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5일 금요일 성서 일과 묵상 나는 하나님이 주목하는 소수인가? 오늘의 성서 일과 시편 126편, 예레미야 26:12-24, 히브리서 7:11-22, 시편 34:1-8, 느헤미야 1:1-11 꽃물 (말씀 새기기) 예레미야 26:24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손이 예레미야를 도와주어 그를 백성의 손에 내어 주지 아니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마중물 (말씀 묵상) 예레미야 26장은 7장과 더불어 이어지는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와 같은 맥이다. 예레미야는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서 야훼의 경고를 전한다. 남 유다가 바라고 있는 희망과는 정반대의 소리였다. 주전 701년 일어났던 노도와 같은 앗수르의 공격에도 예루살렘은 함락되지 않았다. 아마도 예루살렘 도성의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대한 신성시에 함몰되어 있기에 충분한 정황이다. 누구도 함락할 수 없는 마치 여리고성과 같은 난공불락의 도시라고 굳건히 믿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예레미야의 독설은 양보가 없었다. 야훼의 지시,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엇나간 예루살렘을 실로처럼 황폐하게 하실 하나님을 선포했고 희망의 여백을 잘랐다. 사정이 이러니 당시 길 예언자 뿐이었던 예루살렘 성전 종교의 지도자들이 그를 그냥 놔둘리 없다. 예레미야는 반드시 죽여야 할 불순분자이자 요주의 인물이었고 반역자이기도 했다. 우리야도 이런 맥락에서 죽임을 당했기에 예레미야의 운명도 매일반 신세였다. 하지만 오늘 성서 일과는 예레미야가 극적으로 기득권 종교지도자, 정치 지도자들의 손에 의해 유린되지 않고 살아남았음을 보고한다. 예레미야를 살린 장본인은 예루살렘 성에 있었던 장로와 고관, 그리고 사반 가문 출신의 아히김이 그 주인공들이었다. 이들은 다수와 대세가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대세, 다수가 아닌 이들을 사용하셔서 예레미야를 보호하셨다. 아주 가끔, 한국교회를 향한 우울한 전망에 기죽어 있을 때면, 야훼께서 오늘 성서 일과와 같은 메시지로 나를 위로하며 격려하신다. 예레미야의 사람들은 다수가 아니었다. 대세도 아니었다. 즉 기득권 세력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보다 밑바닥 인생이었고, 비주류였고, 대세에서 밀려난 소외 그룹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일하셨다. 내 사랑하는 한국교회를 영적인 창조적 소수들을 택해 일하실 것을 여전히 믿기에 나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께 붙들려 있는 소수의 하나님이시다. 두레박 (질문) 나는 창조적인 소수의 영적 사람인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대세를 탐하지 않게 하옵소서. 영적으로 바로 선 창조적 소수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길 예언자가 아닌 흉 예언자로 서자, 그 길이 외롭고 힘든 일이지만 사수하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우리 세인 교회가 시대의 빛이 되게 하시고 힘 있는 자들의 논리에 굴종하지 않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