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5일 수요일 설교 (요한복음 24번째 강해) 제목: 이게 정상이다. 본문: 요한복음 3:22-30 서론)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지만, 그러나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본문 30절을 다시 합독하겠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영어 성경 Living Bible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He must become greater and greater, I must become less and less. (그는 점점 더 위대해져야 하고, 나는 점점 더 작아져야 한다.) 이 구절이 설교를 준비하는 제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 이유는 이 질문이 제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세례자 요한이 갖고 있었던 영성의 끝은 어디일까? 24절을 읽겠습니다.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이 말뜻이 무엇입니까? 세례자 요한은 태어나서 거의 그의 전부의 삶을 광야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시대의 가장 청렴한 예언자였습니다.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생활했고 약대 털 옷 이외에 어떠한 옷도 입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그의 외침은 영적인 카리스마가 있었고 그의 선포는 영적인 위엄이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의 편안한 종교 기득권에 함몰된 종교 지도자들을 향하여서 이렇게 불을 뿜었습니다. 마태복음 3:7절입니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무시무시한 독설이었지만, 상투적이지 않은 그의 메시지는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고, 무능하고 외식이 가득한 유대 종교에 고개를 젓던 유대 민중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이 때문에 그에게 나아와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영적인 바람몰이에 성공하여 세례요한은 당시 영적인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당시 영적 기상도로 접근해 볼 때, 세례요한은 위대한 선지자였고 심지어는 이 시대를 구원하기 위하여 나타난 그리스도로도 보일 정도였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이 등장을 하셨습니다. 본문 22절을 보십시오.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예수님이 누구입니까? 당시에 유대인들에게 전혀 인지도가 없었던 목수의 아들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이전에 바로 세례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은 피 세례자였습니다. 마가복음 1:9절은 이렇게 보고합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이제 조금 세밀하게 교통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세례요한의 인기가 천정부지로 올라가 있는 것이 유대 사회의 종교적 정서였던 시절, 예수께서도 세례 요한에게 와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사정이 이러면 보편적 논리로 유대 사회는 너무 당연하게 예수님은 세례요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래에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던 상황이었다는 말이 됩니다. 이것을 전제할 때, 본문 22〜23절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엿보입니다. 다시 22〜23절을 읽어봅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세례요한도 세례를 주고, 예수님도 세례를 주는 상황이 연출된 것입니다. 종교적 도의상, 예수님이 그 선을 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긴장감 100%입니다. 하지만 이런 긴장감을 더 심대하게 만드는 문제가 일어나고 있음을 본문 25〜26절이 독자인 우리에게 여지없이 보고합니다.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 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메시지』 번역으로 이 구절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침례의 본질을 두고 유대 지도자들과 논쟁을 벌였다.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했다. “랍비님, 요단강 건너편에서 선생님과 함께 있던 분을 아시지요? 선생님께서 증언하고 인정해 주신 분 말입니다. 그분이 이제는 우리와 경쟁하고 있습니다. 그분도 침례를 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우리에게로 오지 않고 다 그분에게로 갑니다.” 메시지 번역으로 읽어보니 아주 선명한 단어 하나가 눈에 띕니다. “경쟁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 제자들의 하소연이자 볼멘소리였습니다. 정서상 이해가 됩니다. 자기가 따르던 선생에 의해서 세례를 받은 자가 더 앞서가는 모양새이니 왜 아니 그러하겠습니까? 세례요한 제자들은 스승에게 무슨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비상 상황임을 알린 것입니다. 제자들의 볼멘소리를 들은 스승 세례요한은 자기를 위하고, 자기 공동체의 와해를 막기 위해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자문에 감사해야 하는 게 마땅합니다. 하지만 대책 마련을 요구한 제자들에게 세례요한이 던진 말은 충격적입니다. 오늘 본문 27〜30절을 마저 읽겠습니다.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내가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무슨 의미입니까? 스승 요한이 이렇게 반응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께로 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분은 하늘에서 보낸 분이시다. 