철 목사는 해석했습니다. 이 목사의 의견을 수용한다면 자신이 배워 들었던 생각과 의지와 지식이 올바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가 꺾이는 것을 못 견뎌 하며 올바른 가르침으로 들어서지 않으려는 안타까운 자화상을 여인이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에 저항하는 여인을 향하여 주님은 그녀의 영혼 구원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며 그녀를 보듬는 주님의 일성이 14절에 담겨 있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인이 정색한 진짜 그런 물이 있으면 보여달라는 비아냥에 대해서 주님이 이렇게 끝 사랑의 언어를 던지셨습니다. “네가 마시고 싶은 그 물이 바로 나다. 나를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나를 믿어라.” 주님이 선언하신 위대한 구원자 선언을 들었던 여인은 이제 드디어 마음을 엽니다. 오늘 설교의 마지막 15절을 나눕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주님을 마음으로 영접한 여인의 태도는 2025년을 살아가는 그대와 내게 큰 교훈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어떤 교훈이 담겨 있습니까? ※ 기독교 신앙의 요체는 목말라하지 않는 무감각에서 목말라하는 감각으로 바뀌는 과정임을 알려줍니다. 수가 성에 물을 뜨러 온 여인의 영적 상태는 주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전혀 영혼의 곤비함을 수없이 경험했던 이였지만, 그것에 대한 자괴감, 고통스러워함이라고는 갖고 있지 않은 목말라하지 않던 무감각의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다시는 목마르지 않은 영원한 생명수인 예수님과의 전인격적인 교제를 나눈 여인은 그 생수를 반드시 먹겠다는 목마름의 상태로 변환된 것입니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남편이 6번째 남편인 여인의 삶을 추적해 보자면, 성경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 단언하기가 쉽지 않기는 하지만, 그녀의 인생 여정이 얼마나 곤비하고 힘들었을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런 그녀였기에 삶에 대해 이제는 거의 자포자기의 인생이라고 치부하였을 가능성이 농후한 사마리아 수가 성에서 만난 여인에게 주님은 새로운 삶의 고갱이를 던져줌으로써 새로운 삶이라는 희망을 노래하게 해준 것입니다. 이 삶의 변환은 단지 삶의 변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전혀 목마르지 않은 무통과 무감각의 자포자기 인생의 족적(足跡)들을 청산하고, 이제는 살아 있는 희망과 소망을 노래하는 감각하는 인생으로 전환을 부여해 준 엄청난 은총의 사건임을 알게 해주는 것이 오늘 주께서 여인에게 허락하신 은혜입니다. 무감각은 목말라하지 않게 하는 영혼의 암세포입니다. 감각함은 끊임없이 생수를 갈망하게 하는 영혼의 촉수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목말라하는 감각함의 은혜를 끊임없이 기도하고 추구해야 합니다. “기독교든 아니든/밖에서 어처구니없는 소동이지만/세상, 아름다운 세상은 전혀 변함이 없네” (본회퍼, 『옥중서신-저항과 복종』, 복 있는 사람, 101쪽) 본회퍼 목사의 『옥중서신』에 수록된 문장입니다. 저는 본회퍼 목사가 지녔던 이 치열하고 민감한 감각성이 너무 좋습니다. 히틀러 치하에 독일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예술, 스포츠, 심지어 종교까지 나치즘이라는 사탄의 광기라는 블랙홀에 빠져서 한 치 앞을 가눌 수 없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었습니다. 나치즘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새로운 빅브라더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었기에 그 누구도 저항하지 않고 복종하며 무감각해져 갔습니다. 하지만, 미친 운전자는 운전석에서 강제로라도 끄집어내야 한다는 사회 정의의 가치에 사로잡혀 있었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히틀러와 싸웠습니다. 결국, 게슈타포에 발각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순교를 당했지만, 그는 시대의 절망에 모두가 머리를 숙여야 한다고 압박하는 시대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본회퍼는 옥에 갇혀 있는 동안, 여러 편지를 남겼는데 순교 2년 전에 테겔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어느 날, 이 글을 남겨놓았습니다. “기독교든 아니든/밖에서 어처구니없는 소동이지만/세상, 아름다운 세상은 전혀 변함이 없네” 이 글말에서 느낄 수 있는 본회퍼 목사가 갖고 있었던 감각이 저를 흥분하게 합니다. 세상은 온통 만신창이이지만, 실망시키지 않는 영역, 나에게 희망을 노래하게 하는 영역인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감각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목마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언제나 실수가 없다는 것을 감각하며 되새기는 작업입니다. 목말라하지 않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에 대해서 무감각하기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에 등장하는 여인의 행로는 목말라하지 않음에서 목말라함으로 변환되었다는 점에서 감동을 줍니다. 