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
육십 평생을 살면서 우울감이라는 단어에 그리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교우들 중에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성도가 있으면 대학원에서 전공한 목회상담학적인 지식과 차원에서 접근하려고 했고, 최대 가장 상식적인 부분에서만 그들의 아픔을 들어주려고 했지, 피부로 실감할 정도의 절절함이 제게 없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입니다, 지난 주간, 이런 표면적인 경험을 보란 듯이 뒤집어엎는 시간시간을 경험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면 극단의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실, 제천 지역에 코로나 19에 희생되고 있는 환자가 이렇게 급격히 늘지 가히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지인들에게 언제나 제천은 청정지역이라고 너스레를 떨 줄만 알았지 이런 재앙이 내가 살고 있는 제천에 임하리라고는 1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고백이 정직한 고백입니다. 28일 오후 2시 현재 제천 지역에 37명이라는 숫자의 코로나 19 피해자가 생겼다는 보도를 듣고 교우 중에 가장 일선에서 수고의 땀을 흘리고 있는 민정순 집사님께 전화를 넣었습니다. 혹시나 모를 가장 위험한 현장에서 땀 흘리고 있는 지체를 격려하고 위로할 심정으로. 들려오는 집사님의 목소리가 힘이 들기는 해 보였지만, 도리어 종을 걱정하는 집사님의 애틋함이 느껴져 울컥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절대로 코로나 19가 집사님을 공격하지 못하기를 화살 기도했습니다.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서 상당히 많은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는 소식도 우울하기는 매일반이지만, 제천은 소도시이기에 그 민감도가 훨씬 더 한 예민함이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번 주는 수능 시험을 앞두고 있는 아이들까지 있어,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는 게 사실입니다. 이런 저런 목양의 생각에 몰두하다보니 아내는 일주일 내내 불면증과 담 증세가 악화되어 육체적으로 힘든 한 주간을 보냈고 저 또한 생애 처음으로 우울감을 경험하는 힘든 한 주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1,2차 쇼크 때보다 3차 쇼크는 훨씬 타격의 강도가 심한 게 사실입니다. 제천에 엄습한 코로나 괴물 때문일 겁니다. 남의 일처럼 느껴졌던 것이 실생활의 가장 가까운 지근거리에서 마치 독사가 혀를 날름이며 똬리를 틀고 있는 서늘함이 느껴져서인지 오싹하기까지 합니다. 해서 무방비로 당하고만 있을 수 없어 더 긴장하며 엎드리고 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많이 무겁고 힘든 시간이지만, 분명히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유대인들이 외쳤던 격언처럼 분명히 이 고통의 시간이 우리들 곁에서 또 지나갈 것을 저 역시 믿습니다. 조금만 더 인내하고 참아내십시다. 이겨내십시다. 이 땅에 오실 아기 예수께서 이 평강의 믿음을 내려주시기를 앙망해 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5-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