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지난 주 하나님의 식 살아내기 보고하기. 더불어 여러분이 알고 있는 촌철살인(寸鐵殺人) 소개하고 나누기. | 경배와 찬양 (WORSHOP)● 주님의 뜻을 (찬송가 425장) ● 축복의 통로 (복음성가)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제목: 통찰 ● 본문: 고린도전서 3:18-23 1) 바울이 본문에서 기막힌 역설로 사람을 따르거나 섬기지 말라고 권면한 통찰의 방법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본문 성경을 중심으로 이해해 보자. ① 본문 21-23절: ‘다 너희의 것’ 과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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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번 항목에서 바울이 통찰한 내용을 기초로 할 때 교우들이 집중해야 할 레마는 무엇인가? ① 흔들리지 않는 주군의식(18-21절 적용): ② 흔들리지 않는 주군의식을 방해하는 유사 주군의식을 말해보자.(내가 가지고 있는 유사 주군 의식): |
3) 적용하기 ① 예수를 믿는 것 같음 ② 유사 예수가 나를 축복할 것 같음 *위에 기록한 내용을 극복하기 위하여 담임목사의 설교를 곱씹어 보고 제시한 방법을 숙지하자. 더불어 합심하여 기도함으로 주님께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간구해 보자. | 사역하기 (WORK)1) 중보기도제목 ● 환우들을 위한 세밀한 중보 (서정수, 최정희, 강영자, 문혜경 자매 등) ● 지역 셀의 역동적 승리를 위하여 ● 교회 소그룹 사역의 승리를 위해 ● 셀에서 섬기는 연중 전도 대상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 셀 지원 피선교지를 위하여 ● 담임목사의 목양 사역을 위하여 ● 군에 있는 아들들과 외지에 있는 자녀들의 건강과 승리를 위해 2) 헌금 3) 광고 4) 폐회: 주기도 | 설교요약 (SUMMARY)2017년 1월 22일 주일 낮 설교 (고린도전서 열일곱 번째 강해) 제목: 통찰 본문: 고린도전서 3:18-23 ‘사회적 영성이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깨닫는 일로부터 시작 된다’는 김응교 교수의 통찰과 누가복음 22:42절에서 주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속에 담긴 주님의 고통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은 깊은 성찰을 통해서입니다. 오늘 본문을 속 깊이 들여다보면 본문 저자인 바울의 대단한 통찰력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는 은혜를 받습니다. 바울은 바울 자신을 따르고 있는 바울 파 사람들을 향하여, 아볼로를 따르는 아볼로 파 사람들을 향하여서 이렇게 갈파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21절 본문).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는 바울의 권면은 이해가 되나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만물이 나 너희 것임이기 때문이라는 말은 선뜻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만물이 다 너희(고린도교회의 지체들)것이라는 말은 사람의 가치를 높이는 말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이상하게 보이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바울의 대단한 통찰을 엿보게 됩니다. 고린도교회의 지체들을 향하여 그들의 ‘현재의 정황’(STATUS QUO)을 너희들은 대단한 존재들이라고 평가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만물이 다 너희들의 것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피조물들에게 명령하신 문화 명령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기 1:28절). 인간에게 주어진 특권이며 피조물 중에서 참 괜찮은 존재가 인간입니다. 연계되는 창세 1:26-31절을 문화명령과 적용하여 읽어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특별한 명령을 부여하시는 일련의 모든 과정을 보시고 하나님이 감탄하셨습니다. ‘심히 좋았더라’ (히네 토브 메오드) 이 말을 원래의 어순으로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보라, 매우 좋구나.”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지체들에게 본문에서 했던 말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표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만물이 다 너희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이 표현은 대단한 역설이 들어 있는 통찰의 선언입니다. 왜냐하면 본문 22절에서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고린도교회의 지체들을 향하여 만물이 다 너희 것인 것처럼 바울도 너희들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아볼로도 너희 것이고, 게바도 너희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사망도 너희 것이고, 지금 현재의 것이나,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것도 다 너희들의 것이라고 즉설(卽說)합니다. 바울의 이 선언은 참 지혜로운 선언이자 대단한 역설이 들어 있습니다. 다 너희들의 것인데 어찌하여 그것들을 따르느냐는 역설입니다. 부연하면 이렇듯 우주적인 차원에서 참 보잘 것이 없는 먼지 같은 바울, 아볼로, 게바 인데 왜 어리석게도 너희들은 우리들을 따르는 우를 범하는 것이냐는 비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쐐기를 박는 장면이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서 발견됩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본문 23절). 바울은 고린도교회 지체들이 대단한 존재들임을 부각했습니다. 절대로 사람을 따르거나 사람을 자랑하는 시답지 않은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모든 만물을 소유한 대단한 존재임을 역설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그런 대단한 존재인 너희들의 정체성을 똑바로 알라고 공포합니다. 