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3일 주일 오전 예배 (히브리서 강해 1) 제목: 히브리서를 엽니다. 본문: 히브리서 9:12 서론) 오늘부터 시작하는 히브리서 여행에 하나님의 은혜가 녹아들기를 바라고 교우들은 영적인 힘을 얻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말라기 예언서의 한 구절을 소개하며 설교를 시작합니다. 1:2절 전반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말리기 시대에 포로 귀환 공동체가 하나님께 시비 거는 것을 예언자가 고발하는 장면입니다. 오늘의 말로 편하게 바꾸어 보겠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고요? 웃기지 마세요. 언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했는데요. 증거를 대 보세요. 증거를!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공동체가 왜 이렇게 하나님에 대하여 반항조로 바뀌었을까요? 한영신대 정석규 교수의 해석을 소개하겠습니다. “말라기서는 제 2성전이 재건된 이후부터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종교와 사회적인 개혁(주전 450년 경)을 일으키기 전까지의 시대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면 메시아 왕국이 올 것이라는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이 성전이 재건된 지(주전 515년) 수십 년이 지나도 성취되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좌절하고 신앙적으로, 도덕적으로 부패해져 갔다. 이러한 사회적, 신앙적 문제가 만연한 때가 말라기 시대였다.”(정석규, “구조로 읽는 말라기”, 프리칭 아카데미, p,19) 정 교수의 이 글을 읽다가 아주 묘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의 항의는 정당한 것이 아닌가! 약속했던 예언자의 말이 성취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쾌한 감정으로 할 수 있는 항거를 이스라엘이 행한 것이라면 말라기 시대의 항의는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코로나 19의 공격이 시작되고 1년 10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천재지변과도 같은 재앙이 국가는 물론 우리 교회 공동체에도 임했습니다. 지난 1년 10개월의 펜데믹은 너무나 많은 것을 교회 공동체와 그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안겼습니다. 세 종류의 부류들이 파생되었습니다. ① 펜데믹의 공포 속에서 흔들리는 신앙의 체계를 다잡이 하고 더 성숙한 믿음으로 달려온 성도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② 1년 10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긍정의 변화나 나아짐이 보이지 않아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하여 의심하고 회의하며 나락으로 빠진 퇴보된 신자도 있습니다. 마치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자들처럼 말입니다. ③ 펜데믹 이전에도 별로 신앙이 없었던 자들이었는데 펜데믹으로 인해 더 상태가 나빠진 불신앙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졌습니다. 펜데믹 상황이 길어지는 상황에 직면한 저로서는 현장 목회자로 깊은 고민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①번 지체들이야 목회자가 무슨 염려가 있겠습니까? 문제는 ②③번 해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목양의 방향성입니다. 어떻게 이해를 하며 목회를 해야 하는 것인가? 정석규 교수의 말라기 주석서의 말대로 ②③번에 해당하는 신자들도 보듬어야 하는 것이 목회자의 삶인데 저들의 반항은 이유 있는 반항이라고 수용하고 반응해야 하는 것인가? 이것에 대하여 답해야 하는 것이 목회자의 사명입니다. 어제 이 일로 인해 차준희 교수와 오랜 시간 통화를 하며 속내를 상의했습니다. ②③ 신자들에 대한 목회자 사역의 출구가 무엇인가를 놓고 친구의 진정성이 있는 충고를 들었습니다. 친구는 ②③에 해당하는 신자들에 대해 포용력을 발휘해야 함을 제게 제시했습니다. 신학교 교수의 통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목회자인 내가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는가에 답을 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제부터 히브리서 이야기를 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②③번에 해당하는 신자들에 대한 제 답이 히브리서 안에 담겨 있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본론) 보스턴 대학의 구약교수인 다니엘 J. 