시인은 일찍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시편 42:1〜2절 말씀을 묵상하겠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그리스도인이 누구입니까?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샘을 찾아 나서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교우들이 함께 위로해 주셔서 故 이종구 집사님의 장례 예배를 은혜중 예배를 마쳤습니다. 장례를 인도하기 위해 장례 예배 준비를 하는 어간, 제게 성령이 강력하게 역사하신 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고 이종구 집사님의 자녀손은 故 이정임 권사님의 기도로 세워지고 만들어졌다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닌, 후손들입니다. 하지만, 이후 저들이 이정임 권사님의 그렇게 간절했던 기도의 맥락에서 자꾸만 멀어져 가는 느낌을 지울 길이 없었는데, 이번에 장례를 준비하는 어간, 성령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고 예배 말씀을 증거해라. 네가 전하는 내 말씀 안에서 내가 역사할 것이다.” 장례 예배 내내, 손자들이 인지할 수 있는 말씀을 준비했고 또 전했습니다. 어제 충주로 김흥식 집사의 빙모상 조문을 다녀오는 동안 제가 탄 차에 임영애 권사께서 동승했습니다. 오고 가는 여정에서 제가 장례 예배를 인도하는 어간, 성령이 조명하신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전했습니다. 손자 중의 한 명이 말씀에 대한 치열한 은혜를 받았고, 그 말씀을 붙들고 살아갈 것을 재다짐했다는 전언을 받았습니다. 다시 재강조하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룹에 있는 모든 이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 승패가 목말라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구분되어 그 승패가 판이하게 갈린다는 것입니다, 전혀 목말라하지 않았던 여인은 이렇게 그의 이론에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11〜12절입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하지만 주님에게서 전인격적인 말씀을 접하고 난 여인의 영적 상태는 이렇게 번환되었습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5절) 결론) 사랑하는 세인 지체 여러분! 저는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목사님, 윤지 최종 합격했습니다. 기도해 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윤선 집사가 서울여자대학교 제10대 총장으로 피선되었다는 소식과 더불어 윤지의 임용고시 최종 합격 소식은 제게는 또 다른 목회 보람을 느끼게 해준 기쁜 소식인데, 오늘 그 보고를 받고 너무 행복했습니다. 일전에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한 이후, 이미혜 집사께서 제게 이렇게 기도 부탁을 했습니다. “목사님 오늘 초등 임용 1차 합격자 발표가 있었습니다. 윤지가ᆢ 다행히 합격해서 1월 8일과 9일 이틀에 걸쳐 2차 수업 실연과 심층 면접, 영어 수업 실연의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시험을 준비하며 윤지를 위한 기도는 늘 하나였습니다. 윤지가 하나님의 자녀로 소중한 어린 영혼들을 위로하며 그들을 돕는 진정한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기를 바라는 기도였습니다. 목사님 중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늘 힘 있는 말씀으로 그 안에 매몰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한 밤 되세요.” 이후, 아주 세밀하게 새벽에 엎드려 이미혜 집사의 중보 요청을 순종하며 엎드렸습니다. 윤지의 최종 합격 소식이 너무 행복하지만, 저는 줄곧 엎드릴 제목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건 윤지가 하나님의 자녀로 어린 영혼들을 위로하며 그들을 돕는 아름답고 하나님 보시기에 예쁜 교사로 거듭나는 최종 합격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일에 목말라하는 자는 이깁니다. 승리합니다. 목마름과 목말라하지 않음은 한 끈 차이가 아닙니다. 서로 좁혀지지 않는 최대 차이입니다. 주님을 향해 목말라하십시오. 시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시편 119:131절입니다.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사슴이 시냇물을/찾기에 갈급함같이/내 영혼이 주를 찾고자/주를 갈망합니다 사슴이 시냇물을/찾기에 갈급함같이/내 영혼이 주를 찾고자/주를 갈망합니다 주여 어찌합니까 사람들이 하는 말이/네 하나님이/어디 있느뇨 어디 있느뇨/내가 밤낮으로 눈물 흘리니 주여 어찌합니까/주여 어찌합니까 내 영혼아/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느냐/네가 어찌하여 불안하는고/너는 너의 하나님을 바라라 네 얼굴을 도우시는/네 하나님을/살아계시는 네 하나님을/너는 너의 하나님을 바라라 기도 제목) ① 2월이 승리하는 달이 되도록 ② 대한민국이 다시 정상의 나라가 되도록 ③ 2025년, 세인 공동체에 바른 부흥의 물꼬가 터지도록 ④ 2025년, 세인 교회의 교회학교가 부흥하게 하옵소서 ⑤ 상반기에는 부 교역자 청빙이 완료되도록 ⑥ 2025년, 담임목사의 목양이 승리하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