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일 수요일 성서 일과 묵상 전쟁을 멈춰라. 오늘의 성서 일과 시편 63편, 요엘 3:9-21, 마태복음 24:29-35, 시편 78편, 예레미야 31:31-34 꽃물 (말씀 새기기) 요엘 3:10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 마중물 (말씀 묵상) 제 1 이사야는 이렇게 전언했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사 2:4)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 거라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거라고. 다시 말해 전쟁이 사라질 거라고. 나는 제 1 이사야가 전언해 준 그날이 올 것을 믿는 목사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야훼께서 만드시는 날이다. 예언자 이사야가 선언한 그날을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하지만 오늘 성서 일과인 요엘서에서 예언자는 이사야의 선언에 반어적인 표현을 도입했다. 그 반대로 말이다.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라고 했고, 낫을 쳐서 창을 만들라고 했다. 물론 요엘이 이사야의 선언을 반어적으로 패러디한 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안다. 사탄적인 세계에 대한 멸망이 도래할 것을 요엘은 요엘만의 특이한 기법인 ‘그날’이라는 단어를 통해 강조했다. 그날이 도래하고 있고, 긴박하게 요청되고 있기에 열방의 세력들이 하나님의 권세로 무너질 것이라는 예언자의 성찰은 나 또한 기대하고 또 기대하는 바다. 요엘의 반어적 표현은 이해하지만 그날의 도래가 샬롬의 방법으로 임하기를 나는 기도한다. 작금 이스라엘이 벌이고 있는 가자지구와의 싸움을 미국을 중심으로 한 블록과 이란을 중심으로 한 블록이 보는 시각은 전혀 다르다. 생리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 아무리 그렇다치더라도 지금 리얼하게 보고 있는 것처럼 전쟁이라는 수단으로 자행되는 엽기적 만행의 승자는 없다. 전쟁은 하고 있는 자 모두가 처절하게 경험하게 되는 패배다. 그러기에 나는 언제나 이사야의 기도를 하지 요엘의 기도를 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이다. “하나님,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칼들이 보습되게 하소서. 창들이 낫되게 하소서.” 포기할 수 없는 기도다. 전쟁은 철저히 사탄의 일이다. 하나님과는 1도 관계가 없다. 두레박 (질문) 누구를 위한 싸움질인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지구상에 있는 칼들이 보습되게 하소서. 이땅에 힘의 상징이라고 믿는 일체의 칼들이 낫 되게 하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이 땅에 평화가 임할 것인가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포기가 없는 기도를 드리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주님, 정당성이 있는 전쟁, 거룩한 전쟁도 멈춰지게 하소서. 전쟁은 지옥입니다. 샬롬을 주십시오. 제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