그분은 신랑이시다. 나는 신랑의 친구에 불과하다. 결혼식에서 신랑이 주인공이 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친구인 나는 신랑을 축하하고 신랑이 말하는 말을 듣는 것으로 족하다.” 이런 어마어마한 멘트를 날린 세례요한의 피날레는 머리를 숙이게 하는 압권을 연출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본론) 본문 이해에 접근하면서 저는 우리 교우들과 아주 중요한 신앙인이 걸어야 하는 너무 당연하고 정상적인 삶의 태도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신앙인 즉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분명히 인식하는 사역자이어야 합니다. 세례를 받으려는 자들이 세례요한이 아니라 스승에게 세례를 받은 예수에게 몰리고 있다고 흥분하며 말하고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세례요한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내가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27〜28절)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신 예수께서 그리스도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얼마든지 마음먹기에 따라 자기를 그리스도라고 변질시킬 수 있는 충분한 조건과 상황이 만들어졌는데도, 세례요한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런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이었음에도 자신의 위치에서 조금도 이탈하지 않고 자기를 지켰습니다. 어떻게 이런 신분 상승, 취할 수 있는 종교적 권력의 성취라는 욕망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것일까요? 그는 자기를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의 앞에 태어나 그리스도 예수를 알리는 소리에 불과하다고 선언하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에서 이탈하지 않았기에 그는 시대적 유혹을 이길 수 있었고, 여자가 나은 자 중에 이보다 큰 이가 없다는 극찬을 예수님께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26:20〜25절을 소개합니다.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세족 목요일에 주께서 제자들에게 던진 폭탄 발언입니다. 이미 가롯 유다가 대제사장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주는 대가로 은 삼십을 받은 이후, 마지막 만찬에서 주님이 이를 알고 던진 경고입니다. 이 중에 있는 한 명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께서 선언하자 다락방 분위기는 대단히 싸늘해졌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나를 팔 자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게 더 좋았을 것이라는 극단적 저주를 선포한 주님의 말씀 때문에 긴장감 100%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 정도가 되었다면 자신의 실수와 죄를 깨닫고 주님께 이실직고함으로 용서를 빌어야 마땅한데 장본인 가롯 유다는 이렇게 맞섭니다.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전혀 자신이 행한 짓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는 영적 마비를 경험한 유다의 자가당착을 마태복음은 고발합니다.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자의 적나라한 작태를 보여주는 마태 기자의 이 단락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주께서 가롯 유다의 뻔뻔한 행태에 대해 이렇게 마침표를 찍으셨습니다. “네가 말하였도다.” 이윽고 성경은 가롯 유다의 최후를 이렇게 보고합니다. 마태복음 27:3〜5절입니다.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도 1:16〜19절에서 이렇게 가롯 유다의 최후를 놓치지 않고 고발합니다.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자기를 인식하지 못한 자의 비극적 종말을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교훈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싱어게인 Ⅲ』이라는 종편 예능에서 1위의 오른 홍이삭 형제가 마지막 경선에서 『바람의 노래』라는 곡으로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이전 경선에서 거의 1등을 굳힌 상태여서 이 마지막 경선도 큰 이변이 없으면 대상을 타는 것은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경선에서 예상치 못한 음 이탈을 범했고, 그는 1등의 영광을 놓칠 수 있는 위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심사위원은 물론 시청자들이 보여준 실시간 심사 점수의 결과, 압도적인 지지로 결국 1등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JTBC 뉴스룸에 게스트로 초대되어 앵커로부터 음 이탈에 대해서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답변했는데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실수 하나가 나오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실수가 연쇄작용이 있었습니다.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음 이탈을 하고 나니 내가 정작 어떤 것들을 놓쳤는지 그때야 생각이 났습니다.” “안일한 마음이 음 이탈로 이어졌다.” 저는 홍이삭 형제가 전한 이 말을 제 육비(肉碑)에 새겨놓았습니다. 나와 그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노예입니다. 이 명제와 이 신앙의 대헌장에서 영적으로 이탈하면 나는 언제든지 주님의 자리를 꿰차고 월권의 교만을 범할 수 있는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언제든지 내가 어떤 존재인지 망각할 수 있는 위험인자를 갖고 있는 연약한 자임을 긴장하며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은 주님이 주님 되심을 기뻐하였던 자입니다. 29절의 본문을 보십시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결혼 풍습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해하기가 어려운 말씀입니다. 