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좋아하는 떡, 만들 수 있는 떡 레시피 소개하기 | 경배와 찬양 (WORSHOP)● 너 성결키 위해 (찬송가 420장) ● 예수 하나님의 공의 (ccm)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제목: 좋은 떡 만들기 ● 본문: 고린도전서 5:6-8 1) 본문 6-7절에 언급된 ‘누룩(헬라어:쥐메)에 대하여 성경이 말하는 두 가지 의미를 말해 보자. ① 긍정적인 의미: 마태복음 13:33
② 부정적인 의미: 출애굽기 12:15, 갈라디아서 5:9 |
2) 출애굽 당시 먹어야 했던 떡과 바울이 본문에서 말한 영적 유월절에 먹어야 하는 떡을 설명해 보자. ① 출애굽 유월절에 먹어야 했던 떡: ② 본문에서 말한 영적 유월절에 먹어야 하는 떡: ③ 영적 유월절에 먹어야 하는 떡의 오늘날의 적용과 해석: |
3) 적용하기 ① 내가 지켜야하는 오늘날의 광범위한 순결함에 대하여 나누어 보자.
② 오늘날 내가 사수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진실함(상식)에 대해서도 나누어 보자. | 사역하기 (WORK)1) 중보기도제목 ● 우리 교회 피선교지를 위하여 (특별히 루존 교회를 위하여) ● 신백강제 셀 춘계 대 심방을 위하여 ● 4/10-14 고난주간에 실시되는 지역 셀 전도 축제를 위하여 ● 제 19대 대통령 선거 시에 하나님의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자가 선출될 수 있도록 ● 나약한 환우들을 위하여 2) 헌금 3) 광고 ● 부활주일 셀에서 섬기는 전도프로젝트 상의하기 4) 폐회: 주기도 | 설교요약 (SUMMARY)2017년 3월 26일 주일 낮 설교 (고린도전서 26번째 강해) 제목: 좋은 떡 만들기 본문: 고린도전서 5:6-8 고린도교회의 치명적 범죄는 음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심각한 고린도교회의 문제점은 음행한 자를 공동체가 용납하였다는 점이었습니다. 즉 공동체에서 해야 하는 치리(징계)를 하지 않았다는 공동의 범죄였습니다. 이것을 직시한 바울은 사태의 심각함을 알고 누룩의 비유를 통해 신랄하게 통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 되셨느니라”(본문 6-7절). 대체적으로 성경이 말하는 ‘누룩’(쥐메)은 긍정과 부정의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사용됩니다. 긍정의 의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성경구절 중에 하나가 마태복음 13:33절일 것입니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상징 표현으로 이 구절에서 누룩을 인용하신 것은 누룩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복음은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결정적인 요소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부정적인 의미로 누룩이 사용된 구절은 출애굽기 12:15절일 것입니다. “너희는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 유월절 관례를 제정하신 하나님께서 유월절에 먹지 말아야 하는 음식으로 누룩 넣은 빵을 언급한 것입니다. 여기에 기록된 누룩의 의미는 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의 견고한 유지를 위하여 일체의 누룩을 제거하여야 함을 명시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는 유월절 절기 7일 동안은 반드시 무교병을 먹어야 했습니다. 이 전통은 철저한 유대인이었던 바울에게도 고스란히 전수되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 지체들에게 편지하던 바울은 할례주의자들의 악한 소위를 경계하면서 이렇게 역설한 것입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갈라디아서 5:9)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지체들 중에 음행을 한 자에 대하여 너그러운 마음을 갖는 자들을 누룩으로 비유한 듯합니다. 음행한 사람이 아니면 음행을 용인하고 있는 고린도교회 지체들의 암묵적인 묵과라는 일체의 것들을 누룩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이 관점에서 7절을 읽으면 분명한 관점이 보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원래 죄와는 거리가 먼 ‘누룩’이 없었던 공동체였는데 마치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는 것과 같이 되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사태의 중대함을 인식한 바울은 이미 온 몸에 독이 퍼져 죽게 된 몸이 되기 전에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고 강력하게 선포합니다. 이 선포와 더불어 바울은 누룩 없는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유월절의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누룩으로 덧입을 것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음행을 저지른 것이나 그것을 용인한 것이나 오십보백보입니다. 데이빗 프라이어 목사는 본문에 기록된 고린도교회에서 횡행하던 음행과도 같은 죄악을 상징하는 누룩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적극적인 묵과 그리고 기쁨과 끈질김으로 행하는 죄악” 바울은 음행이라는 죄악이 고린도교회를 병들게 하는 누룩임을 인지하였기에 이렇게 누룩을 경계할 것을 선언한 뒤, 본문 마지막 절에서 또 다시 선포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본문 8절에서 먼저 살펴야 할 것은 ‘우리’라는 대명사를 통한 해석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우리’는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월절의 어린양의 피를 흘리심으로 희생 제물이 된 것을 믿는 구원 받은 공동체 즉 7절 전반절에 기록된 ‘너희는 원래 누룩이 없는 자’라는 구원 받은 고린도 교회 공동체의 지체들 전부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라는 말의 의미는 출애굽의 유월절이 아니라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지키는 영적인 유월절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캘빈은 자신의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옛날의 유월절은 과거의 축복의 기념일뿐 아니라,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수단으로서 오신 예수님의 성례인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선함을 얻을 수 없으니 그리스도만이 율법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매일 희생 제물로 그리스도께서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그 희생은 단 한 번만으로 유효하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해 영적인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캘빈 고린도전서 주석, p,164) 이런 해석을 기초로 하여 영적인 유월절에 먹어야 하는 누룩 없는 떡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1) 순전함이라는 재료입니다. ‘순전함’으로 번역한 ‘에일리크리네이아스’는 직역하면 ‘순결’이라는 의미를 갖는 단어입니다. ‘에일리크리네이아스’를 성경 전반으로 확대할 때 이것은 영적 순결함의 개념이 더 적확합니다. 