해링턴 박사는 히브리서의 저작 연대와 글의 수신 대상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히브리서는 헬라 유대교 출신의 그리스도인이 1세기 60년대 로마에 있는 가정교회에 써 보낸 설교로 본다.” (다니엘 J. 해링턴, “최근 히브리서 연구 동향”, CLC, p,103) 주후 60년대 로마에 있는 가정교회라는 정의를 조금 부연하여 설명하겠습니다. 주후 60년대라면 로마는 대 혼란의 소용돌이가 몰아칠 때임이 분명합니다. 역사는 네로의 재위 기간을 주후 54년-68년으로 기록합니다. 로마의 대 화제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64년 7월 18일-19일에 걸친 밤이었습니다. 시오미 나나미가 로마의 대 화재 사건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64년 7월 18일-19일에 걸친 밤, 대경기장 관중석 밑에 들어차 있는 가게에서 일어난 불은 마침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팔라티노 언덕과 첼리오 언덕으로 번졌다. 여름철이면 로마에서는 자주 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시로코라는 남서풍이 맹위를 떨친다. 이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평소에는 서늘한 서풍이 부는 로마 시가지도 순식간에 기온이 올라가 견디기 어려워진다. (중략) 맹렬한 불길은 상류층과 하층민을 구별하지 않았다.” (시오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7-악명 높은 황제들“, 한길사,p,542.) 이렇게 자연적 재해였던 로마의 대화재가 로마시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자 정치적인 위기에 봉착한 네로는 당시 가장 나약했던 소수의 그룹이었던 기독교인들이 로마를 전복하려는 불온한 사상으로 방화를 했다고 누명을 씌우게 되었고, 이로 인해 200-300명이 떼죽음을 당했는데 그때의 순교의 모습을 시오미 나나미는 이렇게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일부는 야수의 모피를 뒤집어쓰고 들개 떼에 물려 죽었다. 다른 이들은 로마 시대의 일반적인 처형법인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 나머지는 밤의 구경거리로 남겨졌다. 땅에 박은 말뚝에 한 사람씩 묶은 다음, 산채로 불을 붙이는 것이었다. 활활 타오르는 인간 기둥들이 관중석에서 마른침을 삼키는 시민들의 얼굴을 비추었다.” (위의 책, p,539.) 바로 이 시기에 히브리서는 그 로마에 있었던 그리스도인들을 주 대상으로 쓰여 졌는데 이 글은 편지가 아니라 설교문의 형식이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왜 이 설교문이 그들에게 필요했을까요? 지금까지 이야기 했던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로마에 있었던 그리스도인들이 주후 60년대에 상당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주목할 것은 로마에 살고 있었던 기독교인들에게는 이런 시련이 닥쳤는데 유대인들은 예외였다는 점입니다. 유대인들은 로마에 있는 이방 종교인들 중에 신자의 분포도도 꽤 되는 집단이었고, 네로의 후처였던 포파이아 사비나가 유대교로 개종했기에 건드릴 수 없는 종교 세력이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상당수 로마의 기독교인들은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있었음을 히브리서에서 보고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런 난맥의 영적 상태를 바로 잡기 위해 히브리서를 집필했고 대상자들에게 설교로 권한 작품이 바로 히브리서라는 말입니다. 에스라 성경대학교 대학원의 양용의 교수는 이렇게 히브리서 저자의 고민을 에둘러 소개합니다. “그들은(로마에 있었던 ②③에 해당하는 로마에 살고 있었던 그리스도인) 복음을 예수님께 직접 들었던 자들로부터 전해 들음으로써 믿음에 이른 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구원을 등한히 여기고 복음에 대한 헌신이 약화되어 가는 위험에 빠져 들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 중 어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서, 구원의 길에서 떨어져 나가는 위기에 봉착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사실 그들이 신앙적 삶의 실천을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성도들을 섬김으로써 형제에 대한 자신들의 사랑을 증명해 보이던 자들이었다. 이들은 태동 단계부터 고난에 직면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고난을 잘 견뎌냈을 뿐 아니라, 자신들보다 더 큰 고난을 당하는 자들을 동정하였고, 또한 자신들의 재산을 빼앗기는 것까지도 기꺼이 감수했었다. 