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7.03.19 지역 셀 사역2024-04-23 16:17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여러분이 금년에 목적하고 목표하는 비전이나 꿈 나누기  

 
경배와 찬양 (WORSHOP)
● 큰 죄에 빠진 나를 (찬송가 295장)
● 주님 말씀하시면 (ccm)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제목: 하나님의 목적
● 본문: 고린도전서 5:5
1) 본문 5절을 해석해 보자.
① 바레트 교수: 예정론적인 해석               
② 헤이스 교수: 상징적인 해석
③ 프라이어 목사: 교회의 징계를 강조한 해석
④ 톰 라이트 교수: 전반절과 후반절을 완전히 분리해석

★ 담임목사의 해석은?  

2) 고린도전서 5:5절에서 하나님이 보여주시고자 했던 말씀의 목적은 무엇인가?
★ 설교 주제와 연관하여 설명해 보자.

(참고: 엘리와 그의 아들들에 관한 사무엘상 기사)  

3) 적용하기
① 위의 해석들을 통하여 ‘음행’을 평가해 보자.

② 육적인 음행과 영적인 음행과 싸워서 이길 개인적 대안들을 제시하고 그렇게 살도록 기도하자.  

 
사역하기 (WORK)
1) 중보기도제목
● 우리 교회 피선교지를 위하여 (특별히 루존 교회를 위하여)
● 하소 셀 춘계 대 심방을 위하여
● 4/10-14 고난주간에 실시되는 지역 셀 전도 축제를 위하여
● 제 19대 대통령 선거 시에 하나님의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자가 선출될 수 있도록
● 나약한 환우들을 위하여
2) 헌금
3) 광고
● 부활주일 셀에서 섬기는 전도프로젝트 상의하기
4) 폐회: 주기도
  