영적 순결함을 말할 때 아주 적절한 예가 바로 다니엘입니다. 다니엘 1장에서 주제절과 같은 중요한 구절이 바로 1:8절입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여기에 기록된 ‘뜻을 정하여’라는 이 문구를 직역하면 “마음을 곧추 세웠다.”라는 뜻입니다. 예레미야 52장을 보면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로로 바벨론으로 끌려온 소년들이 상당수였음을 짐작하게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 간 백성은 이러하니라 제칠년에 유다인이 삼천이십삼 명이요 느부갓네살의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간 자가 팔백삼십이 명이요 느부갓네살의 제이십삼년에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 간 유다 사람이 칠백사십오 명이니 그 총수가 사천육백 명이더라”(예레미야 52:28-30절). 정치적인 함수관계로 접근해 보면 느부갓네살은 유다라는 점령한 나라의 민족적, 정신적인 탯줄을 끊어버리는 일로 귀족과 왕족들의 일원들을 바벨론으로 끌고 와 바벨론의 문화, 정치, 사회, 종교까지 두루 섭렵하게 함으로서 유다 정신과 종교를 잊게 하는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그 중에 특히 느부갓네살이 주목한 대상은 젊은이 그룹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유다의 잠재적 미래이자 바벨론의 미래적 정적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바벨론화 시키면 물리적으로나, 현상학적으로 자연 도태될 것을 확신한 것입니다. 다니엘 1장을 보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 의해 통제되던 다니엘은 왕이 지정한 음식과 포도주를 먹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는데 다니엘이 이것을 거절한 것이 1장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유니온 신학교 구약학 교수를 역임한 시블러 타우너 교수는 다니엘이 이 음식에 대하여 거부한 이유를 이렇게 주석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에 대한 우선적 의무를 수행할 자유를 유지하기 위하여 왕에 대한 의존적 상징을 거절한 듯하다. 다니엘이 피하려 했던 부정함은 의식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도덕적 부정이었으며, 비록 왕의 정책이 장래에 어떻게 결정될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왕에 대한 충성을 암암리에 요구하는 교묘한 칭찬과 선물을 거부한 것이다.” (현대성서주석, 다니엘,pp,54-55) 단순하게 다니엘이 거부한 것은 왕이 하사한 진미를 거절한 것이 아니라 이방 문화의 정신을 거부한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왕이 하사한 음식(왕이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바벨론식의 통치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다니엘의 이 뜻 정함은 바벨론의 정신을 거절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유월절을 섬기며 먹어야 하는 음식은 누룩을 제거한 음식입니다. 누룩을 제거한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되는 조건이 세속적 정신의 혼합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신 느부갓네살의 산해진미라는 누룩을 넣지 말아야 합니다. 베벨론에서의 성공과 안락함과 편안함이라는 MSG를 넣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넣는 순간, 순전함은 상실됩니다. 우리들이 신 유월절의 누룩 없는 떡 대신에 추구해야 하는 떡은 순전함이라는 재료가 들어간 떡입니다. 순전함을 재료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좋은 떡 만들기에 성공합시다. 2) 진실함이라는 재료입니다.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본문 8절). 진실함은 헬라어 ‘알리데이아’의 번역입니다. 이 단어는 두 측면에 걸친 뜻을 가지고 있는 독특한 단어입니다. ① 객관적인 진리와 사실 ② 주관적인 경험적 진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를 종합하면 상식이라는 결론을 얻습니다. 이 시대의 비극은 상식의 실종입니다. 사도행전 6장에 기록된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첫 번째 위기인 과부 구제의 실패가 일어난 까닭은 사도들이 집중해야 하는 말씀 전하기와 기도하기라는 상식을 제쳐두고 접대하는 일(구제하는 것까지 포함하여)에 정신 줄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초대 교회 분열의 위기에서 다시 회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다시 상식인 기도하기와 말씀 전하기라는 상식으로 제자들이 환원했기 때문입니다. 객관적인 진리와 사실은 상식이라는 테제입니다. 주관적인 경험이 아니라 주관적 경험의 사실은 상식이라는 테제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지체들에게 음행에서 떠나라고 권함은 물론 음행을 용인하는 일체의 일들에 대하여 적극적인 묵과나 기쁨과 끈질김으로 행하는 죄악에서 벗어날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행하여야 할 상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상식이 아니라는 말은 하나님의 공의가 담보된 공평한 일이 아니라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상식은 공평하고 공정성을 담보합니다. 그래서 세습은 한국교회가 다시 회복함에 있어서 제일 먼저 사라져야 할 제거 일순위의 악질 요소입니다. 진실함의 떡 재료는 상식이 통하는 삶입니다. 새로운 재료를 집어넣은 영적인 유월절 떡 먹기에 집중합시다. 묵은 누룩이 들어간 떡,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을 넣은 떡 말고 세속적 가치가 요구하는 정신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선포된 정신을 담보한 그런 순결함의 떡을 만들고, 적어도 그러기 위해 상식이 통하는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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