유대의 결혼 의식은 이렇습니다. 낮에 찾아오는 하객들이 있습니다. 그 하객들을 대접하고 챙기는 몫은 신랑 친구의 몫입니다. 신랑을 대신하여 열심히 대접합니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신랑이 옵니다. 그러면 제일 먼저 달려가서 신랑을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도 바로 그 신랑의 친구가 하는 일이었습니다. 유대의 신랑의 친구들은 신랑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결혼식 날에는 기꺼이 들러리를 섭니다. 본문은 조금 더 신랑 친구들의 역할을 보고합니다. 이런 일 모두를 기뻐하는 것이 친구의 몫이라고 증언합니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신랑입니다. 결코 신랑의 친구가 아닙니다. 세례요한은 우리에게 신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그를 주인공인 주님으로 선포하며, 그분의 주님 되심에 참 기쁨을 감추지 못한 증인으로 나는 만족하다고 그의 제자들에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참 기쁨이 무엇입니까? 주님을 악용하여 한몫을 잡는 것입니까? 그런 자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일 수 있습니까?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수태 고지를 선언하며 알려준 이야기는 친척 언니인 엘리사벳이 생리가 끊어져 임신할 수 없는 나이였지만, 하나님의 주권적 택하심으로 은혜를 받아 임신해 6개월이 되었다는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확인차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친척 여동생의 방문을 받은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말한 내용이 누가복음 1:44절입니다.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무슨 말입니까? 세례요한이 태중에 있을 때, 앞으로 자기가 목숨 걸고 증언할 예수의 어머니가 찾아왔다는 것을 안 세례요한이 너무 기뻐하고 있다는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누가의 보고입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과장법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누가가 선포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이었을까요? 세례요한이 갖고 있었던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강조한 메시지이지 않겠습니까? 세례요한이 메시아의 탄생을 태중에서부터 기뻐했다는 메시지가 주는 울림이 큽니다. 세례요한은 주님의 주님 되심을 선포하기 위해 이 땅에 온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세인교회가 2025년에 나아갈 영적인 보폭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교회’입니다. 결국 세인 교회 교우들이 2025년에 디뎌야 할 신앙의 걸음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성도로 살아내기’입니다. 결론) 저는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부 교역자 없는 상태에서 청년 학생들이 이번 토요일, 주일에 동계 수련회를 갖게 됩니다. 영적 콘트롤 타워가 없는 상태에서 사역을 진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그러기에 젊은이들의 행보가 기특하기 짝이 없습니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두 번의 예배를 제가 인도해야 합니다. 젊은 부 교역자처럼 집회를 인도할 체력이 이제 제게는 없습니다. 집회를 어떻게 인도해야 하지? 고민 중인데 지난 주일에, 청년들이 집회 후에 나눌 나눔의 제목들을 홍보 가이드라인에 실어 제게 보여주었습니다. 나눔 질문이 이렇습니다. ①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② 당신은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③ 당신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요? ④ 교회에 왜 나와야 하나요? 영적으로 신앙심이 깊은 이가 보기에는 대단히 유치한 것처럼 보이는 질문이지만, 젊은이들에게는 성숙의 단계에 오르기까지, 인격적인 주님과의 만남을 경험하기까지 지속적으로 묻고 질문해야 하는 중차대한 내용입니다. 이 질문 내용을 받고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에 대한 진솔한 메시지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이 질문에 답해야 합니까? 이 질문에 대한 신실한 접근과 상투적이지 않은 인격적 반응이 결국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답하기 위해 한 가지를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정직한 고백을 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정직하게 행하면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게 되며 그것이 내 삶의 최고의 기쁨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는 점점 더 위대해져야 하고, 나는 점점 더 작아져야 한다.” (30절)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새 부대가 되게 하여 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겸손히 내 마음을 드립니다 나의 모든 것 받으소서 나의 맘 깨끗케 씻어 주사 주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기도 제목 ① 지역 셀 사역이 겸손한 가운데 잘 섬겨지게 하소서. ② 주일에 진행될 직원 수련회가 승리하게 하소서. ③ 2025년에 세인 교회 강단이 말씀이 흥왕하게 하소서 ④ 지역 셀에서 섬기는 피 선교지가 든든히 서가게 하옵소서. ⑤ 대한민국을 정상의 나라로 회복시켜 주옵소서. ⑥ 담임목사의 사역이 승리하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