너희들이 대단한 존재인 것은 물론이지만 주님은 더욱 대단한 주군임을 부각시키며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바로 대단한 너희들의 주권자가 그리스도 예수이고, 그 그리스도 예수의 주권자는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결론은 우리들이 궁극적으로 따라야 할 존재는 그리스도 예수이며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천명하고 있는 바울의 통찰을 배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까지의 본문 해석을 통하여 오늘 주일에 주시는 레마의 말씀을 겸손하게 받겠습니다. ★ 성도라면 흐트러뜨리지 말아야 할 신앙의 요체가 주군의식이라는 점입니다. 바로 우리들의 주군이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라는 레마 입니다. 우리들의 주군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들 중에 적지 않은 수가 강단에서 흘러나오는 메시지가 색다른 메시지가 흘러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예’자를 꺼내면 ‘그건 이미 알고 있으니 그거 말고 조금 더 색다른 쌈박한 메뉴로 설교할 수 없습니까?’ 라고 압박 아닌 압박을 하는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본문 고린도전서에서 회자되고 있는 단어들을 동원하여 보면 “예수 말고 지혜에 대하여 설교 좀 해 보세요.”, “예수 말고 바울에 대하여 선포 좀 해 보세요.”, “예수 말고 지성인의 총아인 아볼로에 대하여 말 좀 해보세요.”, “예수 말고 예수의 수석 제자인 게바에 대하여 듣고 싶어요. 그것 좀 말하세요.” 이것을 오늘날 우리들의 세속적 정황에 맞추어 말한다면 “예수 말고 목회 상담을 통한 인간의 치유에 대하여 설교할 수는 없나요.”, “예수 말고 신비로운 기적을 통하여 나를 좀 변화시켜 보면 안 될까요?”, “예수 말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이웃들을 향한 나눔이라는 폼 잡을 만한 메시지에 대하여 선포할 수는 없나요?”, “예수 말고 지성적 만족을 주는 신학적 교리에 대한 타이트한 강의는 없나요?”, “예수 말고 문학적으로 성경 읽기라는 그런 타이틀의 세미나는 없나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후 1세기 고린도라는 이방 땅의 정황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지혜(소피아)였습니다. 고린도라는 세속의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고린도교회라는 복음 공동체까지 여지없이 십자가의 도를 선포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주군이 아닌 지혜가 주군이 되어버린 고린도를 향하여 바울은 단호하게 “이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다.”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혜 있다고 하는 자들은 스스로 자기의 꾀에 빠지는 어리석은 자들이다.” “지혜 있다고 하는 자들의 생각은 헛것들이다.” 바울은 조금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어리석은 것을 버리고 주군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올 것을 주저 없이 선포하였습니다. 박영선 목사는 구원 그 이후라는 책에서 ‘유사 예수’(PSEUDO-JESUS)를 주군으로 믿고 있는 자들의 현주소를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사람이 마땅히 되어야 하는데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들이 제대로 믿지 못함에 대하여 갈등하지 않고 도리어 그 수준을 숨기기 위해 ∽인척 하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들이 버젓이 존재한다.” 예수를 주군으로 믿는 것조차 정직하지 않은 세태가 오늘 우리들의 실체인 것을 개탄했습니다. 본회퍼 목사는 “믿는 자만이 순종하고, 순종하는 자만이 믿는 것이다.”라고 일갈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군으로 삼는 것을 꺼려하는 것은 그 분을 주군으로 진정 모시려면 대전제가 100%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위험성에 비해 유사 예수를 주군으로 모시는 것은 참 매력적입니다. 순종하지 않아도 예수를 믿는 척하기에 최고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며 순종을 요구하지 않고 척함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를 주군으로 인정하면 두 가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① 예수를 믿는 것 같음. ⓶ 유사 예수가 나를 축복할 것 같다는 무감각을 믿음. 광야에서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는 구름을 보고 움직였습니다. 완악했던 그들이 순수하게 구름을 따라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광야에 대해 문외한이었지만 하나님의 임재가 구름으로 하늘에 떠오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늘 위에 계시고 하늘 위에 계신 하나님의 방향성은 땅 아래에 있는 자신들보다 분명 옳다는 것을 믿은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완악함을 내재한 백성들도 하나님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믿을 때만 가나안쪽으로 걸음을 옮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같은 것이 가나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습니다. 이것을 오늘에 적용하여 보면 예수님 같은 것이 성도들을 하나님의 나라 쪽으로 걸음을 옮기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을 가나안으로, 하나님의 나라로 향발하도록 하는 분은 주군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 말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 18절에서 바울이 말한 지혜를 소유한다고 지혜로운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도라는 미련함을 택하여 도리어 진정한 지혜로운 자가 되라는 바울의 통찰은 너무나도 귀합니다. 한 여인이 가지고 있었던 예수에 대한 깊은 통찰이 훗날 자신의 딸이 성녀(엠마누엘 수녀)로 불림을 받는 위대한 족적을 남기는 불쏘시개가 되었던 것처럼 예수에 대한 통찰을 가져야 합니다. 그 분은 나의 유일한 주군이십니다. 이 통찰을 항상 잊지 않고 살아가는 셀원들이 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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