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운동하고 있습니까? 하면 어떤 운동을 하고 있으십니까? 하지 않으면 운동을 독려합시다. | 경배와 찬양 (WORSHOP) ● 내 주 예수 주신 은혜 (찬송가 317장) ●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복음성가)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제목 : 기본적인 매뉴얼대로 ● 본문 : 고린도전서 3:6-9 1) 가나안에 입성한 유다, 베냐민 지파의 행위와 김영봉 목사가 지적한 잘못 드린 기도의 공통점은? ① 가나안에 입성한 두 지파의 행위: (수23:11-13) ② 잘못된 기도의 내용: ③ 교훈: |
2)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치명적인 실수가 무엇이었는가? 3) 바울이 본문에서 제시하고 있는 영적 교훈이 무엇인가? ① ②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다.” (푸코) | 사역하기 (WORK)1) 중보기도제목 ● 환우들을 위한 세밀한 중보 ● 성탄절 행사가 은혜롭게 진행되도록 ● 송구영신예배와 사무총회가 기쁨의 잔치가 되도록 ● 나약한 이웃과 함께 하는 연말이 되도록 ● 2017년 계획을 잘 수립하고 2016년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2) 헌금 3) 광고 ● 새신자에게 성탄축하의 밤 초청하기 4) 폐회: 주기도 | 설교요약 (SUMMARY)2016년 12월 18일 주일 설교 (고린도전서 열세 번째 강해) 제목: 기본적인 매뉴얼대로 본문: 고린도전서 3:6-9 가장 기본적이며 상식적인 것이 무시될 때 기본의 회복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됩니다.
여호수아 23:11-13절은 여호수아가 열조의 땅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자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게 될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매뉴얼을 제시한 글이 바로 여호수아 23장입니다. ⓵ 가나안에 남아 있는 거민들과 가까이 하지 말라 ⓶ 그들과 혼인하지 말라 ⓷ 목전에서 쫓아내라 ⓸ 이 일을 순종하지 않으면 그들이 화근이 될 것이다. 이것은 선택 사항이 아닌 의무사항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명령을 받은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는 이 명령을 버렸습니다. 그것을 가나안 초기 정복 전쟁을 묘사하고 있는 사사기 기자는 리얼하게 고발합니다. 사사기 1:16-21절입니다.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의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에서 올라가서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그 백성 중에 거주하니라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스밧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그 곳을 진멸하였으므로 그 성읍의 이름을 호르마라 하니라 유다가 또 가사 및 그 지역과 아스글론 및 그 지역과 에그론 및 그 지역을 점령하였고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그들이 모세가 명령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유다 지파는 가나안 정복 전쟁 중에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헤브론, 드빌, 기럇 세벨 등의 중원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기세를 몰아 유다는 가나안 남쪽으로 진군하여 아랏을 점령했습니다. 그런 뒤에 스밧 지역과 예루살렘의 남서쪽 지역이었던 블레셋까지 차지할 정도로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던 산악지대를 점령한 이스라엘은 그곳을 접수하고 여호수아의 매뉴얼대로 거민들을 내쫓는 순종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골짜기 주민(평지 주민)들이 살고 있었던 곳을 점령한 뒤에는 그곳에 살고 있던 거민들은 쫓아내지 않았음을 보고하는 이상한 뉘앙스를 남긴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베냐민 지파는 가나안의 가장 요충지였던 예루살렘 지역 정복을 완성한 뒤에 거기에 거주하던 여부스를 족속들을 내쫓지 않고 같이 거주했음을 보고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전쟁 중에 이런 타협을 했는지 사사기 기자는 1:28절에서 알려줍니다.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쫓아내지 않은 이유는 노동력의 확보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가나안의 지리적인 특성과 기후적인 상황을 잘 모르는 이스라엘에게는 거민들을 노예화시키는 것이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익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단지 하나님의 명령 때문에 그들을 쫓아내는 것은 인간적인 해석으로, 이론적인 해석으로 유다 공동체에게는 말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기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는 세속적 이익과 이유로 가나안 거민들을 남겨 놓은 것으로 인해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라고 하나님이 정의한 이 땅 가나안에서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랜덤의 삶을 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제시한 매뉴얼을 무시하는 삶을 산 이스라엘에게 펼쳐질 비극의 서막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고린도교회가 어지럽고, 무질서했던 까닭은 하나님이 제시한 기본적인 매뉴얼이 무시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의 분파주의자들의 치명적 죄악은 주군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바울과 아볼로라는 사람으로 변질시킨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주군으로 믿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아주 매섭게 야단치고 있음이 오늘 본문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6절“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의 의미는 고린도교회의 지체들에게 헛 질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경고는 바울파에게 먼저 주어졌습니다. 이윽고 아볼로파도 두 번째 매를 맞고 있습니다. 