하지만 이런 영광스러운 신앙의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영적으로 둔감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양용의, “위기에 처한 교회에 주는 간곡한 권면-히브리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성서유니온, 2019,pp,28-29) 그렇다면 그림이 보이지 않습니까? 히브리서 설교를 들어야 할 대상자가 오늘 펜데믹 상황에 따라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 자들이나 거의 대동소이한 영적 상태라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오늘 저는 히브리서를 여는 첫 시간, 이런 질문을 던짐으로 히브리서 여행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 왜 히브리서를 2021년에 읽어야 합니까? 히브리서 안에 무너진 신앙의 다리를 다시 이을 수 있는 비밀이 있기 때문입니다. 총 13장으로 이루어진 히브리서 강해를 마칠 때가 되면 코로나 19를 통해 적지 않게 흔들린 내 영성을 되찾을 수 있음을 믿기에 히브리서를 읽어야 합니다. 히브리서를 읽는 동안에 요동했던 내 신앙의 터가 다시 견고해 질 수 있는 내공이 히브리서 안에 있음을 믿고 히브리서에 집중해 주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를 여행하는 동안 나의 사랑하는 주군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모든 문제의 마스터키임을 인지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주일학교 시절부터 교회에 다니는 착실한 어린이였습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시절에 자기 정체성에 대한 나름대로의 깨어남 때문에 한 동안 신앙의 침체기가 있었습니다. 이 침체기의 극점은 대학 1학년 때였습니다. 신앙의 반감, 신앙인들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으로 인한 실망감, 교회 목회자의 부정직함 등등으로 교회의 테두리를 돌면서 엉망진창의 신앙으로 대학 1학년 시절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세속적인 일들을 서슴없이 자행했고, 신앙인으로는 해서는 안 되는 일도 경험하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신앙의 정수로 나가지 못한 것을 타인에게 돌리는 비겁한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원인은 타인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구원의 확신이 없었던 제게 있었던 것인데도 남 탓으로 돌리려고 무던 애를 쓴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교회에서 교사의 직을 감당하고, 성가대로 봉사하고, 청년회에서도 굵직한 직책을 맡아 사역하는 저는 출신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주목해 보는 신앙 좋은 청년이었습니다. 실상은 아무 것도 없는 빈껍데기 같은 명목적 그리스도인이었던 것입니다.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1981년 7월, 중등부 교사의 직을 갖고 여름수련회 교사로 참석한 저는 그 수련회에서 참으로 많은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아이들의 영적 체험을 피부로 느끼면서, 교사 동료들의 뜨거운 신앙적 체험 등등을 눈으로 경험하면서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되었고, 신앙의 출발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교회에 돌아왔습니다. 그 다음 달, 8월에 하나님께 드린 비장한 서원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일주일간 교회에서 철야를 하면서 기도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셨다는 확신을 주십시오. 하나님, 이 확신이 없이 신앙생활은 수박 겉핥기입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하는 의미가 없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임하면 영문학을 포기하고 신학을 하겠습니다. 그러나 제게 구원의 확신이 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기에 교회를 떠나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일주일 동안 서원 철야기도를 제게는 대단히 중요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한지 4일이 되던 목요일 오후 4시 15분 즈음, 지하기도실에서 기도하는 어간, 히브리서를 읽게 되었습니다. 