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일 수요일 성서 일과 묵상 무리인가? 제자인가? 오늘의 성서 일과 시편 53편, 열왕기하 4:1-7, 누가복음 9:10-17 꽃물 (말씀 새기기) 누가복음 9:10-11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가셨으나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마중물 (말씀 묵상) 누가복음 9:1-6절에는 열두 제자들을 파송하신 주님의 사역이 기록되었고, 오늘 성서 일과는 제자들이 파송 받은 이후 사역을 감당한 예수께서 행하셨던 이적들을 보인 것을 시사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눅 9:6) 이윽고 사역을 성공적으로 마친 제자들이 예수께로 돌아와서 선교 보고를 했다. 주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벳세다로 이동하신 뒤에 그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다고 누가는 9;12-17절에서 보고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주목할 내용이 발견된다.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무리(無理)들은 제자들의 사역 승리와 그 제자들을 데리고 벳세다로 동선을 옮긴 예수의 이동 노선을 이미 빠삭하게 알고 그곳까지 따라왔다고 누가는 세밀하게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내가 성서 일과에 주목한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다. 누가는 오늘 성서 일과에서 단어를 구별해 사용하고 있다. 선교 사역에 직접 참여하여 주님의 권능을 몸소 감당했던 이들을 ‘제자’ 즉 ‘마세타스’(μαθητὰς)에서 ‘사도’ 즉 ‘아포스톨로이’(ἀπόστολοι)로 이름을 변경해 지칭했다. 물론 ‘마쎄테스’나 ‘아포스톨로스’는 그 의미에 있어서 큰 차이는 없지만, 그럼에도 증인(마쎄테스) 정도의 신분이었던 제자들이 이제는 ‘보냄을 받은 자’(아포스톨로스)로 상승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또 한 부류를 누가는 그대로 놔두었다. ‘무리’ 즉 오합지졸을 뜻하는 ‘오클로이’(ὄχλοι)들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들과 벳세다로 옮기는 동선에 대해 빠삭하게 꿰뚫고 있었다. 누가는 無理들이 이렇게 한 이유에 대해 예수를 알았기 때문이라고 표현했다. ‘無理’라는 단어는 리(理)가 없는(無) 자들이다. ‘理’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리스도 되심에 대한 도(道)를 믿는 거다. 理를 믿는 것과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믿는 것과 아는 것은 똑같지 않다. ‘제자’ 즉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믿는 이들이며 이런 이들에게 주님의 권능은 임한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그리스도 되심을 아는 자들은 따르기만 한다. 그들에게는 주님의 권능이 임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그들은 끝까지 無理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무리로 살 건가? 아니면 제자 즉 사도로 살 것인가는 그리스도의 그리스도 되심에 대한 믿음으로 결정된다. 오늘 성서 일과는 내 신앙의 진면 교사로 삼을 울림 그 자체다. 오늘 아침, 오래전에 읽었던 이 문장이 오롯이 나를 타격한다. “팬(무리)은 귀에 즐거운 싸구려 복음에 혹한다. 반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전부를 잃을 수 있다. 그래도 따르겠는가?” (카일 아이들먼, 『NOT A FAN』, 84-85쪽) 두레박 (질문) 나는 무리인가? 제자인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존귀하신 하나님, 사순절 29번째 날, 제자로 서서 내 삶의 광야, 벳세다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그래도 제자가 되자. 제자의 길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영적으로 민감하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사순절 29번째 날입니다. 이번 주간, 이 나라가 아프지 않게 하옵소서. 결코 다시는 주님 나라의 기초를 세우고 있는 공의와 정의가 무너지지 않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