바울의 매서운 경책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자신과 아볼로의 정체를 밝힙니다.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본문 7-9절). 심었던 바울,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 별 볼 일이 없는 자라는 말입니다. 물 주었던 아볼로, 주목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바울과 아볼로는 그냥 이 땅을 사는 동안 훗날 상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한 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나 바울과 아볼로는 하나님의 일군에 지나지 않으며,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름 받은 동역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자신의 신분을 평가 절하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사정이 이러하기에 고린도교회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는 너희들도 쓸데없는 것에 목숨을 걸지 말고 하나님이 씨앗을 뿌리는 밭의 역할과 하나님의 공동체 지체들이 신앙의 경주를 잘 감당할 수 있는 집의 역할에 충실할 것을 종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주어진 바울의 이 성토를 통해 우리들이 배워야 하는 교훈은 ● 최종적인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기초는 로드십(lordship)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바울은 분명히 선포했습니다. “바울 나는 심었다. 아볼로는 그 심은 것 위에 물을 주었다. 이제 남아 있는 것은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인간의 얄팍한 상술이나 방법으로 하나님을 움직이려고 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인간이 심은 것을 내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물 준 것은 당연한 것이지 그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냥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는 역설입니다. 김영봉 목사께서 쓰신 ‘가장 위험한 기도 주기도’(IVP 간)라는 책에서 지은이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119전화라고 역설한 혹자들의 이야기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기도의 예로 적용시켰습니다. 기도가 119의 역할을 할 때가 있지만 기도는 그 이상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라고 피력한 저자는 이런 예를 들었습니다. ⓐ 기도를 하나님을 조정하는 리모컨 컨트롤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 기도를 손오공이 여의봉을 흔드는 것처럼, 도깨비가 방망이를 내리치는 것처럼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수단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 기도를 넋두리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마치 답답한 것을 털어놓는 일로. ⓓ 기도를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한 명상 정도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을 가능성이 100%임을 기억합시다. 김영봉 목사는 책에서 이런 종류의 기도를 드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기도는 하나님과의 사귐이기 때문이기에 진정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사귐이 없는 한 그런 기도는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지만, 담임목사는 위에 열거한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가 이런 기도는 주도권이 인간에게 있다고 믿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렇게 노력하고, 이런 지경이니까 하나님은 무조건 긍휼이 여겨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소원에 예스해야 한다는 강제적 압박이 들어 있는 데 이것은 사실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폭력에 가깝습니다. 주지했다시피 기도는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그렇게 기도했는데도 아무런 응답이 없을 때 섭섭해 하거나 슬퍼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최종적 주권의 소유자이시지 인간의 욕심대로 움직이는 로봇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매뉴얼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 즉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조정래 씨가 쓴 ‘황홀한 글 감옥’ 을 보면 작가의 이런 철학이 담겨져 있습니다. “500권의 책을 읽지 않고는 소설을 쓰려고 펜을 들지 말라. 500권의 책은 세계 문학전집 100권, 한국 문학전집 100권, 단편소설집 100권, 시집 100권, 기타 역사, 사회학 서적 100권이다. 그것도 한 번만 읽을 것이 아니라 5년 주기마다 되풀이해서 읽으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대하소설 작가인 조정래 씨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요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교훈보다 더 중요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소설가가 가져야 하는 기초 체력이라는 말입니다. 기초 체력은 기본기입니다. 기본기는 그 다음 단계로 가는 기초입니다. 만에 하나 내 중심적인 신앙이 신앙이라고 믿는 자는 신앙의 기본적 매뉴얼조차도 모르는 유치원 아이 수준입니다. 만에 하나,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어도 신앙의 시작은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 되신다는 주권을 인정하고 출발했다면 그 사람은 신앙의 매뉴얼대로 출발한 참 괜찮은 그리스도인의 길을 가고 있음을 확신해도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주님이 나의 삶의 주권자임을 인정하고 주인 되신 주님이 선포하신 말씀의 매뉴얼대로 사십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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