 
설교요약 (SUMMARY)
2017년 3월 19일 주일 낮 설교 (고린도전서 25번째 강해)
제목: 하나님의 목적
본문: 고린도전서 5:5
  
    성경 안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뜻이자, 하나님의 의도이고,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목적을 파악하는 것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신약학자들 중에 상당수가 난해 구절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에 대한 해석도 다양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본문 5절).  사탄에게 내어버림을 당한 이런 자는 직접적으로는 행음한 자입니다. 즉 계모를 취한 자입니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로는 그 행음을 방관한 자들도 이 부류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5절 전반절에 기록된 ‘이런 자는 사탄에게 내주었으니’라는 이 문구는 로마서 1장을 연상하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 안에 존재하던 동성애자들을 비롯하여 하나님의 자연 계시를 무시하고 하나님을 자신들 앞에 두기를 싫어하던 일체의 무리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로마서 1:24-28절). 이 세 단어는 공히 ‘포기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파라디도미’의 번역입니다. 그래서 내버렸다는 표현을 신학자들은 종종 ‘하나님의 유기(遺棄)적 심판’이라고 표현합니다.
    본문으로 돌아가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바로 이 구절에서 사탄에게 내주었다는 부분은 하나님의 유기라는 측면에서 이해가 되는 대목입니다. 여기까지의 바울의 경고는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이 가능합니다. 음행하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그 음행을 묵인 자들에 대한 심판이 하나님의 유기적 심판이라는 말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본문의 하반절입니다.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이 구절은 난해 구절로 학자들이 대체적으로 동의합니다. 통상적으로 난해 구절이 등장할 때 성경 밖으로 넘어가는 해석은 조금 불편합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성경 안에서 해석할 수 있으면 그 방법이 가장 안전한 것 같습니다. 몇 몇 학자들의 본문 하반절 해석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① 더럼 대학교의 C,K 바레트 교수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사탄의 지배 영역은 철저하게 육신의 영역이다. 그러나 영혼의 영역은 권한이 없다. 그러므로 음행을 행하는 자들의 육신은 상실되겠지만 그 상실로 영혼은 궁극적으로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고린도전서 국제 성서주석)- 담임목사의 입장: 바레트의 해석은 예정론적인 신학을 갖고 있었던 바울의 신학을 그대로 인정한 것 같다 -
    ② 예일대학교의 리처드 헤이스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고린도교회 공동체의 징계인 사탄에게 내줌(출교, 유기시킴)이라는 징계를 통하여 어떻게 해서든 죄인(음행한 자)가 회개하도록 하기 위함이다.”(현대 성서주석, 고린도전서)-담임목사의 해석: 문자적인 실제성을 의미하는 선포가 아니라 회개가 목적이라는 상징적 해석입니다.-
    ③ 영국 런던 신학교 협의회 이사로 있는 데이빗 프라이어는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음행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이 주신 모든 기회를 낭비했기 때문에 간신히 구원을 받을 것이다. 더불어 이렇게 출교를 당하고 육신이 멸망하도록 사단에게 넘겨지지 않으면 그는 완전히 타락하여 사실상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다시 십자가에 못 박으며 회복이 불가능해 질 것이다.”(BST 시리즈, 고린도전서 강해)- 담임목사의 해석: 프라이어 목사의 설명은 징계를 강조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사탄에게 넘겨진 것도 하나님께서 아직은 음행을 범한 자에게 부끄러운 구원이라도 받게 하시려는 마지막 방법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는 해석입니다.-
    ④ 영국 세인트루이스 대학의 톰 라이트 교수의 해석입니다. “음행한 자는 사탄에게 넘겨준다는 것은 적어도 주님의 날에 주어질 구원을 위해 현재 행위에 대한 심판이라는 측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음행한 자는 공동체에서 반드시 방출하여 육적인 일체의 것들이 멸하는 현재적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주석)- 담임목사의 해석: 톰 라이트 교수는 바울이 언급한 5:5절 하반절은 음행을 한 자를 용서한다는 의미의 해석이라기보다는 적어도 음행의 죄를 범한 자들의 육신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내어주는 강력한 심판을 천명하신 것이고, 반대로 음행의 죄를 범하지 않은 자들의 영혼들은 반드시 구원이라는 은혜를 받게 한다는 분명한 선언이라는 정의입니다.
    바레트와 프라이어 해석은 예정론적인 견해를 강력하게 담보하고 있는 해석이고, 헤이스의 해석은 5:5절 하반절의 해석이라기보다는 5:5절 전반절을 강조한 성격이 강한 반면 톰 라이트 교수는 음행한 자에 대한 현재적 심판과 미래적 구원을 각각 전혀 다른 성질의 것으로 분리함으로서 음행한 자에게 그 어떤 타협점도 주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5절에 관한 이상의 해석을 통하여 우리가 받은 교훈과 도전은 본문 5절에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중립적 해석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5:5절의 해석을 많은 사람들이 음행한 자에 대하여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해석했습니다. 이 해석은 구원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그날에 구원시키겠다는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의 은혜라는 수단을 동원하여 해석한 접근입니다. 어떤 의미로 보면 이런 해석이 가장 유리한 해석이고 무난한 해석으로 여겨집니다. 더불어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으로 해석하여 하나님의 측면에서도 하나님의 낯을 세워주는 아주 매력적인 해석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톰 라이트 교수의 말대로 도리어 본문 5:5절의 해석은 더없이 단호한 하나님의 분명한 심판의 의지를 보여 준 해석입니다.
    하나님은 음행한 자들을 사탄에게 내어주는 포기하심을 단행하십니다. 궁극적으로 마지막 날에 음행한 자들의 육은 죽이지만 영은 다시 살리겠다는 말씀이 아니라 오히려 하반절의 의미는 음행의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실하게 이 땅에서의 삶을 살아낸 자들은 마지막 날에 육신은 후패해서 멸하겠지만 그의 영혼들은 반드시 살게 할 것이라는 너무나도 귀하고 단호한 하나님의 메시지로 담임목사는 해석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중립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과 도전과 은혜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실로에 살던 엘리의 아들들이자 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 엘리가 늙고 기력이 쇠하자 제사장으로서는 하지 말아야 하는 일체의 음행들을 저질렀습니다. 마침 가나안에 정착한 초기 이스라엘 공동체는 블레셋과의 전쟁이 발발합니다(사무엘상 4:3-5절). 이스라엘은 전쟁의 현장으로 법궤가 들어온 것을 보고 이제는 전쟁의 승부는 끝났다고 생각하고 말도 안 되는 승리의 샴페인을 터트리는 촌극을 벌입니다. 그러나 마땅히 이들은 선조들에게 들었던 풍월로 하나님의 법궤를 앞세우고 전투에 참여하지만 그 결과는 대패요 죽음이었습니다. 전쟁에서 패한 까닭은 홉니외 비느하스의 음행과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사무엘상 2:22절). 천하가 공로할 본인들의 죄는 묵과한 채로 하나님의 법궤라는 도구를 자기들의 죄에 대한 돌이킴이 없이 유리한 도구와 방편으로 이용하려고 했던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심판의 철퇴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립적 가치로 치부하거나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동행하던 시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절대적 가치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말씀이 심령에 와 닿지 않은 이유로 자기에게 유리하게 적용했던 베드로는 실패하는 연속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기막힌 일을 경험한 베드로는 그래서 순교를 앞두고 쓴 자신의 두 번째 편지에서 이렇게 갈파한 것입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베드로후서 1:20-21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중립적인 해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니오’와 ‘예’로 적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특별계시로 주신 말씀은 분명한 목적을 갖고 선포하신 권고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말씀으로 해석하고 나아갈 때 그 분의 목적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음행으로 인하여 사탄에게 내어줌을 당한 자들은 하나님의 유기라는 심판을 받는 최고의 저주 대상자들입니다. 이 말씀의 목적에는 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조금의 여지를 남겨 너그럽게 이 말씀의 의미를 부여하면 안 됩니다. 음행의 분위기에서 그 음행을 멀리 하여 하나님의 목적한 바대로 살아가는 자는 주 예수의 날이 구원의 날이 될 것입니다. 말씀의 중립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음행에서 떠나십시다. 그것이 육적이든, 영적이든 상관없이 음행에서 떠나십시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요한계시록 22:1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