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9일 수요일 성서 일과 묵상 왜 깨닫지 못했을까? 오늘의 성서 일과 시편 20편, 하박국 3:2-15, 누가복음 18:31-34 꽃물 (말씀 새기기) 누가복음 18:31-34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마중물 (말씀 묵상) 왜 제자들은 주님이 지실 십자가 고난에 대해서 깨닫지 못했을까? 학자마다 자기들의 이념적, 신학적 성향의 차이로 인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조금은 다르다. 진보적 성향의 학자들은 주님의 정체성이 정치적 해방을 주시기 위해 온 예수가 성과 없이 무의미하게 죽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인정할 수 없었기에 그 말 자체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이해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논리로 해석한다. 하지만 복음주의 권에 있는 보수적 신학자들의 개진은 주님이 선포하신 십자가 수난의 의미를 영적으로 무지했기에 알 수가 없었다고 해석한다. 나는 후자에 동의한다. 아직은 십자가 사건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성적인 논리만을 추구하던 제자들이 알 리 없었다. 하나님의 사역과 계획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없이는 해석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사건이다. 십자가 구속의 은혜는 내 영적 스펙트럼이 열려야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다. 나는 광신을 거부한다. 나는 맹신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모두가 신비이다. 신비라는 말의 해석은 이성과 논리로 접근할 때 이해할 수 없는 게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이라는 말을 전제함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기도한다. “하나님, 하나님의 놀라운 신비를 알 수 있도록 내 영을 주님의 시각으로 바꾸어 주옵소서.” 사정이 이러하기에 긴장할 수밖에 없다. 영적 스펙트럼이 주님에게로 향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조명을 경험할 수 없기에 말이다. 두레박 (질문) 나 역시 주님의 일하심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양보할 걸 양보하게 하옵소서. 주님이 내게 허락하신 신비로운 사역을 이해하지 못하는 영적 무능함과는 양보하지 않고 싸우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주의 말씀과 일하심에 무지하지 않도록 영의 세계에 민감하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사순절 36번째 날입니다. 이상선 목사의 투병 생활이 선한 끝을 보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