당시 히브리서가 도대체 무슨 뜻인지를 1도 모르는 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성경 읽기를 진행하던 목요일에 히브리서 9장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9:12절을 읽는데 성경에 기록된 그 구절이 대문짝만한 활자가 되어 제게 크게 보였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이 구절은 구약성경의 제사법을 전 이해하지 않으면 도대체 무슨 뜻인지를 알 수 없는 구절입니다. 저는 당시 구약의 제사법이 무엇인지 모르는 무식한 청년이었습니다. 주워들은 풍월로 제사장이 죄를 용서받기 위해 동물들을 죽인다는 아주 기초적인 지식만 알고 있을 뿐, 9:12절에 대해서는 전혀 선지식이 없는 무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오후 4시 15분 즈음, 이 구절을 읽는 데 제게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강덕아, 아주 옛날에는 네 죄를 씻음 받으려면 제사장들이 성소로 들어가서 제물을 잡고, 1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그 제물의 피를 뿌리기 위해 지성소에 들어가야 했단다. 아들아, 그런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단다. 내가 너를 위해 보내준 아들 예수가 십자가라는 성소에서 피를 흘렸단다. 그때 흘린 피는 바로 너의 죄를 위해 흘린 보혈의 피란다. 내 아들이 피를 흘리면서 십자가에서 죽었던 바로 그 때, 내가 너의 과거, 현재, 미래에 지었던 그리고 지을 죄까지 용서하였단다. 그러므로 너는 죄 사함을 받은 내 백성이란다.” 지금 문장으로 기록하여 교우들에게 전해드린 1981년 8월 20일 오후 4시 15분 즈음의 이 엔카운터 사건은 제게는 요한웨슬리가 경험한 1738년 5월 24일의 성령세례 사건인 올더스케이트 사건이요, 1739년 1월 1일 패터레인에서 경험한 성령 충만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적어도 제게 있어서 히브리서 9:12절은 나를 거듭나게 했던 신비로운 주님의 일하심이었고, 이후 목사 된 지금도 수없이 많은 목회의 위기 속에서도 나를 최후의 보루로 지탱대가 되어준 레마입니다. 정확히 40년 만에 나를 쳐서 복종하게 하셨던 말씀, 검게 그을린 마른 장작나무 같은 이강덕 목사를 오늘까지 사역자로 만들어준 말씀이 수록되어 있는 히브리서를 오늘 주일부터 열었습니다. 나는 펜데믹 1년 10개월 기간 동안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하여 의심하고 회의하여 영적 침체의 나락으로 빠진 퇴보된 신자들과 펜데믹 이전에도 별로 신앙으로 살지 않았기에 신앙의 상태가 더 나빠진 불신앙적인 그리스도인들인 ②③에 해당하는 일체의 신자들이 히브리서 강해를 통해 올더스케이트의 현장을 경험하는 장이 되기를 소망하고 패터레인의 은혜가 떨어지는 현장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결론) 저는 이제 히브리서 첫 번째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히브리서는 신약성경에서 가장 활기차고 도전적인 저작 가운데 하나다. 우리에게 조금 생소한 개념을 종종 사용해서 사람들은 히브리서가 약간 어렵다고 느낀다. 하지만 새 친구를 만날 때마다 그런 것처럼 히브리서를 알아 가면, 이 글이 어제의 교회와 마찬가지로 오늘과 내일의 교회에도 뼈저리게 와 닿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흥미와 즐거움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톰 라이트, “모든 사람을 위한 히브리서”, IVP 간,p,13.) 세인트루이스 대학교의 톰 라이트 교수의 권면입니다. 사랑하는 세인 지체 여러분! 이 강해가 끝날 때 즈음이 되면 위드 코로나의 시대가 올 것입니다. 100% 완벽하지는 않지만 코로나 이전의 일상을 어느 정도 회복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히브리서를 읽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우리 세인 교회가 히브리서 강해로 온전히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부족한 사람이 히브리서를 펴고(opening), 읽고(reading), 해석하고(interpreting), 깨닫게 하면(awakening) 우리 교우들은 아멘, 아멘하며 울 수(crying)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울고 난 뒤에는 은혜로 인해 기뻐하는(rejoicing) 잔치를 벌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나 지치고 내 영혼 연약할 때 근심 속에 내 마음 무거워 주 오셔서 함께 하실 때까지 나 잠잠히 주님을 기다려 열망 없는 그런 삶은 없으리 끊임없이 고동치는 가슴 주 오셔서 경이로 날 채우고 영원한 삶 나에게 주시네 날 세우사 저 산에 우뚝 서리 날 세우사 풍랑 가운데도 함께 하심 나 강하게 하네 날 세우사 모든 것 할 수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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