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일 수요일 성서 일과 묵상 내게는 날카롭게, 타인에게는 너그럽게 오늘의 성서 일과 시편 9:1-14, 욥기 16:1-21, 마태복음 24:45-51 꽃물 (말씀 새기기) 욥기 16:2-4 이런 말은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 헛된 말이 어찌 끝이 있으랴 네가 무엇에 자극을 받아 이같이 대답하는가 나도 너희처럼 말할 수 있나니 가령 너희 마음이 내 마음자리에 있다 하자 나도 그럴듯한 말로 너희를 치며 너희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 수 있느니라 마중물 (말씀 묵상) 욥은 엘리바스가 위로한답시고 도리어 덧난 곳에 소금 뿌리는 행태에 대해 대단히 냉소적으로 비판했다. 욥의 분노는 여기에서 극을 달린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 엘리바스에게 입을 차라리 다물라는 공격이다. 내가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닫고 있는 게 아니라고 욥은 항변한다. 나도 마음만 먹으면 말로 너희들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자평한다. 하지만 그런 일을 행하는 자체가 너무 소모적이기에 입을 열지 않겠다고 에두른다. 목회를 하면서 느끼는 소회 중에 차라리 입을 다물어야 할 때가 수없이 많다. 나 같은 경우에는 대화로 소통되지 않는 상대와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 할 때 더더욱 그렇다. 한마디 말을 하면 그 말을 진정성 있게 듣지 않고 비트는 자들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그럴 때 최선은 입을 닫는 거다. 이런 이유때문에 나름 세운 목회 철학이 있다. 어떤 팩트에 대한 해석은 신중하게 하되 평가할 때는 내게는 날카롭게, 타인에게는 너그럽게 한다는 철칙이다. 내게 날카롭게 하는 방법은 침묵이다. 말 줄임이다. 놀라운 것은 타인에 대해 너그럽게 대하는 것도 말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전달되는 진정성에 타인들도 감동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해서 교우들에게 접근할 때 설익은 위로가 아니라, 말 줄임을 통해 권하는 영적 진정성이 전해지기를 기도하고 기대한다. 엘리바스와 같은 상투적 위로자는 되지 말아야 하겠다는 것이 적어도 나의 소회다. 두레박 (질문) 진정성이 없는 말을 남발하고 있는 목사는 아닌가? 뒤돌아본다. 손 우물 (한 줄 기도) 존귀하신 하나님, 말을 많이 함으로 사람이 변화되고 환경이 유리해진다고 생각하는 착각과 맞서게 해 주십시오. 도리어 침묵이나 말 줄임으로 전해지는 영적인 진정성을 더 많이 교우들과 나누게 하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내게는 냉정하게 타인에게는 너그럽게 대하는 태도가 삶에서 나타나게 하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코로나 19’에 재감염된 지체들이 있습니다. 큰 후유증 없이 잘 극복하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